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0년에 대학교 장학생으로 LA,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밴쿠버를 왔었다. 내 기억에 샌프란시스코와 시애틀도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 가족여행에 넣고 싶었다.

하지만 내동생이 기다리는 뉴욕과 고모댁이 있는 워싱턴DC도 가야해서 일정이 빡빡하니 건너뛸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너무 좋았던 밴쿠버는 일정에 넣어서 나는 내심 기대를 했었다.

LA에서 비행기를 타고 기대하던 밴쿠버로 이동을 했다. 밴쿠버에서의 6일도 렌터카를 했다. 왜냐면 미국 LA-샌디에이고-라스베이거스-그랜드캐년-LA 이렇게 10일 일정으로 렌터카 비용이 120만원이었다. 그런데 밴쿠버 6일이 22만원 밖에 안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캐나다 물가나 환율 차이가 나서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6일 동안 우버나 대중교통을 타고 어린 애들을 데리고 다니는 게 고생도 당연히 하고, 비용도 22만원 보다 더 들었음 더 들었을 것이다. 암튼 캐나다의 렌터카가 저렴해서 편하게 렌터카로 다녔는데, 주차 문제가 있을 줄은 나중에 알았다.

생각보다 휑하고 썰렁했던 11월 중순의 캐나다 스탠리 파크. ⓒ박혜정

우리 가족이 비수기를 노려서 온 이번 여행은 11월이다. 사계절이 있는 북반구 대부분의 나라에서 11월은 여행의 비수기이다. 그래서 항공권, 숙박, 그 외 여행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예약이 싼 편이다.

그래서 11월 초부터 12월 초 중반까지 계획했던 거지만 캐나다는 아무래도 추웠다. 내가 2000년도에 왔던 기억과는 아무래도 다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예약했던 밴쿠버의 숙소는 스탠리파크와 멀지 않았다. 그래서 도착한 날, 가볍게 스탠리파크를 둘러보고 놀자고 생각했다.

스탠리 파크를 갔더니 날씨가 추워서인지 휑하고 스산하고 황량한 분위기였다. 그런들 어떠랴~ 애들은 신이 나서 놀이터에서 놀고, 사람 없는 해변도 거닐고 나름대로 캐나다의 첫 날을 즐겼다.

아직도 왜 주차 위반인지 모르는 벌금을 냈다. ⓒ박혜정

다 놀고 난 뒤, 저녁을 먹으러 가기 위해 렌터카를 주차한 곳으로 다시 왔다. 아니! 근데 차에 뭔가 종이가 하나 있었다. 자세히 보니 주차 위반 티켓이었다.

도착해서 주차를 할 때, 바닥에 뭔가 글자가 쓰여 있긴 했었다. 그러나 분명 'Staff Only'라든가, 'Red Zond' 같은 내가 아는 글자가 아니었다. 게다가 바닥의 글자가 좀 지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냥 주차를 했는데ㅠ 주차 위반 티켓이라니!

여행을 그렇게 했고, 심지어 미국에서 몇 개월 있어 봤지만, 위반 티켓을 받아본 건 나도 처음이었다. 과태료를 내야 한다고 말을 하니, 남편은 내 탓을 했다.

'바닥에 글자 제대로 안 봤냐, 네가 그래도 영어를 아는데 그런 위험 없는 곳에 주차하라고 해야지~' 하아~~ 내 탓만 하는 남편이 밉고 화가 났다. 그렇지만, 내가 제대로 안 봤던 실수였기 때문에, 남편에게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주차된 차를 빼고 바닥을 살펴 보았다. 하지만 글자가 많이 지워져 있어서 이 주차 구역이 뭘 의미하는지 도대체 나도 잘 모르겠다. 일단은 차를 빼서 저녁 먹을 장소로 이동했다.

밴쿠버는 무료 주차장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래서 렌터카비가 저렴했나 싶었다. 저녁 먹을 곳 근처에 유료 주차를 하고, 거기 주차장 아저씨한테 위반 쪽지를 보여 주니 어플을 알려줬다. 어플을 깔고 보니 벌금을 쉽게(?) 낼 수 있었다.

