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정책의 시행과 함께,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판정체계가 인정조사에서 ‘서비스지원 종합조사’로 변경됐다. 우리는 종합조사의 고시 시행 이전부터 해당 판정체계가 높은 의학적 장벽을 형성하고 있으며, 유형별 특성과 환경 반영을 위한 체계의 부재로 기존 수급자의 서비스 시간 하락과 장애 유형별 경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했었다. 시행 후 기존 수급자들의 서비스 시간이 대규모로 하락하자, 복지부는 당사자들과 장애운동단체의 반발을 막기 위해 인정조사 당시 서비스 시간을 ‘최초 1회’ 3년 동안만 보전해주는 산정특례 조치를 시행했었다.

오는 ‘22년 7월부터 특례조치가 종료되는 당사자들이 발생할 예정이었으며, 이에 우리는 중증장애인과 가족에게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복지부를 규탄하는 생존권 투쟁을 전개해왔다. 6월 2일, 복지부가 기존 수급자에 대한 산정특례 조치를 지속·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특례조치 최초 종료를 딱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이번 발표의 경우 ‘최초 1회’와 같은 한시적 조건이 폐지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가 ‘보건복지부의 옳은 결정’으로 환영할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애초에 ‘산정특례’라는 미봉책이 정부의 ‘장애등급제 가짜 폐지’, 즉 예산에 맞춰 판정 도구를 ‘조작’한 행위의 인멸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시 시행 이후 3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산정특례 지속’ 외에 아무런 입장과 방침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강하게 규탄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동안 산정특례는 중증장애인과 가족에 대한 시한부 고지와 다름없었다. 3년의 시간동안 두려움 속에서 생존을 걱정한 삶이 있다. 우리는 인간임을 인정받기 위해 지독한 싸움으로 일상을 버티는 중증장애인과 가족에게 시한부를 선고한 국가가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 이미 3년 전 발표됐어야 할 최소한의 입장 외에 개선 의지와 계획이 없는 무책임을 규탄함으로써 다음의 진실들을 강조하고자 한다.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의 유례없는 하락 사태를 유발한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와 '서비스지원 종합조사’는 장애인과 가족에 대한 국가의 사기 행각이다.

복지부가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종합조사 결과 기존 인정조사 급여보다 급여량이 감소 한’ 장애인의 숫자는 21,000명이다. 종전 인정조사 당시 실제 이용자 85,000명에 대입한다면 4명 중 1명의 서비스 시간이 감소한 것이다. 이 중 무려 12,000명이 발달장애인이다. 거듭 지적해왔듯이 산정특례 문제는 정부의 장애등급제 폐지가 '가짜'였음을 증명하는 사안이다. 대상자 유입의 통제 수단이었던 장애등급제는 최중증장애인조차 허덕이는 의학적 기준으로 대체되었고, 대상자 확대라는 복지부의 성과지표는 하루 최소 8시간 이상의 지원이 필요한 중증·발달장애인들을 5시간 미만 구간에 판정함으로써 급여량의 저점 평준화라는 '조작'으로 달성되었다.

결국 서비스지원 종합조사표의 본질은 예산에 맞춰 설계된 종합조작표였다. 이 조작표로 인한 종전 1급 수급자의 최대 하락시간은 241시간이며, 특례대상자 중 ‘등급외’ 판정으로 사실상 수급에서 탈락한 장애인 중 60%가 발달장애인이다. 본 판정체계가 중증·발달장애인의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보장하지 못할 정도로 결함이 있는 판정체계라는 사실이 증명되었지만, 이를 통해 신규 수급자로 등록하려는 장애인들은 ‘산정특례’와 같은 완충장치마저 없는 상황이다.

조작의 도구는 ‘표’ 뿐만이 아니다. 서비스 판정을 위한 모든 도구와 절차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절차상 가장 중요한 대면 조사는 방문조사관의 10분 질문으로 마무리되고, 당사자의 개인별 욕구와 필요도를 확인하는 조사지는 점수 산정에 반영조차 되지 않는다. 점수에 대한 이의신청 제도가 유일한 구제 장치이지만, 실상은 당사자에게 항목별 세부점수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당사자의 참여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행정상의 유리함만 추구하는 이 판정체계를 두고, 복지부는‘수요자 중심 복지 체계’라고 장애인과 가족을 기만하는 사기 행각을 벌여왔다.

현행 산정특례는 구제 제도로써도 반쪽짜리 행정조치에 불과하다.

