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고 쌉싸래한 그녀들의 수다>는 장애여성들의 기차 여행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여수 동백꽃을 보러 간 여정과 더불어 생활과 가족 이야기를 사이 사이 씨줄과 날줄로 엮어냈다. ⓒEBS

그녀들은 월요일마다 수다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지역 방송국 ‘마포 FM’은 공식 놀이터. 그녀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처럼 주목 받았던 때 또 언제였던가. 상큼 발랄 목소리만 들어도 생기가 흐른다. 그 기세를 몰아 여행을 떠난다 하니, 라디오를 듣던 청취자들 쫑긋 귀가 커졌다. 전동휠체어가 넉 대인데? 기차로? 여자들끼리? 장애여성들끼리?

강원도 묵호로 떠난 첫 번째 여행은 대 성공. 다음엔 어디로 갈까 몸이 근질거릴 때 교육방송이 따라붙었다. 꽃 피는 춘삼월, 목적지는 정해졌다. “동백꽃 보러 여수로 갑니다!”

카메라가 쫓아가니 이거 확실하다. 지난 번 여행 뒷얘기는 라디오라서 듣고 있는 중에도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좁은 기차 칸 어디에 전동휠체어 넉 대가 들어갈 자리가 있다는 거지? 눈으로 보니 걱정은 붙들어 매시게 생겼다. 장애인석 빈 공간에 전동휠 넉 대를 몰아넣고 그녀들, 기차여행은 삶은 달걀이라며 달걀 껍데기를 까면서 호호거린다.

장애인 여행 안내서를 내고픈 윤선씨. 두 아이의 엄마 경희씨. 방송 리포터 미경씨. 손 재간 많은 석미씨. 캄캄한 여수역에 내리니 식당은 문을 닫았고, 찾아낸 관광호텔은 계단이 있다. 뒷문으로 돌아가서야, 널판지 두 개로 임시 경사로를 만들어 아슬아슬하게 진입 성공.

스물 다섯까지 집안에만 콕 박혀 살았던 경희씨까진 아니래도, 살다가 장애인이 된 윤선씬 빼고, 언제 친구들끼리 여행할 일이나 있었을라고. 친구들 다 가는 수학여행도 나만 쏙 빠져야 했던 그 마음, 우리는 알지. 조근조근 이야기 소리에 깊은 밤이 하얗다.

세상이 그러할진대 멀리 떠나왔다고 신세계가 펼쳐질까. 누군가 경치 멋진 곳이라고 일러주었던 향일함. 전동휠체어 넉 대로 슝슝 달리기만 하면 금방 닿을 줄 알았는데 산비탈이 저렇게 가파를 줄이야. 거기 다다르기도 전에 전동휠체어째 꽈당, 뒷머리에 혹을 달게 생겼다.

바닷가까지 찾아와 회 한 접시 못 먹었다면 말이 안 되고. 펄떡 뛰는 생선을 고르며 네 여자, 또 꺄르르 웃음이 터진다. “이게 광어예요?” 접시에 다듬어 내놓은 살점을 집어먹을 줄만 알았지, 생긴 건 오늘 처음 보았던 게다. 이런 게 여행하는 재미라며, 석미씨 함박미소를 짓는다.

살림 지존 경희씨에, 녹음실에서 청산유수 말발을 자랑하는 미경씨, 유치원으로 교사 실습을 나간 석미씨. 여행 짬짬이 생활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녀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사는 게 그런 거지, 집 언저리만 뱅뱅 돌 때 2박 3일의 일탈을 부추겼던 윤선씨가 말한다. “세상 모든 분들이 내 활동보조인이다, 그렇게 용기 내서 나오면 다 할 수 있어요.”

오동도 동백섬엔 동백꽃이 절경이고 마음은 두둥실 하늘을 난다. 휙휙 전동휠체어를 몰아 그녀들, 오늘은 여수에 있다. 그리고 거침없이 손짓하며 당신을 부른다. “여행을 꿈꾸기만 하는 분들, 빨리 나오세요!”

*EBS 다큐인. 달콤하고 쌉싸래한 그녀들의 수다. 3월 24일, 25일 방송.

*마포FM. 함께 쓰는 희망노트. 월요일 코너, 그녀들의 수다.

[리플합시다]18대 국회에 장애인 국회의원에 바란다

*예다나 기자는 ‘장애 경력 18년’을 자랑하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입니다.

“장애인에게 제일의 경력은 장애 그 자체”라고 말하는 예다나씨는 22세에 ‘척추혈관기형’이라는 희귀질병으로 장애인이 됐다. 병을 얻은 후 7년 동안은 병원과 대체의학을 쫓아다니는 외엔 집에 칩거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8년간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다. 그 동안 목발을 짚다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장애 경중에 따른 시각차를 체득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를 챙겨보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치다가 현재는 양손 검지만을 이용한다. 작업의 속도에서는 퇴보이지만 생각의 틀을 확장시킨 면에선 이득이라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고 믿는 까닭. ‘백발마녀전’을 연재한 장애인계의 유명한 필객 김효진씨와는 동명이인이라서 부득이하게 필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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