남편에게 혼나고 엄한 돈이 나가서 속이 쓰렸지만, 할 수 없이 벌금 40$를 결국 결제했다. 아~ 밴쿠버 첫 날부터 또 뭔가 꼬이는 것 같아 속상하기만 했다.

멋진 풍경의 카필라노 현수교, 휠체어는 못가서 아쉬웠다. ⓒ박혜정

다음 날, 우리가 갈 곳은 카필라노 서스펜션 브릿지 파크였다. 카필라노 현수교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밴쿠버에서 가장 인기있는 장소 중 하나다.

엄청나게 긴 아찔한 다리 위를 걷는 것도 재밌었고, 울창한 숲속의 나무를 따라 걷는 트리워크와 볼만한 전시물들이 많아서 우리는 거기서 한참 시간을 보냈다.

나도 현수교로 가고 싶어서 휠체어가 갈 수 있는 길이 없는지 물어봤다. 캐나다는 장애인 시설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당연히 내려가는 길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다리 쪽은 안전의 문제 때문에 휠체어가 갈 수는 없다고 했다.

계단을 한 5~6칸 내려가면 되는 다리라서 남편이 내려줄까 했지만, 안내 직원의 얘기를 들으니 보이는 다리 뿐만 아니라 아주 좁은 다리까지 계속 이어져 있어서 힘들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나는 그냥 가지 못했는데, 휠체어 장애인도 다리에 내려갈 수 있게끔 되어 있지 않아서 좀 아쉬웠다.

그랜빌 아일랜드 마켓, 현지 시장구경은 늘 재미있다! ⓒ박혜정

그리고는 한인 마트 H마트를 들렸는데, 꽤 큰 랍스터가 한 마리 만 천원 밖에 안 하는 거다. 오늘 저녁은 삶은 랍스터를 먹기로 하고 4마리를 사서 숙소로 왔다. 갑각류를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다음 날은 그랜빌 아일랜드 마켓을 갔다. 그랜빌 아일랜드는 볼거리도 많고 퍼블릭 마켓이 있어서 캐나다의 다양한 농산물들과 맛있는 먹거리를 먹을 수 있다. 현지 시장 구경은 생각보다 신기한 것이 많아서 재밌고, 순식간에 시간이 갔다.

그랜빌 아일랜드의 맛집이라고 알려진 에더블 캐나다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캐나다에 이민 와 있는 아는 언니가 캐나다 현지 맛집을 추천해줬고, 현지 입맛에 좀 적응하면 맛있었을지, 토종 한식 입맛인 우리 가족에겐 별로였다.

점심이 입에 맞지 않았고, 오후 늦게까지 그랜빌 아일랜드에 있다 보니 배가 또 고프다고 한다. 또다른 맛집이라 알려진 Tony's Fish & Oyster Cafe를 가기로 했다. 여기는 피쉬앤칩스가 유명한데, 생선살 튀김이 바삭바삭 너무 맛있었다. 해물볶음밥도 맛있어서 다들 맛있게 먹고, 드뎌 여기는 맛집 인정~!

빅토리아 섬으로 가는 페리를 타고 갔지만, 실망한 부차드 가든. ⓒ박혜정

그 다음 날은 내가 2000년도에 왔을 때, 제일 좋았던 기억의 부차드 가든을 갔다. 부차드 가든은 빅토리아 섬에 있고, 빅토리아 섬으로 운행하는 페리 안에 우리 렌터카를 실어서 갔다 왔다.

내가 휠체어를 탄다고 말을 하자, 우리 차 옆에 다른 차량 두 자리를 비워주는 배려가 있었다. 부차드 가든은 온갖 꽃과 나무들이 멋지게 꾸며져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정원이다. 볼거리도 엄청 많았고, 너무 아름다웠던 기억이 가득해서 나는 애들과 남편에게도 보여줄 생각에 잔뜩 기대에 차 있었다.

