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으로 떠났던 동아리 엠티에서. 형진씨는 연세대 장애학생 동아리 ‘게르니카’ 회원이다. ⓒ신형진

신형진씨는 안구마우스를 장착하고 나서 인터넷 공간에서 누구 못지않게 자유로워졌다. 공부면 공부, 채팅이면 채팅, 온라인 게임까지 눈빛으로 즐기며 산다. 전공과 관련된 영어 원서까지 번역해낸다. 미 공군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뉴스에 오르내렸지만 정작 자신이 등장한 뉴스에서조차 왠지 주변인처럼 보였던 청년. 이메일을 통해서라면 장벽 없는 소통이 가능하겠기에 불러내 보았다. 휠체어에 누워 다니는 잘 생긴 청년, 그 작은 체구 안에 담긴 큰 세계를 들여다본다.

- “수업 중 죽더라도 학교에 간다”는 각오로 공부한다고 들었어요. 대학생활이 그렇게까지 결사적이어야 하는 건가요?

“죽어도 학교에 간다는 건 좀 과장이고요. 그만큼 학교를 다니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거예요. 사실 어릴 때에는 몸이 자주 아파서 과연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나 있을지 걱정했었어요. 초등학교 입학통지서를 받을 때만해도 어머니께선 기쁘기도 하셨지만 한편으론 많이 걱정하셨대요. 제가 자주 폐렴이나 호흡곤란으로 힘들어해서요. 근육병 환우에겐 호흡이 가장 큰 문제거든요.

실제로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병원에 입원해서 장기간 결석을 한 적도 있고요. 고등학교 때는 수업 도중에 숨이 막혀서 119구급차까지 왔던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힘든데도 불구하고 학교에 가고 싶었던 건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였어요. 같은 또래의 친구들과 만나고, 얘기도 하고 싶었거든요. 저와 어머니 모두 이렇게 힘들게 고생해서 대학까지 가게 됐으니 더욱 더 학교 가는 것에 열정(?)같은 게 생기게 되나 봐요.”

- 새 학기가 시작되었죠. 올해 몇 학년이에요?

“이번 학기로 7학기 째니 학년 상으로는 4학년입니다. 하지만 잦은 병치레 때문에 휴학도 많이 하고, 건강에 무리가 갈까봐 학기당 수업을 조금씩 들어서 아직 졸업학점을 채우려면 멀었어요. 이번 학기엔 좀 무리해서 12학점을 신청했는데, 이렇게 듣다간 아직도 2년 반은 더 다녀야할 것 같아요.”

- 대학생활에서 제일 좋은 건 뭘까요?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건 두 번째로 좋은 점 정도 되고요. 무엇보다도 대학에 와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저는 너무 좋습니다. 제가 속한 학과 사람들, 동아리 사람들, 좋은 교수님… 그 분들은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저의 소중한 보물이죠.”

-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란 이야기는 많이 들었을 텐데요.

“절 보시는 분들마다 그런 말씀들을 많이 하세요. 그런데 그런 천재 물리학자와 비교하면 솔직히 좀 부담이 되죠. 호킹 박사님은 근육병이라는 점 빼고는 저와 비교하기도 송구스러울 정도로 훌륭하신 분이잖아요. 전 아직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햇병아리일 뿐이고요. 사실 박사님은 루게릭병이고, 저는 ‘척추성 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이라고 조금 다른 병이에요. 다만 주위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그만큼 제가 앞으로 크게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라서일 거라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용기가 나곤 하죠.”

장애학생 지원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어머니는 공대생 아들의 노트를 대필해야 하는 고민을 덜게 되었다. 아들과 어머니 이원옥씨는 남다른 파트너쉽으로 온갖 한계를 뛰어넘었다. ⓒ신형진

- 폐활량이 약해 목소리가 작다고 알고 있어요. 참, 이 글은 어떻게 적고 있는 거죠?

“조용한 곳에서 둘이서 얘기할 때는 대화가 잘되는데 조금만 시끄러운 곳에서는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대화를 잘 못해요. 가끔 소형 마이크라도 갖고 다녀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해요. 밤에도 인공호흡기(국가에서 임대)를 사용합니다. 그 밖에도 기침유도기와 가래 뺄 때 사용하는 석션기 등의 의료기기의 도움을 받죠.

지금 이 글은 안구마우스를 이용해서 혼자 적은 거예요. 저는 손가락도 못 움직일 정도로 힘이 없는 상태라서, 예전에는 컴퓨터 한번 하려면 어머니나 누나, 동생이 항상 옆에서 대신 눌러줘야 했었어요. 도와주는 사람이나 저나 너무 답답하고 힘들었죠. 그러다가 4년 전 '퀵글랜스'(Quick Glance)라는 안구마우스를 알게 되었어요. 저처럼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도 눈동자만 움직일 수 있으면 얼마든지 혼자서 마음껏 컴퓨터를 할 수 있도록 되는 제품이더라고요.

'퀵글랜스'는 작은 카메라와 적외선 센서 2개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그것들을 모니터에 부착만 하면 눈동자의 움직임을 쫓아서 마우스 커서가 따라 움직여요. 클릭하고 싶은 지점을 바라보면서 눈만 깜박이면 클릭이 되고, 전용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오른쪽 클릭, 더블 클릭, 드래그도 가능합니다. 화상키보드를 이용해 타이핑도 가능하고요. 안구마우스를 구입한 이후로 저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마음껏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 아, 얼마 전 아르바이트도 했다고요.

