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8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스토리텔링 공모전 ‘일상 속의 장애인’은 장애인과 관련된 일상 속 이야기들을 통해 장애인식개선을 도모하고자 2015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올해 공모전 결과 박관찬씨의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9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9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네 번째는 최우수상 수상작인 유혜인 씨의 ‘손에 손잡고, 둥글게 둥글게’이다.

손에 손잡고, 둥글게 둥글게

유혜인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왜 눈총이란 단어에 ‘총’이 붙었는지를, 그래서 눈총을 받으면 마음에 구멍이 뚫린다는 사실을 일찍이 알아버렸다. 발달장애를 가진 나의 동생 때문이었다. 특별히 이상한 재빈이의 행동은 항상 사람들의 의아함과 시선을 불러일으켰고, 동생과 함께인 내게도 그 눈길이 박혔다. 던져지는 시선에 겹겹이 둘러싸여 나는 자꾸만 움츠러들었지만, 동생의 특수학교 입학을 위해 새로 이사 온 동네에서는 마음 잘 맞는 친구들을 만나 점점 더 밝아져 갔다.

그날은 친구들과 놀다 출출해져 분식집에 가는 길이었다. 나는 란희와 나경이와 함께 실없는 농담을 하며 공원을 나서고 있었다. 녹음이 우거진 아래로 그늘이 시원했고, 매미의 마지막 울음은 여름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한참을 웃으며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 나는 갑자기 나타난 통통한 엉덩이에 시선이 꽂혔다. 순간 모든 그늘이 나를 덮치며 온 세상이 깜깜해지고, 한 아이의 희고 보얀 속살만 밝게 빛이 났다. 그 아이는 문방구 앞에 서 우두커니 창문을 들여다보다, 내가 있는 공원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박수를 치며 위아래로 콩콩콩 뛰어댔다.

‘설마’하는 직감은 곧장 현실로 펼쳐졌다. 내가 보고 놀란 그 엉덩이는 바로 내 동생의 짱구 같은 엉덩이였다!

자폐인 동생은 진열되어 있거나 한 줄로 정렬되어 있는 사물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특히 문방구 유리창 가득 기차와 미니카들이 전시되어 있는 그곳은 동생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나는 부끄러워 그대로 동생이 어디론가 가버렸으면 하고 바랐다. 그렇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사물에 대한 집중력과 집착이 엄청난 아이였기 때문에 부질없는 바람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가던 길에 우뚝 멈춰버렸다. 벌거벗은 내 동생이라니! 얼굴에 불타는 햇볕이 일렁이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왜 저러고 있지?’라는 의문과 함께 누구라도 내 동생을 알아볼까 겁이 났다.

그때 문방구 문이 열리며 우리 반에서 가장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고, 이내 알몸으로 창문 앞을 얼쩡대는 내 동생을 마주했다.

나는 그 아이들이 내 동생에게 해코지를 할까 하는 또 다른 겁이 났지만 여전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우리 동생이 다니는 특수학교 이름을 따 장난처럼 서로를 놀리는 그 아이들 앞에서 내 동생을 아는 체할 수가 없었다. 길을 건너려던 내 친구들도 자연스럽게 문방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혜인아. 저기 네 동생 아니야?” 하고 친구가 외쳤다. 나는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이미 몇 번 우리 집에서 내 동생을 만나 함께 놀기도 한 친구들이 곧장 내 동생을 알아본 것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울상이 되어 버린 나와 달리 란희는 단숨에 횡단보도를 건너 문방구로 뛰어갔다.

이를 본 우리 반 남자아이들은 킬킬대며 “야, 뭐냐? 네 남자친구?!”라고 물었다. 어느새 뒤를 쫓아 문방구 앞에 선 나경이가 “시끄러워!”라고 한 마디를 던져주곤 란희와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 둘은 각각 내 동생의 왼손, 오른손을 쥐고는 내가 있는 공원으로 걸어왔다.

