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강문화산업대 안태성 전 교수가 기자들 앞에서 자신이 받은 차별사례를 이야기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내 목소리를 흉내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귀가 어두어서 목소리가 높고 낮음이 없고 어눌하다. 그런데 학생들을 말할 것도 없고 동료 교수들이 내 목소리를 흉내낸다. 장애를 갖고 놀리는 것도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5일 국가인권위원회 7층 인권상담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창작과에서 해직된 안태성 교수는 "한국사회에서는 장애를 가진 교수도 장애로 인한 차별에서 예외가 되지 않는다"며 첫 마디를 꺼냈다.

"장애 있다면 교수도 차별 예외 없다"

안 교수는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교수임용상 차별을 받았다며 지난 7월 17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날은 진정 건에 대한 보충자료를 제출하러 다시 인권위를 찾은 것. 자료를 인권위로 넘기기전 기자회견 형식을 빌어 기자들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회견장에는 기자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고, 안 교수를 복직을 돕고 있는 장애인단체 회원들과 학교 제자들만 북적였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안씨는 차근차근 자신이 받은 차별 사례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말이 조금 느린 편이었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조리있었다. 자신을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로 인해 잘 듣지 못해 말도 어눌하게 됐다고 소개하지만 않았더라면 장애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다. 안 교수는 한쪽 귀는 아예 들리지 않고 한쪽 귀는 보청기를 끼고 들을 수 있는 청각장애 4급이다.

"부학장이 나를 찾아와서 귀가 먹었는데 왜 조직생활을 하려고 하느냐며 밖으로 나가서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하는게 낫지 않느냐고 말하곤 했다. '튀지 말라', '따지지 말라', '말을 많이 하지 말라', '근신하라'고 해서 항상 말없이 조용히 살려고 했다. 그런데 말을 하지 않으니까 이제는 거만하다고 따지더라."

하나씩 보따리가 풀릴 때마다 차별의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2006년 6월의 일도 대표적인 차별 사례이다. "개교 10주년을 맞아 전 교직원이 중국 해남도로 4박5일동안 연수를 떠나게 됐다. 나도 여권을 신청했고, 여권 비용도 냈다. 그런데 떠나기 일주일 전에 기획실장이 만나자고 전화가 왔더라. 다음날 내 연구실에서 만났는데 해남도에서 안가면 안되겠느냐는 것이었다.

가슴이 떨리고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더라. 기획실장에게 학장님이 시킨 것이냐고 물었더니 아무말이 없더라. 그리고는 해남도 안 가시면 차후에 불이익을 드리지 않겠다고 말하더라. 학장이 시킨 것이냐고 계속 물었더니, 결국 기획실장 역할이 학장이 지시한 것을 진행하는 역할이지 무엇이겠습니까라고 말하더라."

장애를 가졌기에 붙은 딱지들, 차별들

안 교수가 청강문화산업대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99년 9월이다. 홍대 대학원 동양학과를 졸업하고 20년동안 작가생활을 한 경력을 인정받아 애니메이션과 전임강사로 채용됐다. 당시 그에게는 두 가지의 딱지가 붙었는데, 첫번째는 '6개월'이라는 딱지였고, 두번째는 '대우'라는 딱지였다. 그때는 그것이 차별인지 몰랐다.

나중에 알게 된 청강문화산업대 규정에 따르면 전임강사의 채용기간은 최소 2년이며, '전임강사 대우'라는 직위는 규정에 정해져 있지도 않았다. 얼마전 학교에서 자신의 경력증명서를 떼어보니 당시의 경력이 '전임강사'로 적혀 있었다. 안 교수는 "장애가 있으니까 시범삼아 6개월 써보자는 속셈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 교수는 6개월 넘겨 계속 전임강사로 일했고, 2001년 3월 만화창작과가 만들어지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 만화창작과로 자리를 옮긴 안 교수는 그해 10월 조교수로 승진하고 동시에 학과장에 올랐다. 1년동안 학과장이라는 보직을 수행하면서 신임 교수를 채용하는 일에도 참여하게 됐는데, 그때부터 일이 틀어졌다.

