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대신 귀로 에이블뉴스를 읽고 있는 이제승씨. 시각장애인들은 모니터를 보지 않고 ‘스크린 리더’라는 컴퓨터 보조기기를 통해 소리로 정보를 듣는다. 마우스를 사용하는 대신 키보드로 접속하게 되는데, 모니터

시각장애인 이제승씨가 노트북을 가지고 나타나 온라인 볼링놀이를 가르쳐 줬을 때, 모인 사람들은 감탄했다. 저벅저벅 발짝 소리를 듣다가 스페이스 바를 살짝 누르는 그 간단한 일이 왜 그렇게 어렵던지. 볼링공을 던져야 할 순간을 놓쳐버려 내 공은 고랑으로 굴러가버리는데 연거푸 스트라이크를 내는 그의 자신만만함이란! 박수소리 효과음에 챔피언처럼 흰 이를 드러내며 빙긋 웃어주는 그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그 날 새롭게 안 사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하루를 재미있게 보내려는 것은 그들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는데. 시각장애인들은 뭐하며 놀까? 이제승씨와 이메일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몇 년 전, 프로게이머 안요환 선수와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펼친 시각장애인이 있어 주목을 끈 적이 있는데요.

“예전에 서울맹학교에 그런 친구가 있었어요. 타고난 절대음감과 시각장애라는 환경이 더해져 소리에 굉장히 민감하게 된 듯해요. 재다이얼을 듣고 16자리까지 맞춘다고 들었어요. 물론 저는 스타크래프트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할만한 능력이 안 된다고 해야 할까? 중도실명이라 소리에 그다지 민감하지 못해서요. 대체로 시각장애인들이 소리에 민감한 건 사실이지만 스타크래프트를 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은 그리 흔한 경우가 아니예요. 매우 특별한 경우지요. 하나의 사례가 모든 시각장애인들을 대표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 시각장애인의 놀이, 비장애인에겐 생소하지만 여러 가지가 있다고요.

“엄밀히 말해서 정안인들이 하는 놀이는 거의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물론 그 규칙이나 방식에서 조금 다른 점들이 있지요. 카드나 화투의 경우에는 자체에 점을 표시하여 사용하고, 윷놀이의 경우는 기존의 윷가락이 아닌 젓가락 모양의 막대 10개에 숫자를 표시해서 놀이를 하지요.

야구나 배구, 탁구, 테니스 등도 하는데요. 기존의 방식과 다르게 공에서는 소리가 나고 땅볼로 경기가 진행되지요. 보통 시각장애인의 행사에서는 노래자랑이나 윷놀이, 훌라후프 오래 돌리기, 오델로, 시각장애인 마라톤 등의 프로그램으로 함께 즐기기도 하고요. 제가 맹학교 때 학교 축제의 일환으로 기네스대회를 했을 때는 점자 빨리 찍기나 농구 자유투 등도 재미나게 했었답니다. 하지만 간단하고 손쉽게 할 수 있는 놀이는 그다지 많지 않아요. 최근에 시각장애인용 인터넷 게임이 개발되기 전까지는요.”

- 온라인게임을 즐기는 시각장애인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시각장애인들이 손쉽게 즐길 수 있는 놀이들이 부족한 실정에서 ‘센스리더’라는 스크린리더를 개발한 ‘엑스 비전’이라는 곳에서 센스게임을 개발했어요. 컴퓨터에서 할 수 있는 게임도 있고 온라인에 접속하여 사용자들끼리 직접 대결할 수 있는 인터넷 게임도 있지요. 상당히 많은 수의 시각장애인들이 여가생활을 이 게임으로 즐기고 있어요. 남는 시간에 즐기기에는 정말 좋거든요.”

- 온라인게임에는 어떤 것들이 있어요?

“게임 종류는 다양한데, 우선 컴퓨터용 게임으로 청기 백기가 있어요. 청기, 백기, 홍기, 흑기 등을 메시지에 따라 키보드의 키를 이용하여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게임인데요. 순발력이 무엇보다 필요하죠. 그리고 인터넷 게임으로는 고스톱, 윷놀이, 볼링, 탁구, 골프, 오델로, 달리기, 카드놀이 중 뻥, 원카드, 격투기 등 14종이 있어요.

