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내영 작가. ⓒ강내영

강내영은 국내 유일의 저시력인 화면해설 작가로, 시각·청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barrier-free)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의 대표이다. 화면해설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배우의 행동이나 장면의 상황 등을 음성으로 설명해 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그런데 그녀가 정의 내리는 화면해설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화면에 나오는 인물들의 표정, 행동, 자막 등의 시각적 정보와 유추할 수 없는 청각적 정보를 음성으로 설명하는 서비스이다.

Q. 화면해설 작가가 된 것은.

2011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운영하는 정보채널 <넓은 마을>에서 화면해설 방송작가 양성교육이 있다는 공고가 떴을 때 강내영은 작가가 되고 싶었다기보다 설명하는 기술을 배우고 싶어서 지원하게 되었다. 자격 조건이 글쓰기 관련 교육을 이수했거나 전·현직 작가 대상이었는데 해당되지 않아 문의한 결과 내부 회의 끝에 시각장애인도 참여하면 좋겠다는 결정이 나서 교육을 받게 되었다.

교육 기간이 6개월 정도 됐는데 교육받는다고 바로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2년 동안 동기들과 함께 스터디를 하면서 화면해설 작가로서의 능력을 키웠는데 강내영은 모니터링을 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다른 동기들보다 더 빨리 발전할 수 있었다. 그녀는 화면해설을 하게 된 이유가 사랑때문이었다고 고백한다.

“제가 사랑했던 사람이 저보다 못 보는 저시력인이었거든요. 제가 보이는 것을 함께 보고 싶어서 화면해설을 배우게 됐어요. 제가 보이는 그대로 설명하면 이해를 할 줄 알았는데, 같은 시각장애인이어도 병에 따라 보이는 게 달라서 제 입장에서 설명을 하면 안 되는 거였더라구 요.”

사랑하는 이에게 그녀가 본 것을 설명해 주기 위해 시작했던 것이 그녀를 작가로 만들었는데 화면해설 작가가 된 후 그녀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대본 작업을 하면 살아 있는 기분이 들어요.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라는 가훈 아래 열심히 하다 보니까 많은 작품을 하게 됐어요.”

영화 ‘7번방의 선물’의 화면해설 대본 집필을 시작으로 그동안 2백여 개의 작품, 시리즈물까지 합하면 총 2천여 편의 화면해설 대본 집필 및 제작에 참여했다.

“현재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는 글로벌기업 N사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의 화면해설 작업을 하고 있어요. 주 작업이기도 하죠.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은 ‘킹덤’이에요. 우리나라는 사전제작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아 본방송이 아닌 재방송 때 화면해설이 제공되는데, N사에서는 사전제작이 되는 경우 화면해설도 같이 제작해 동시오픈을 합니다. ‘킹덤’이 그랬어요. 시각장애인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화면해설 작가의 수요가 점점 확대되어 시장이 커질 것이란 예상을 할 수 있다,

“화면해설 작가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직업이에요. 시각장애인이 없으면 이 직업도 없어지겠죠.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해는 물론 사명감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시각장애인도 비장애인이 알고 있는 걸 똑같이 알게 해 주고 싶어요. 소외되지 않고,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는 만큼 어울릴 수 있어요. 시각장애인들도 시각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요. 시각장애인도 유튜브 많이 보거든요.

좌-공연 배리어프리버전 제작 워크숍 / 우-화면해설 녹음현장. ⓒ강내영

Q. 저시력장애는.

“저는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아요. 왼쪽 눈은 가까이 있는 것만 보이고요. 어릴 때는 모두가 그런 줄 알았어요. 그냥 눈이 조금 나쁜 줄만 알았어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올라갈 때 신체 검사를 했는데, 선생님이 보이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안 보인다고 했더니 큰 병원에 가 보면 좋겠다고 해서 가게 됐죠.”

그녀는 학창 시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미술대학을 가고 싶어 넉넉하지 않은 가정환경 속에서 어렵게 미술학원에 등록을 했지만 결국 미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 미대에 가려면 데생을 해야 했어요. 저 멀리 석고상을 보고 그려야 하는데 선생님이 자꾸 각진 면이 어쩌고, 그림자가 어쩌고 하는데 못 알아듣겠는 거예요. 왜냐하면, 아그리파가 제 눈에는 흐리멍덩하게 보이니까 흐리멍덩하게 그릴 수밖에 없었어요.”

