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니 얼굴’에서 오픈마켓 셀러로서 캐리커처를 그려주고 사람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모습. ⓒ영화사 진진

지난 6월 8일 저녁 8시 용산 CGV 아이파크몰 12, 16관에서 영화 “니 얼굴” VIP 사사회가 열렸다. 23일 전국 개봉을 앞두고 열린 시사회는 출연진과 제작진의 무대 인사가 있었고, 영화 관람이 이어졌다.

장애인을 소개할 때 장애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사람’으로 보기 전에 ‘장애’를 먼저 보는 선입견을 줄 수 있어 매우 조심스럽다. 하지만 장애를 알고 사람 자체를 보는 시선을 가질 수 있다면 장애를 먼저 소개해도 좋을 것이다. ‘니 얼굴’의 주인공 정은혜는 다운증후군의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

필자가 정은혜 작가의 어머니 장차현실을 처음 만난 시기는 2002년 일본 삿포로 세계 제6회 DPI 대회에 한국 대표로 함께 참여하면서였다. 소개하시는 성함의 성씨가 둘이어서 인상 깊었다. 장차현실은 양부모의 성씨를 나란히 사용하여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활동가 같았다.

장차현실 작가의 딸 정은혜의 손을 잡고 삿포로 관광도 하고, 장애인대회도 참가하면서 장차현실 작가가 만화가임을 알았고, 장애 관련 각종 신문이나 잡지에 여성과 장애를 소재로 만화를 연재하며, 만화라는 매체로 여성과 장애운동을 하는 활동가라는 것을 알았다. 당시 정은혜는 여느 아이처럼 활발한 아이였지만 엄마의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라고 생각되었다.

‘니 얼굴’의 감독 서동일은 2005년 장애인의 성을 소재로 한 영화 ‘핑크 팰리스’로 알게 되었다. 장애인의 젠더 불평등을 영화로 만든 것은 ‘오아이스’와 같은 시기에 ‘핑크 팰리스’가 있었다. 서동일 감독은 독립 영화 작가이자 감독으로 잘 다루어지지 않은 주제를 화두로 하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드러내고 만드는 젊은 감독이었다. 장차현실 작가와 서동일 감독이 부부가 된 것은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당시 장차현실 작가는 장애를 가진 딸의 양육방법과 미래에 대한 준비, 그리고 딸을 위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과 희망, 그리고 불안과 사회적 편견 등을 안고 열심히 활동하는 장애인부모였다.

딸이 별 탈 없이 건강하게, 특수교육을 잘 받아서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을 가진 부모였지만 그간의 노력이 무색하게 청년기가 되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갈 곳 없이 집에서만 지내던 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큰 슬픔이었다.

2013년 2월 27일 딸이 외국 향수 광고의 모델 사진을 보고 연필로 습작한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을 보고 엄마는 은혜 작가의 재능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엄마가 화가이고 누구보다 가까이 있는 딸의 재능을 23살이 되어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전문화된 특수교육도 딸의 재능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졸업 후에는 갈 곳조차 없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가르치지는 않았으나, 엄마가 그림을 그릴 때 옆에서 보면서 흥미를 가지게 된 영향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집 근처에 작은 화실을 열어 화실 일을 돕도록 아르바이트를 시킨 것도 영향을 미쳤을지 모른다. 그 당시만 해도 딸의 그림에 대한 재능과 그리고 싶어 하는 욕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정은혜는 집에서 지내는 발달장애라는 외로움과 사회적 장벽을 그림을 통해 소통하고 싶은 욕구를 풀어나가는 길을 스스로 찾았던 것이다. 마치 새로운 삶을 위해 달걀을 깨고 나온 병아리 같았다.

정은혜는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주는 캐리커처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1년만에 천명의 사람을 그리며 2017년 문호리 리버마켓 야외전시장에서 ‘니얼굴 은혜씨의 천명전’을 시작으로 2018년 방앗간 옆 미술관 12인전 등 20여 차례의 초대전이나 기획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림의 재능을 발견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림 활동을 통해 엄마의 잔소리를 들어도 웃어넘기는 능구렁이가 되어 갔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포근한 미소와 구수한 언어술로 세상 사람들 속에 뿌리를 내렸다.

은혜 씨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요청으로 ‘보람씨의 행복한 직장 생활’(2018) 책자의 삽화를 맡았다. 직장에서의 장애인의 고용촉진과 인식개선을 위한 책으로 많은 삽화가 들어갔다. 힘든 작업이었지만 의미 있는 활동이었으며, 은혜씨의 창의성이 책의 내용을 풍부하고 흥미를 더하게 해 주었다.

