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진수씨는 맨 위, 연필 소묘화 ‘삶’과 ‘안젤리나 졸리’ 데생을 출품했다. 최남숙씨의 작품은 오른쪽 가운데 ‘목단’. 계양센터에서 개최하는 그림전에는 장애인들이 그린 그림 38점이 전시된다. ⓒ계양센터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휠체어 생활도 어려울 정도라서 하루 24시간 등 붙이고 살아온 지 13년째. 밥 먹고 텔레비전보고 생리 현상까지 침대 위에서 해결하며 지내야 하는 나진수씨는 이럴 게 아니라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궁리 끝에 발견해낸 것이 그림 그리기였다.

수소문해 지도해 줄 사람을 구했다. 인터넷에서 만난 ‘윤봉운의 연필 그림’. 화실이 있는 부산까지 달려가는 건 말도 안될 일이고 전화통을 붙잡고 물어물어 배웠다. 사정을 알게 된 지도 선생이 몇 번 인천까지 찾아와준 것을 제외하고는 종이와 지우개, 데생용 샤프와 고독하게 씨름해야 했다. 욕창에 시달리며 몰두했던 1년 반이 흐르자, 보면 볼수록 뿌듯한 작품들이 하나 둘 탄생하기 시작했다.

그림 삼매경에 빠진 것은 그뿐이 아니다. 계양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계양센터)에는 유달리 그림공부에 열을 올리는 장애인들이 많다. 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동양화가 김연자씨와 서양화가 이택준씨. 계양센터나 장애인들의 집으로 직접 찾아간다.

계양센터 강현옥 소장은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김연자씨가 찾아왔었어요. 제가 그럴 게 아니라 활동보조인 교육부터 받아보라고 했죠”라고 말한다. 그림 그리기가 한두 번에서 그치지 않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활동보조 서비스의 틀을 활용하는 것이 나을 거라 판단했던 것. 강 소장의 예상은 적중해서 약간의 활동비가 지급되는 미술 전문 활동보조는 가르치는 사람들에게나 배우는 사람 모두에게 유익한 결과를 낳았다.

류머티즘으로 중증장애인이 된 최남숙씨도 이 기회에 그림의 기초부터 배웠다. 1살과 3살, 한창 손 타는 아이들 키워내랴, 더딘 손놀림으로 화폭을 채워나가랴 고비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류머티즘의 특성상 손을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따랐지만 붓을 잡으면 남모를 희열이 있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금세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완성된 여섯 사람의 그림이 34점. 계양센터는 ‘봄 향기로 물든 희망의 시작’ 그림전을 연다. 미술치료 시간에 완성한 발달장애청소년들의 그림 10점도 함께 선보인다. 5월 16일까지 4차례에 걸쳐 장소를 달리해 전시되는데 첫 출발은 4월 18일, 인천 계양구청에서 시작된다.

*문의: 계양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홈페이지 gycil.com 전화 032-556-8006

*예다나 기자는 ‘장애 경력 18년’을 최고의 자산으로, ‘장애인들의 생활과 문화’에 초점을 맞춰 정감 있는 기사 쓰기에 주력하고 있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입니다.

“장애인에게 제일의 경력은 장애 그 자체”라고 말하는 예다나씨는 22세에 ‘척추혈관기형’이라는 희귀질병으로 장애인이 됐다. 병을 얻은 후 7년 동안은 병원과 대체의학을 쫓아다니는 외엔 집에 칩거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8년간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다. 그 동안 목발을 짚다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장애 경중에 따른 시각차를 체득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를 챙겨보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치다가 현재는 양손 검지만을 이용한다. 작업의 속도에서는 퇴보이지만 생각의 틀을 확장시킨 면에선 이득이라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고 믿는 까닭. ‘백발마녀전’을 연재한 장애인계의 유명한 필객 김효진씨와는 동명이인이라서 부득이하게 필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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