내 앞에 선 동생은 문방구 구경을 하게 되어 신이 났는지 그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친구는 입고 있던 분홍색 체크 남방을 허겁지겁 벗어 내게 건넸다. 나는 그 옷을 받아 동생의 허리에 둘러주곤 작은 고추가 보이지 않도록 셔츠 뒤쪽이 앞으로 가게 휙휙 돌렸다. 그 셔츠에도 불구하고 동생의 엉덩이는 여전히 만천하에 드러나 있었고,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로 서있었다. 초등학생인 겉모습과 달리 동생의 정신연령은 2~3살이었기 때문에 부끄럽다는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집을 탈출할 기회만 생기면 아무 거리낌 없이 다 벗고도 쉽게 길을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너네 집에 가서 놀자!”라는 친구의 말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나는 엄마가 하던 것처럼 신발주머니에서 실내화를 꺼내 동생을 신겼다. 신발을 신기고 나니 란희와 나경이가 동생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마주 잡았다. ‘너도 어서!’라는 신호에 나도 자연스레 함께 손을 잡았다. 엉덩이가 보이지 않도록 우리는 동생을 둥글게 껴안듯 감쌌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원을 유지하기 위해 뒤뚱거렸지만 운동회날 2인 3각을 하는 것 마냥 재미있었다. 그 모습이 우스워 어쩐지 웃음이 났다.

신이 난 동생이 또 방방 위아래로 뛰어 허리춤에 묶어둔 셔츠가 땅에 떨어졌을 때, 우리는 꺄악 소리를 지르며 급하게 옷을 묶어주고선 다시 또 웃어대었다. 나는 그만 울고 싶었던 순간을 까맣게 잊고선 아슬아슬한 게임이라도 하듯 손을 함께 잡아 둥그렇게 재빈이를 감싸고 우리 집으로 걸음을 이끌었다. 부끄러움으로 붉었던 내 얼굴은 숨넘어갈 듯 밀려오는 웃음 탓에 빨개졌다.

집에 도착해 우리 넷을 본 엄마는 화들짝 놀라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곤 우리가 먹으려 했던 떡볶이를 사 오셨다. 다 함께 마주 앉아 허기진 배를 채우면서 걸어오던 순간을 떠올리며 서로를 놀려댔다. “네가 아까 뒤로 걸을 때 넘어질 뻔했잖아!” 별것도 아닌 얘기를 하며 또 배가 아플 정도로 웃어댔다.

그날 그 순간 함께 내 손을 잡아준 친구들 덕분에 나는 동생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날 내 친구들이 손을 뻗지 않았더라면 나는 오랫동안 내 동생을 부끄러워했을지도 모른다. 마주친 반 아이들에게 당당히 맞서지 못해 놀림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동생을 가린다 해도 동생이 발가벗고 있었던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그 모습을 다 감출 수도 없었지만 함께 손을 잡고 나와 함께 동생을 지켜주려는 마음 덕분에 나는 그날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때 그 엉덩이를 드러낸 꼬마 아이는 이제 29살이 되어 어느 정도 부끄러움을 알아 화장실에 갈 때는 문을 꼭 걸어 잠그지만, 기회가 된다면 동생은 언제든 집을 나설 것이다. 그래서 재빈이의 팔에는 항상 이름과 보호자의 전화번호가 적힌 은색의 미아방지 팔찌가 걸려있다.

동생과 함께라면 이런 해프닝과 불편한 시선은 일탈이 아닌 일상이 된다. 그래서 이 장거리 마라톤에 지쳐 동생과의 외출이 꺼려질 때면 나는 종종 그때 맞잡은 손의 온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날 서로의 손을 잡고 원을 만들었던 친구들도 장애인을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나와 동생을 떠올릴 것이다. 함께 손을 잡고 공원을 가로지르던 그 순간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모르는 낯선 이가 아니라 친구의 동생으로, 한 꺼풀 경계와 의심을 지우고 그들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장애인의 가족과 그들의 친구들이 모두 손을 잡아 비웃음과 비난의 눈빛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단단한 울타리를 세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그렇게 함께 잡은 손의 연대가 단단해진다면 언젠가 그 시선도 조금은 달라질 것이고, 세상 가득 맞잡을 손들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바라건대 많은 사람들이 남들과는 다르고 조금은 느린 장애를 가진 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보면 가까워지고, 가까우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편해질 테니까. 장애로 인해 소외되지 않고 일상에 스며들 수 있길, 그렇게 그들이 모두의 이웃이고 친구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길, 그렇게 짐을 서로 지어 더 나은 나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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