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바라본 우도.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다. ⓒ정재은

동쪽으로 다시 남쪽으로 달려가니 해안가엔 먼 섬과 가까운 섬이 나란이 자리하고 있다. 멀리 우직하게 바다에 누워있는 섬은 우도(牛賭)요, 가까이서 서정적이고 신비스럽게 있는 이어도 같은 그 섬은 성산포였다.

먼 섬 우도에 가려면 배를 타야 하므로 서둘러 배 시간을 맞춰야 한다. 한 시간 간격으로 출발하는 도항선(여객선)에는 차도 함께 실을 수 있으니 차라리 차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라면 물론 오케이다.

3월의 바다에서 바라본 우도는 그야말로 소 한마리가 누워 있는 듯 산 능선은 그대로 소의 근육질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린 송아지의 맑은 눈빛이 연상되고 그 섬이 더욱 친근하고 듬직하게 느껴졌다.

우도의 시골풍경. 육지는 꽁꽁얼어있는데 이곳은 봄기운이 완연하다. ⓒ정재은

하얀 산호백사장이 고운 바닷가에 살포시 배를 내리고 도착한 우도 섬은 완연한 봄기운이 가득하다. 산은 아직 제 빛을 내지 못하고 누런 억새로 가득하지만 마을마다, 들판마다는 푸른 봄기운과 노란 유채가 한마디로 봄의 향연을 노래하고 있었다.

걸어서 우도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나 생각보다 섬은 넓었다. 바이크를 가지고 질주하는 젊은이들을 보니 보기만 해도 신이 났고 부러운 마음 가득이다.

도내에는 버스가 정기적으로 돌아다니고 있으니 차를 안가지고 간 사람들이라면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우도의 해안 절벽(해식애). ⓒ정재은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며 서정적인 정취와 바다에 흠뻑 취하는 것도 좋았지만 내가 욕심이 났던 건 남동쪽 끝의 쇠머리 오름의 우도등대였다.

모두의 만류를 뿌리치고 하나 둘 힘들게 올라가던 억새숲길의 산길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드넓게 펼쳐진 바다와 우도의 해식애를 바라 볼 때의 감동은 아직도 가슴에 생생하다.

우도등대와 푸른 바다. 그리스에 산토리니가 있다면 한국엔 우도가 있다. ⓒ정재은

그리고 우도등대에서 먹었던 삶은 달걀의 맛도…. 제주의 아름다운 마을의 풍경이 가득한 우도는 1697년(숙종 23) 국유목장이 설치되면서 국마(國馬)를 관리·사육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거주가 허락되었다고 하니 그 역사적 내력도 흥미로웠다.

부서진 산호가루로 이루어진 백사장의 옥빛은 하늘과 바다와를 하나로 이어주는 아름다운 매개체였다.

우도의 산호백사장. ⓒ정재은

주차장에서 바라본 일출봉 . 높이가182m 나 된다. ⓒ정재은

우도에서 빠져나와 성산포로 향했다. 성산 일출봉은 높이 182m. 제주도 동쪽에 돌출한 성산반도 끝머리에 있는 화산이다. 3면이 깎아지는 듯이 해식애를 이루고 있어 밖에서 바라보든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던 그 풍경이 장관이다. 깎아지는 듯한 계단을 보고 나는 의기 충만한데 또 모두들 나를 만류했다. “네가 올라가는 것은 좀 무리가 아닐까?”

내가 학부시절 오대산 정상에 올라갔다 오고 나서 생긴 허리의 금은 아직도 여전하건만 나는 언제나 자제를 하지 못한다. 턱까지 차오는 숨은 내가 가장 느껴 보고 싶은 신체적 증상중의 하나다. 그렇지만 난 자연과 함께라면 내 장애를 잊어버리고 만다.

섭지코지에서 바라본 일출봉ⓒ정재은

3월초 나는 두꺼운 옷을 다 벗어버리고도 비오는 땀을 주체하지 못하며 넘어가는 숨을 뒤로하고 성산 일출봉에 올랐다.

제주를 대표하는 관광지이자 심볼인 성산일출봉은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그 모양새 그 바람하나하나가 신비로움이고 서정적이었다. 그건 아마도 이생진 선생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의 덕분이 아닐까.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겸허하게 만들어주던 음향시 그리운 바다 성산포가 귓가에 어른거린다. 나는 성산포에 올라서서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그때 떠오른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는 시 구절 하나에 바다에 대한 너무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일출봉에서 바라본 제주 ⓒ정재은

그리운 바다 성산포 - 이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 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일출봉과 필자. ⓒ정재은

나는 언제나 자연에 빚지고 산다. 나는 언제나 어두운 마음은 자연에 고스란히 두고 온다.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한참이나 바다와 분화구를 응시하며 ‘웅웅’거리는 바닷바람에 땀과 미안한 마음을 식히고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래로, 아래로 육지로 향했다.

다음엔 더 남쪽으로 가본다.

[리플합시다]장애인차량 LPG연료 면세화 법안 무산에 대해 나도 한마디!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경기지사에 재직 중이다. 틈틈이 다녀오는 여행을 통해 공단 월간지인 장애인과 일터에 ‘함께 떠나는 여행’ 코너를 7년여 동안 연재해 왔다. 여행은 그 자체를 즐기는 아름답고 역동적인 심리활동이다. 여행을 통해서 아름답고 새로운 것들을 만난다는 설렘과 우리네 산하의 아름다움을 접하는 기쁨을 갖는다. 특히 자연은 심미적(審美的) 효과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정화시켜 주는 심미적(心美的) 혜택을 주고 있다. 덕분에 난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장애라는 것을 잠시 접고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받아온 자연의 많은 혜택과 우리네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함께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