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사 입구. ⓒ정재은

그리 산속깊이 박혀 있지도 않은데…인간사(人間事)에서도 멀지 않은데 외지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많은 절이 있다. 충남 금산 남쪽에 보석같이 곱게 자리하고 있는 보석사 역시 산수(山水)에 젖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는데 어찌 그곳을 몰랐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다.

입구에서 보석사로 가는길은 전나무 숲길로 빽빽하다. ⓒ정재은

금산읍에서 남쪽으로 수줍게 이어져 있는 국도 변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니 국도 변 옆으로 보석사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왠지 모를 기대감에 마음 설레며 도착한 절 입구는 작은 공터 같은 주차장에서 시작하지만 경내로 이어지는 길은 쭉쭉 뻗은 전나무길로 푸르고 푸르다. 전나무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을 따라 걸으면 마음도 맑아지는 것 같고 더구나 졸졸 흐르는 실개천을 따라가면 콧노래가 절로 나는 정다운 길이 너무나 낭만적이다.

500년 세월을 함께한 은행나무. 보석사의 진정한 보석인것 같다. ⓒ정재은

200여 미터의 전나무길의 끝에 닿으니 거대한 은행나무가 자리하고 있는데 높이가 40m, 둘레가 10.4m나 된다고 한다. 수령은 500년에 이른다고 하여 이것이 보석사의 진정한 보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이제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겠는지 가지마다 받임대를 대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였지만 그 위풍당당한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였다. 뿌리가 100평에 걸쳐 뻗어 있고 마을에 변고가 있거나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에는 소리 내어 울음으로서 재난에 대비하게 해주는 수호신으로도 전해지고 있다고 하니 영험한 나무인 것이 틀림없는가 보다.

보석사의 대웅전은 평지에 있어 접근하기가 수월하다. ⓒ정재은

은행나무를 뒤로 하고 보석사 경내로 소박한 대웅전이 아담하니 자리 잡고 있다. 보석사라는 이름은 절 앞산 중허리의 암석에서 금을 캐내어 불상을 주조하였다는 데서 이름 지어 졌다하니 이름에서 기대할 수 우리들의 상상이 얼마나 어리석은가하며 웃음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보석사는 신라 헌강왕 12년 (866년)에 조구대사가 창건한 역사 깊은 절이다. 교종의 대본산이며 한국불교 31본산의 하나로 지난 날 전라북도 불교의 이사중추기관이었다고 한다.

또한 임진왜란 때는 승병장 영규대사가 머물며 수도하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도 경내에는 의선각이라는 작은 건물이 있는데 이곳이 영규대사가 머물던 곳이다. 영규대사는 금산전투에서 조현선생과 함께 전사하여 칠백의 총에 묻힌 분이기도 하다. 절 안에는 이외에도 기허당, 산신각 등의 건물과 부속암자가 있다.

대웅전 가는 길의 작은 숲과 계곡. 추른 숲과 물 햇살이 조화를 이루는 진정 여름의 전경이다. ⓒ정재은

우리가 이름에서 기대하는 것만큼 이곳 보석사는 금은보화(金銀寶貨)같은 세속의 산물들로 꾸며진 곳이 아니지마는 자연의 역사와 한국불교의 대본산으로서 그 역사적 의의를 알차게 지니고 있는 아름답고 소박한 사찰이었다.

가시는길=대중교통이 발달하지 못하였으며 장애인 편의시설은 없다. 자가용을 이용할경우 경부고속도로 - 비룡분기점 -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 금산IC-금산읍에서 795번 지방도 이용(전북 진안방향)-보석사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경기지사에 재직 중이다. 틈틈이 다녀오는 여행을 통해 공단 월간지인 장애인과 일터에 ‘함께 떠나는 여행’ 코너를 7년여 동안 연재해 왔다. 여행은 그 자체를 즐기는 아름답고 역동적인 심리활동이다. 여행을 통해서 아름답고 새로운 것들을 만난다는 설렘과 우리네 산하의 아름다움을 접하는 기쁨을 갖는다. 특히 자연은 심미적(審美的) 효과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정화시켜 주는 심미적(心美的) 혜택을 주고 있다. 덕분에 난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장애라는 것을 잠시 접고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받아온 자연의 많은 혜택과 우리네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함께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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