한껏 기대하며 애들과 남편에게도 너무 멋진 곳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막상 와 보니 너무 실망스러웠다. 왜냐면 우리가 밴쿠버에 있는 동안 날씨가 안 좋아서 그런지 꽃이라고는 거의 없다시피 한 스산하고 휑한 정원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계절과 날씨 탓인지 관광객도 거의 없었고, 부차드 가든 안에는 곳곳에 공사도 하고 있었다.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하는 게 당연한 걸까... 내가 느꼈던 그 예전의 아름다움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

최초의 증기시계가 있는 개스타운, 거리의 음악가. ⓒ박혜정

내일은 토론토로 떠나야 하니, 밴쿠버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우리는 200년 된 세계 최초의 증기 시계가 15분 간격으로 증기를 내뿜으며 시간을 알려 주는 곳으로 알려진 개스타운으로 갔다.

스팀 클락, 증기 시계가 날씨가 추우니 증기가 더 많이 보였다. 구 시가지인 듯한 개스타운을 천천히 둘러 보고, 거리의 음악가들이 꽤 많이 보여서 음악도 듣고 구경도 많이 했다.

그리고 근처에 밴쿠버 룩아웃 전망대가 있어서 근처에 차를 대고 올라갔다. 아주 높지는 않지만 전망대에서 도시를 360도 다 볼 수 있어서 한번은 가볼만 했던 것 같다. 밴쿠버 전경을 내려다 보니 하얀색의 Sea Bus Terminal 이라고 된 곳이 멋져 보여서 가보기로 했다.

밴쿠버 룩아웃 전망대에서 주차위반 딱지를 또 받았지만, 잘 해결했다. ⓒ박혜정

주차된 차로 왔는데, 하아~ 또 주차 위반 티켓이 차에 붙어 있었다. 밴쿠버 너 왜 그러니ㅠ 이번엔 주차할 곳이 없어서 장애인 주차 공간에 해서 그런 것 같았다.

주차장 아저씨한테 가서 티켓을 보여주고 내가 휠체어 타서 아까 주차할 곳이 없었다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번호를 주면서 전화해 보란다. 전화한다고 뾰족한 수가 있겠나 싶었지만, 일단 공중 전화로 전화를 했다.

​전화 영어는 나도 서툴러서 두려웠지만 '나는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다. 주차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렌터카지만, 장애인 주차공간에 주차를 했다.' 라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뭐라 뭐라 쏼라 쏼라~~~ 100%로 알아 듣지는 못했지만, 한참을 얘기하다 'Ok, cancle your fine...' 어쩌고 하는 거다. 캔슬이라면 취소한다는 건데 된건가?

또 뭐라 뭐라 하길래, 나 돈 안내도 되지?라고 물었더니 'Ok, of course!'라고 했다. 후아~ 해결된 거 맞겠지...ㅋㅋㅋ

​힘들었지만 어쨌든 해결했다. 남편한테도 의기양양하게 내가 해결했어! 하니 그제서야 남편도 '잘했다, 됐네~'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래도 캐나다는 장애인 마크 같은 게 없어도 이렇게 정당한 사유라 이의신청을 하면 받아들여진다고 했다. 밴쿠버를 와서 마지막 날까지 주차 위반 과태료를 물 뻔 했지만, 잘 해결이 되어서 천만 다행이었다.

맑고 밝은 여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밴쿠버 여행이었다.ⓒ박혜정

밴쿠버에 온 첫 날, 또 마지막 날까지 주차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날씨가 좋지 않아서 맑고 밝은 여행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랴~

모든 여행이 좋을 수만은 없고, 모든 인생이 좋을 수만은 없는 것 아닐까? 그래도 우리 가족은 재밌고 즐겁게, 그리고 건강하게 여행을 했다. 11월 중순의 밴쿠버 가을을 충분히 느낀 것으로 만족했다.

앞으로 여행은 남았고, 앞으로 우리의 인생도 남았으니까...

이제 다시 내일 토론토로 떠나 보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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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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