“보통 다른 친구들은 대학 들어오자마자 과외같은 걸로 아르바이트를 하곤 하는데, 전 이번 방학에서야 처음으로 해봤어요. 미국 피츠버그대 연구원으로 계신 김종배 박사님께서 창업하신 ‘아이버드’(iBird)란 회사에서 2달간 인턴으로 일한 건데요. 인터넷을 통해 재택근무 형식이라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거기서 제가 맡은 일은 아이버드에서 개발하는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일부분을 제작하는 것이었는데요. 수업시간에 과제로 PHP, DB 작업은 지겹도록 해봤었던 거라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죠. 공부해서 이렇게도 써 먹을 수 있구나 즐거웠어요.”

집에서 안구마우스로 컴퓨터를 이용하는 형진씨. 모니터 아래와 오른쪽에 부착된 기계장치가 눈동자의 움직임을 읽어 화면을 전환하고 글씨를 입력하게 만든다. ⓒ신형진

- 책을 읽고 수업 필기를 하고 그런 것들은 어떻게 해나가는 거에요? 컴퓨터 원서들이 굉장히 두껍던데 비상한 기억력으로 완전히 암기하는 건가요?

“비상한 기억력이 있다면 저도 좋겠어요. 연세대에서는 장애학생지원센터라는 곳에서 수업마다 장애학우들에게 대필 도우미를 붙여줍니다. 수업 때 옆에 앉아서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이나 칠판에 적으시는 것을 보고 노트 필기를 대신 해주죠. 그래서 정말 다행히 제 기억력에만 의지하지 않아도 돼요. 책도 요새는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스캔을 해줘서 제 컴퓨터로 혼자 볼 수 있게 되었어요. 그전에는 가족들이 책마다 일일이 한 장 한 장 넘겨주느라 고생했었죠. 중요한 책들은 스캔해서, 그 밖의 책들은 집에서 가족이나 활동보조인이 책장을 넘겨주는 방법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 2004년 미국에 계신 외할머니를 방문했다가 죽을 고비를 넘겼죠. 미 군용기를 타고 귀국했는데요.

“그 당시는 정말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였던 것 같아요. 미국에 도착해서 하루만에 먹었던 걸 토하다가 기도가 막혀서 911구조대로 실려 갔었죠. 그 때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갔는데 거긴 우리나라로 치면 작은 병원 같은 곳이었어요. 의사 선생님들과 간호사들 모두 친절하고 따뜻하셨지만 저같은 근육병 환자가 처치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증세가 계속 악화되기만 했죠.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올 방법을 사방팔방으로 찾다가 미 공군기를 타고 오게 되었던 겁니다.

한국의 민간인으로서 미 공군기에 탑승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당시 한미 연합사령관이신 러포트 장군께서 제 딱한 사정을 전해 들으시고 힘써주신 거죠. 정말 러포트 사령관님께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메일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 안부를 묻곤 해요. 그 때의 이야기는 신문에도 실렸는데요. 궁금하시면 제 블러그를 참고해 주세요.”

* 코난도일의 자유로이 drshin.egloos.com/440803

- 장애와 더불어 산다는 게 그런 게 있잖아요. 그러려니 하고 넘기다가도 참기 어려운 것들은 어떤 거에요?

“가끔 처음 뵙는 분들이 저의 겉모습만 보고 ‘얘 말할 줄 알아요?’하고 어머니께 묻곤 하는 일이 있어요. 이젠 자주 들어서 익숙해지기도 했는데, 그래도 아직도 그런 얘기 들으면 많이 속상합니다. 겉모습만 보고 저를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연세대 컴퓨터공학과에 재학 중인 형진씨는 대필 도우미의 지원을 받아 수업을 듣는다. 형진씨 왼쪽에 앉은 사람이 대필 도우미. ⓒ신형진

- 이런 저런 고비 때마다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왔는지 궁금해요.

“저는 모태신앙으로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항상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께 해쳐나갈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해요. 저와 저희 가족이 지금까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의 보호하심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사람들의 시선, 관심 이런 건 바뀌었으면 하는 것들도 있을텐데요.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절하하진 말았으면 합니다. 저도 저지만 제 주위에 있는 장애인 친구들을 보면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장애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거든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안타까워요. 이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떤 사람에게서 장애는 단지 1%일 뿐입니다. 그 사람의 99%의 능력을 보셨으면 해요.”

- 도전적인 삶을 통해 얻게 된 교훈들을 나눠주세요.

“글쎄요. 교훈이란 말은 너무 거창한 것 같아요. 아직 전 어린 데다 이제 막 시작인 걸요. 다만 하고 싶은 말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다는 거예요. 그리고 현재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반드시 자신이 하고 싶은 일, 그리고 꼭 해야 할 일을 찾으셔서 하시길 바랍니다.”

*안구마우스 문의: 에이블몰 홈페이지 www.ablemall.co.kr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 홈페이지 www.atrac.or.kr

[나도 한마디]제28회 장애인의 날에 바란다!

[제10회 에이블 퀴즈]장애인차별금지법 특집

*예다나 기자는 ‘장애 경력 18년’을 최고의 자산으로, ‘장애인들의 생활과 문화’에 초점을 맞춰 정감 있는 기사 쓰기에 주력하고 있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입니다.

“장애인에게 제일의 경력은 장애 그 자체”라고 말하는 예다나씨는 22세에 ‘척추혈관기형’이라는 희귀질병으로 장애인이 됐다. 병을 얻은 후 7년 동안은 병원과 대체의학을 쫓아다니는 외엔 집에 칩거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8년간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다. 그 동안 목발을 짚다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장애 경중에 따른 시각차를 체득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를 챙겨보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치다가 현재는 양손 검지만을 이용한다. 작업의 속도에서는 퇴보이지만 생각의 틀을 확장시킨 면에선 이득이라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고 믿는 까닭. ‘백발마녀전’을 연재한 장애인계의 유명한 필객 김효진씨와는 동명이인이라서 부득이하게 필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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