"2001년, 2004년도에는 전문대 졸업자가 교수직에 원서를 내서 규정상 부적격자라고 반대했고, 면접에도 불참한 자와 판화 경력밖에 없는 사람이 원서를 내서 만화창작과 교수로 부적격하다고 반대했다. 하지만 그들은 교수가 됐고, 현재도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이른바 '튀는 행동'으로 '찍힌' 안 교수는 2004년 8월 조교수 승진 임용기간이 만료되자 2004년 9월부터 2년 기간의 계약제 교수로 신분이 전환됐다. 그러나 이 계약은 6개월만에 파기됐고, 2005년 3월부터 '강의 전담 교수'로 전환됐다. '연구 전담'이 아닌 전대미문의 '강의 전담' 교수가 된 것이다.

올해 2월 2년의 계약기간이 만료됐고, 결국 재계약을 맺지 못했다. 학교측은 계약조건에 또 다시 '강의 전담 2년'과 '교수간 인화단결'이라는 것을 내걸었고, 안 교수는 '교수간 인화 단결'이라는 조건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하다가 계약 기간이 만료된 것이다.

왕따 시켜놓고 계약 조건으로 '교수간 인화단결' 제시

'교수간 인화단결'이라는 계약 조건은 무슨 의미일까. 이와 관련해서 안 교수의 아내 이재순씨는 남편이 받은 차별 사례 중 하나인 '졸업사진' 이야기를 꺼냈다.

"하다못해 졸업사진을 찍는데, 이것도 언제인지 알려주지 않아서 항상 평상복으로 찍곤 했다. 졸업사진을 찍을 때면 매년 학생들이 연구실로 찾아오는 것이 관례가 돼 버렸다. 미리 얘기를 해줘야 양복을 준비해줄 것이 아닌가. 남편은 회의나 학과의 모든 일정에서 배제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슨 '인화단결'이 되겠느냐!"

현재 안 교수는 "결국 학교에서 쫓겨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학교측은 '안 교수가 계약을 거부한 것'이라고 발뺌하고 있다. 장애로 인해 차별을 받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점수가 나빠서 그랬다'고 맞서고 있다.

안 교수는 이른바 '투쟁'을 시작했다. 먼저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 자신이 당한 차별을 알리고, 복직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도 '해직 처분 무효 확인' 청구를 했지만 각하 처분을 받았다. 다시 8월 29일 해직 처분 무효확인을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냈다.

장애로 인해 차별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하지만 진정서 제출 3개월이 다 되도록 인권위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보충자료를 만들어 다시 인권위를 찾은 것이다. 수년동안 받은 차별 사례를 모은 자료는 두꺼운 책 서너권이 족히 되는 분량이다.

장애인단체들 "인권위 사실조사도 없어"

현재 안 교수의 복직 운동에는 장애인단체 중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장애인차별금지실천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농아인협회, 한국DPI가 참여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도 이들 단체들이 준비한 것.

이들 단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우리 장애인단체들은 청강대의 문제가 몇 가지 편의시설이나 지원제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이해 부족으로 인해 장기간에 걸쳐 대학 내에서 장애차별이 벌어진 것은 단순히 교수임용과 관련한 노동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차별의 역사의 한 단면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하나하나의 사례들은 직접적이고 심각한 차별이라 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누적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안 교수의 문제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아야한다. 2007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도 장애인을 직접적으로 '제한, 배제, 분리, 거부'하지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장애인을 '제한, 배제, 분리, 거부'한 결과를 낳게 된다면 이는 분명한 장애인 차별인 것이다. 안 교수는 교수로 채용된 이후, 한 번도 교수인 적이 없었다. 단지 무능력한 청각장애인에 불과했다."

장애인단체들은 인권위를 향해서도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 7월 안 교수의 진정을 접수한 인권위는 진정서 제출 석 달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실조사조차 하지 않고 형식적 절차만을 운운하며 학교측이 보내온 답변서만 검토하고 있다. 이런 인권위에 과연 장애차별시정을 위한 의지가 있는 것인가?"

안태성 전 교수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조사가 이뤄지지 않자 보충자료를 만들어 다시 인권위를 찾았다. ⓒ에이블뉴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