보건복지부는 산정특례 유지방침과 함께 “종합조사 결과 1인·취약가구 등 추가급여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면 해당 급여는 제외하고 지급한다.”라는 조건을 붙였다. 이는 특례 조치를 기능제한 X1에 국한하여 적용하고, 종합조사표의 가구환경 X3, 사회활동 X2의 결과는 변화된 현재의 상황을 반영하여 적용한다는 말이다. 복지부는 이용자의 사회활동/가구환경이 변하였으니 이것이 당연한 조치인 것으로 해석하게끔 유도하지만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기존 인정조사는 기능제한 X1 내용만 조사하고, 개인별 상황에 따라 추가급여(독거, 취약, 학교, 직장생활 등)를 지원했었다. 하지만 현재 종합조사는 인정조사 당시 추가급여 항목이었던(독거, 취약, 학교, 직장생활 등)을 종합조사표 내 점수 항목‘사회활동X2, 가구환경X3’로 통합시켰으며. 기능제한X1 점수와 연동하여 종합점수로 계산(종합조사는 기능제한X1 + 사회활동 X2 + 가구환경 X3 합산하여 급여 구간을 설정)하는 방식이다. 즉 X1, X2, X3별 점수 변화가 종합조사 급여 구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이므로, 복지부의 단순한 입장은 이에 따른 서비스 시간 하락자, 나아가서는 소폭이나마 상승한 사람마저 적절한 구간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또한 현재 종합조사 X1 점수는 지자체의 활동지원 추가지원과 24시간 지원대상을 구분 짓는 매우 강력한 기준점이므로 종전 인정점수 400점 대상자가 X1 점수를 적절하게 반영 받지 못할 시에는 복지부의 보전 조치와 무관하게 ‘시간 총량’에서 치명적인 피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 산정 특례가 기존 수급자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이는 당사자의 ‘시간 총량’을 유지하는 조치와 동시에 인정점수의 기능제한X1 점수가 종합조사 내에서 같은 조건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방안을 제시해야만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종합조사 전반을 개편하고 개선하기 위한 강구책의 논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장애등급제 가짜 폐지 단계적 사기극, 대한민국과 보건복지부는 고인의 영정 앞에 사죄하고 지역사회 기반의 24시간 지원체계를 구축하라.

장애등급제 가짜 폐지 3년, 서비스지원 종합조사의 문제가 나날이 산적해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대적 개편의 시급성과 필요성은 선명해지고 있지만, 복지부는 여전히 아무런 계획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2019년 7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를 두고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며 치열한 투쟁을 이어왔다. 그럴 때마다 정부는 땜질식 정책으로 우리를 기만할 뿐 본질적 해결을 강구하지 않고 있다. 이번 ‘산정특례 유지’발표도 마찬가지이다. 정부는 장애인과 가족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요구에 조용히 하라는 듯 생수 한 병만 던져준 격이다.

이 기만을 수용하지 않겠다. 산정 특례는 근본적 해결로 사라져야 할 미봉책이지, 지속·유지 될 정책이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힌다. 이는 정부가 제도 설계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그어버린 또 다른 차별의 선이다. 지옥을 버티는 삶에 대해 ‘상황이 다르다’며 경중을 판단하는 복지부의 태도를 기억하겠다.

3달 동안 언론을 통해 보도된 사건만 7건이다. 국가의 부재 속에서 가족이 중증장애인을 죽이거나 스스로 자살하는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중년의 중증·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죽임당한 장애인과 가족을 위한 1m 남짓의 추모 공간을 얻기 위해 철도보안관의 발길질을 감수해야만 했다. 중증장애인들은 깡통이 아닌 실제적 권리, 생존권과 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예산을 요구하며 매일 아침 지하철 바닥을 기어가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 장애인과 가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의 역사를 청산해야 할 모든 국가 책임자들에게 요구한다. 삼각지역과 서울시의회에 차려진 분향소에 방문하라. 가족에게 살해당한 장애인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가족, 내몰린 시설에서 맞아 죽어야 했던 장애인들의 희미해진 흔적 앞에 고개를 숙이고, 정체된 슬픔과 나아가지 못한 애도에 사과하라. 그 자리에서 장애등급제 가짜 폐지라는 사기극과 종합 조작표의 진실을 시인하라.

우리는 국가로부터 그 사과를 받아낼 때까지, 그리고 장애인의 존재로서의 존엄과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바로 서는 사회, 중증·발달장애인의 24시간 지역사회 지원 체계가 예산으로 약속되고 현실로 구체화 되는 사회가 도래할 때까지 강경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22년 6월 7일

사)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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