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우씨는 요즘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5년째 사용해 오던 전동휠체어가 고장이 잦은데도 비용 부담이 커서 새로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 것. 턱으로 전동휠체어를 조종하는 그는 목 아래로는 움직일 수 없는 최중증장애인이다. 예기치 않게 전동휠체어가 멈춰서면 그만큼 위험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준우씨가 사용하고 있는 전동휠체어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무상으로 지급받은 것. 당시 휠체어 가격 370만원에, 턱으로 조종하도록 보조장치를 다는 데만 150만원이 들었다.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그 이상의 값어치는 있었다. 전동휠체어와 동고동락하며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도 따냈고 동료상담가로 활발하게 강의도 다닐 수 있었던 것.
결국 준우씨는 큰 맘 먹고 새로운 제품을 장만하기로 했다. 우선 국민건강보험에 기대를 걸었다. 전동휠체어 보급에 획기적인 기여를 한 보장구 보조금 제도를 처음으로 이용해 보기로 한 것. 예상금액에는 모자라지만 최대 167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불가능하다는 통고였다.
전동휠체어 보조금 지급 기준에는 "상지 도수근련 검사 3등급 이하"의 자격을 갖춰야 한다고 명시되어있다. 재활의학과 의사는 손을 사용할 수 없는 준우씨에게 "상지근력 0등급"이라는 처방전을 발급해 주었다. 예상대로 적격판정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그럼에도 공단 측의 답은 한결 같았다.
공단 측이 적용하고 있는 것은 평가기준.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 제18조,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전동휠체어를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는 경우"라는 조항을 달리 해석한 것이다. 준우씨의 경우, 턱으로 조종하는 보조장치를 장착했기 때문에 '제3자의 도움 없이'라는 조항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동휠체어 보조금 지급 시, 보조장치가 필요한 장애인은 배제하겠다는 것과 같다. 장애인 보장구 보조금 지급 기관에서 정작 장애인 보장구에 대해 무지한 것. 철벽같은 공단의 방침에 쓴 잔을 마시고 돌아서며 준우씨는 "다른 장애인들을 위해서라도 이와 같은 경우를 개선해 나갈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초창기 전동휠체어 사용자들이 전동휠체어를 교체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건강보험에 명시된 전동휠체어 내구연한은 6년. 2005년 전동휠체어 보조금 지원 제도가 시행되었으니 이 제도를 활용해 전동휠체어를 샀던 장애인들이라면 몇 년의 시간을 더 지나야 한다. 하지만 2005년 이전, 보조금 혜택 없이 전액 부담해 구입했다거나 기부단체 등에서 무상지원 받은 경우라면 생애 처음으로 이 제도를 활용할 때가 온 것이다.
더욱이 기부단체 지원 대상자 1순위는 턱이나 발 등으로 조종하는 보조장치를 달아야 할 정도로 최중증장애인인 경우가 많았다. 전동휠체어 보조금을 지원받은 경우에도 건강보험법 개정 전의 구입자라면 보조장치 부착 유무에 구애받지 않았다. 이 법은 2009년 한 차례 개정되어 자격요건이 강화되었던 것. 하지만 이들 역시 6년 뒤 다시 전동휠체어를 구입할 때는 한 푼의 보조금도 받을 수 없다.
최중증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전동휠체어는 300만원대를 훌쩍 넘어서기 일쑤다. 가뜩이나 턱없이 부족한 것이 전동휠체어 보조금 비용인데 최중증장애인이라고 차별당해서는 안 된다. 의료기술과 보조공학의 발달로 최중증장애인들도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세상이 되었다. 최중증장애인이 건강보험을 이용해 전동휠체어를 구입하려고 할 때, 보조장치 장착 유무로 좌절을 겪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준우씨의 전동휠체어 고군분투기는 ‘제이넷티비(www.jnettv.co.kr) 다큐 프로그램 '날개를 달자'에서 방송중인 '달려라 전동휠체어' 편에서 살펴볼 수 있다.
*예다나 기자는 ‘장애 경력 19년’을 자랑하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