병원에서는 그녀에게 눈을 많이 쓰지 말라고 한다. 무리하면 시력이 더 나빠지는 진행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멈출 수가 없다. 일을 해야 살아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장애를 아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저시력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자체 뽀샵(포토샵) 효과로 세상이 다 예뻐 보인다.’고 작가답게 설명해 준다. 그녀는 오히려 저시력인이라는 것을 약점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의 경쟁력, 차별점이라고 얘기한다.

그동안 화면해설 작가는 비장애인의 전유물이었지만 본인이 저시력인이고 시각장애인들과 더 가까웠기 때문에 콘텐츠에 대한 피드백을 받기 쉬웠다고. 그러다 보니 실력이 향상될 수 있었고, 작품도 다양하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Q. 회사를 설립한 것은.

화면해설 작가는 순수문학 작가와는 달리 혼자서 하는 작업이 아니다. 2차 창작으로, 이미 만들어진 영상을 수없이 반복해 보면서 대사 사이 빈 공간(평균 5초)에 들어갈 문장을 써서 대본을 만든다. 그런 후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니터 요원들이 보고 피드백을 해 주면 수정작업을 거쳐 성우가 녹음을 하고, 엔지니어가 그것을 화면에 입히는 아주 정교하면서도 복잡한 작업 과정을 거친다.

강 작가는 2013년부터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소속으로 화면해설 작업을 하였고, 부산 국제영화제와 서울인권영화제 등의 배리어프리버전 제작에도 참여했다. 시각장애인은 영상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적으로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 2017년에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방송, 영화 외에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제작하고 있다.

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에서는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온·오프 라인으로 화면해설, 자막, 수어 등 배리어프리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배리어프리 콘텐츠 한 편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3개월 가량이 소요된다.

방송의 경우 3일에서 일주일, 공연 및 전시는 한 달 정도의 제작 기간이 필요하다. 화면해설 초고 작업을 거쳐 시각장애인이 사전 모니터에 참여해 피드백을 주면 수정작업을 거쳐 감수를 한 뒤 녹음-믹싱-검수가 이뤄진다.

사후 모니터 작업에도 시각장애인이 참여한다. 시각장애인이 받는 서비스에 시각장애인의 욕구가 반영되려면 시각장애인이 제작에 참여해야 함을 원칙으로 두기 때문이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제작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Q. 화면해설 서비스의 현실.

배리어프리 제작에 드는 비용은 영화의 경우 1000~3000만 원 투입이 되는데 외화는 한국영화와 달리 더빙 작업이 추가된다. 화면해설 영화가 많지 않은 것은 제작비 부담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재작년 시·청각장애인용 영화 상영 비율은 전체 영화 654만 회(회차 기준) 중 1280회밖에 되지 않아요. 0.02% 수준인 거죠. 만들어야겠다는 의지 문제 같아요. 법적으로 의무는 아니니까, 제작비를 추가로 들여서 하는 데가 많이 없는 거죠.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는 손익분기가 넘어서 배리어프리를 제작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여유가 없어요. 특히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는 제작 자체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개봉에 맞춰서 나오는 배리어프리 영화는 한국영화에 한해서 한 달에 1~2편 정도이고, 상영관과 상영시간대가 한정되어 있어서 시각장애인이 영화를 바로 즐기기에는 현실적으로 힘든 실정이다. 그리고 화면해설 작가의 작업 스타일에 따라 영화의 재미가 달라진다고 한다.

“미리 말해 주는 선해설은 지양해야 돼요. 가족이나 친구 등 비장애인과 함께 즐기려면 선해 설이 되어선 안 되죠. 함께 즐길 수 없으니까요. 누리꾼들이 포털사이트에 화면해설 어떻게 끄냐고 물어보는 이유가 거슬린다는 거였어요. 만약 영상에 맞고, 흐름에 맞는다면 비장애인들도 화면해설을 즐길 수 있을 텐데 선해설이 돼 버리니 재미가 반감돼 ‘뭐야,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벌써 알려 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죠.”