게임사이트에 인증된 아이디로 접속하면 게임방을 개설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게임을 선택해서 접속한 상대들과 즐기는 방식이지요. 서로 대화도 가능하고 온라인 상에서 다른 사람들의 게임을 관중석에서 관람하며 응원할 수도 있어요. 대부분 효과음이 정말 리얼하고 기발한 것들이라 지루하지 않고 현장감도 있고요. 게다가 게임머니도 도입돼 있어서 더 재미있게 게임을 즐길 수가 있어요.”

- 시각장애인들이 자주 가는 온라인 게임사이트 좀 알려 주세요.

“사용자들이 접속하는 사이트는 따로 없고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방식입니다. 게임 서버를 운영하는 곳은 현재 ‘엑스 비전’의 ‘센스게임’이 유일하지요.”

- 굉장히 재미있는 게임들이 많네요. 매일 온라인 게임에만 빠져 사는 건 아니겠죠?

“여가시간에 가장 즐기는 것은 프로야구를 보는 것과 관심있는 책이나 글을 보는 거에요. 프로야구는 정적인 면과 동적인 면이 결합되는 스포츠이기에 동적인 스포츠보다는 시각장애인들이 인식하고 즐기기가 수월해요. 그래서 시각장애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가 되었나 봐요. 타자와 투수들의 수 싸움 예측도 재미있고, 경기 중 여러 가지 에피소드도 재미나고요. 최근에는 라디오 중계가 없어서 안타깝기도 하지만 케이블의 등장으로 하루에 4구장에서 열리는 모든 경기를 볼 수 있어서 좋아요. 직접 응원을 간다면 더 좋겠죠? 함께 가서 상황을 설명해 줄 친구만 있다면….

책 읽는 것도 좋아하는데,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지는 못하고 있어요. 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나 무협지 위주로 읽어요. 그리고 인터넷에서 관심있는 것들을 잡다하게 찾아서 읽고는 하지요. 음악 듣고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하고요. 시각장애인들이 대체로 노래를 잘해서 제 실력으로는 같이 노래방 가기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요.”

- 시각장애인들끼리 채팅하다가 사귀기도 하나요?

“물론 채팅해서 사귀는 커플도 있지요. 최근에 그 인기가 좀 식어버린 머드 게임에서는 캐릭터들끼리 가상 결혼식도 하고, 그런 인연으로 실제로 만나 결혼까지 한 사례도 있어요. 저와 같은 반 형님은 채팅에서 지금의 형수님을 만나 결혼에 골인하기도 했거든요.

예전에 텔넷이 처음 생겨서 전화모뎀으로 통신할 때, 시각장애인 전용 BBS ‘넓은마을’이라는 곳이 있었는데요. 채팅방에서 모든 맹학생들을 만날 정도로 붐이 일어 인맥도 넓히고 친목도 다지곤 했지요. 그때 친구들과의 우정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끼리는 아니더라도 인터넷 카페나 채팅 사이트를 통해 서로 만나 좋은 결실을 맺은 경우도 있어요. 저도 그 혜택을 보았는데요. 현재 저의 여자친구를 다음 카페 ‘마음으로 보는 사람들’이라는 곳에서 운영진으로 활동하다 만났답니다.” (계속)

*예다나 기자는 ‘장애 경력 18년’을 자랑하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입니다.

“장애인에게 제일의 경력은 장애 그 자체”라고 말하는 예다나씨는 22세에 ‘척추혈관기형’이라는 희귀질병으로 장애인이 됐다. 병을 얻은 후 7년 동안은 병원과 대체의학을 쫓아다니는 외엔 집에 칩거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8년간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다. 그 동안 목발을 짚다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장애 경중에 따른 시각차를 체득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를 챙겨보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치다가 현재는 양손 검지만을 이용한다. 작업의 속도에서는 퇴보이지만 생각의 틀을 확장시킨 면에선 이득이라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고 믿는 까닭. ‘백발마녀전’을 연재한 장애인계의 유명한 필객 김효진씨와는 동명이인이라서 부득이하게 필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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