사운드플렉스웹의 제작자등록페이지. ⓒ강내영

Q. 앞으로.

그녀의 꿈은 ‘화면해설의 대중화’다. 시각장애인은 영상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설명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설명을 해 줄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시각장애인의 사회참여가 더 쉬워지지 않을까 해서이다.

강 대표는 길 안내 등 일상생활 전반으로 음성해설을 확대하고 싶어 한다. 그녀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선택지를 늘리는 것 또한 강조했다. 시각장애인은 직업적인 선택의 폭이 제한적이다. 그래서 그녀는 배리어프리 콘텐츠 제작에도 시각장애인들을 참여시켜 시각장애인이 직업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폭을 넓힐 계획이다.

“시각장애인이 전문 모니터 요원이나 성우, 사운드 편집자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싶어요. 개개인의 장애에 맞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시각장애인도 충분히 할 수 있거든요. 전맹인 친구가 라디오 방송 대본을 쓰고 녹음도 하고 편집도 직접 해요. 장애 관련 서비스들을 비장애인이 거의 만들고 있는데, 시각장애인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시각장애인도 참여해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었으면 해요.”

2017년도에 사회적기업가 육성 사업팀 7기에 선정되어 시각·청각장애인을 위한 자원봉사 앱인 사운드플렉스앱을 개발하였지만 중단됐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난해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입교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소셜 미디어 기반 화면해설 콘텐츠 제작 솔루션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배리어프리 콘텐츠 제작 플랫폼 사운드플렉스웹 런칭을 앞두고 있다.

“유튜브 영상을 가져와서 화면해설과 자막을 제작할 수 있는 플랫폼이에요. 시각·청각장애인이 원하는 유튜브 영상에 화면해설과 자막을 제작해 제공해줄 수 있어서 기대됩니다.”

#주요경력

서울맹학교 의료재활과 졸업 대구대학교 초등특수교육과 졸업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부설 미디어접근센터‘ 화면해설 방송작가 양성교육과정’ 수료(3기) 양천구 장애체험관 장애인권 강사 양성과정 수료 2019 청년창업사관학교 입교(9기)(주)사운드플렉스스튜디오 대표 (사)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소속 화면해설 작가 서울시 시각장애인용 점자가이드북 제작 기획 자문200여 편의 화면해설 대본 집필 및 제작(대표작 : <7번방의 선물>, <변호인>) (2020년 3월말 기준, 영화 141편, 드라마 59편, 애니 281편, 예능 739편, 다큐 23편, 연극 19편, 기타 영상 10편)영화제 화면해설 제작 참여 배리어프리영화제 제2회~제9회/부산국제영화제 제2회, 제18회

배리어프리버전 제작 2017 제2회 서울인권영화제 출품작 <있는 존재>, <피난>, <우리는 오늘도>, 2018 한국영화 <오장군의 발톱>, 창작뮤지컬 <비상 2> 2019 연극 <7번국도>, <명왕성에서>, <묵적지수>, <그믐, 당신이 세상을 기억하는 방식>, <인정투쟁: 예술가 편>, <1인 무대> 2020 탈춤극 <오셀로와 이아고>장애 이해 및 화면해설(배리어프리버전) 제작 강의 2013~2020 한국영화아카데미, 부산/대구/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 주안/수원영상미디어센터, 건양/동국대학교, 남산예술센터, 신촌문화발전소, 삼각산시민청, 서울연극센터 등에서 화면해설 및 배리어프리버전 제작 교육 진행화면해설 관련 콘텐츠 2014‘ 쉼과 느낌이 있는 배리어프리 영화 이야기, 배프베프!' 팟캐스트 기획 및 제작(시즌 1), 2017‘ 화면해설365법칙’ 기획 및 제작 2018 시각장애인정보방송 사운드플렉스TV <미키의 친절한 맛집> 기획 및 제작, 서울시 무장애관광도시 소개 영상 시각장애인편 제작 참여, 청와대 소개 영상 배리어프리버전 제작 2019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성희롱예방교육콘텐츠 배리어프리버전 제작수상 2018 제12회 장애인창업아이템경진대회 우수상 수상, 제6회 문화데이터경진대회 특별상 수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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