은혜 씨는 2019년부터 2년간 잠실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로 창작에 몰두하였고, 2020년부터 양평 장애인부모연대에서 운영하는 ‘발달장애인 창작 스튜디오인 틈’에서도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틈’은 지난해 8명, 올해에는 12명의 발달장애인 예술노동자 일자리 프로그램으로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양평 장애인부모연대에서는 폐공장의 공간을 활용하여 ‘틈’의 전시회도 가진 바 있는데, 이 행사에서 참여연대의 ‘도시의 노마드’의 오프닝 축하 퍼포먼스에서 ‘틈’의 11명 발달장애인 작가들은 자연스럽게 도시의 노마드와 어울려 떼춤판이 벌어졌는데, 여기서도 은혜씨는 강렬한 춤솜씨는 독보적이었다. 영화 ‘니 얼굴’애는 이러한 활동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리버마켓 셀러 은혜씨에게 캐리커처를 그려 준 감사의 뜻으로 손님이 봉투에 5만원을 넣어 주자, 은혜씨는 ‘오늘이 설날이야’라고 말하고, 또 어느 손님이 5만원을 내고 그림값 1만 5천원의 거스름돈을 달라고 하자, 한참 계산을 하여 보다가 1만 5천원을 내어준다. 손님이 계산이 잘못되었다고 따지지 않고 부드럽게 집에 갈 차비가 부족하니 깎아 달라고 하자, ‘장사가 뭐 남는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웃음 폭탄을 안겨준다. ‘니 얼굴’은 재능을 자랑하거나, 장애인의 어두운 모습이나 동정심을 유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만으로도 아니 그것이기에 작품성이 뛰어나다.

정은혜의 그림은 꽃과 같은 식물이나 강아지 등의 동물, 캐리커처를 이용한 사람을 주로 그린다. 사람들은 사진처럼 그림을 자신의 모습보다 더 아름답게 그려 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머리카락부터 얼굴 아래로 내려오면서 그 사람 고유의 특징으로 개성을 살려 그린다. 그렇게 그리고 나면 정말 자신과 닮았음에 공감하게 된다. 예쁘게만 그리면 캐리커처가 아닌 것이다. 정은혜 작가는 누구나 개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도 개성으로 찾는 것을 체득하고 있다.

20대를 훌쩍 넘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가족의 지지를 받으며 은혜씨는 자신의 의지로 묵묵히 그림을 그려왔다. 그렇게 그린 그림이 4천 점이 되었다. 양평 문호리리버마켓의 셀러로사람들의 얼굴을 그리던 그는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림의 재능을 발견하고 '아티스트'가 되기까지의 3년 간의 활동을 아버지 서동일 감독이 영상에 담고 1년여의 편집을 통해 완성한 작품이 영화 ‘니 얼굴’이다.

장애는 다른 능력을 가진 개성이라고 한다. 자신이 몰두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것,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나름의 능력이 있다는 것,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것을 찾아 스스로 나아가는 의지와 에너지, 그림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자아존중감과 세상 사는 맛을 알게 된 딸을 ‘니 얼굴’ 영화에 담았으니, 사람들은 은혜씨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감동스럽다.

집에서는 엄마에게 한껏 짜증을 내지만 마켓만 나가면 활기를 띤다. 화도 내며, 욕구를 갖고 있는 존재 즉 집에서는 “갑”이 되는 그런 딸을 부모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렇게 살기를 원한다. 그것이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삶이다.

<또리네 집>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 등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 또는 여성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왔던 장차현실 작가는 봄여름가을겨울과 김광석의 광팬이고, 뜨개질과 노래와 춤을 좋아하고, 그림을 즐기는 딸의 모습이 바로 자신이 만화 속 장애인의 특별하지 않은 주인공이었음을 발견한다.

은혜씨가 이번이 처음 출연한 것은 아니다. 2006년 <다섯 개의 시선>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에 은혜 역으로 나왔고, 2022년 TVN 20부작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도 출연했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노희경 작가가 서촌에서 열린 정은혜 작가의 개인전을 찾으며 인연이 되었다. 이 드라마에서 ‘시설에 맡길 수밖에 없는 장애인과 가족의 평생 부담감, 설마 그림을 그릴까 가족조차도 인정하지 않다가 그림을 보고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림을 저렇게 잘 그리도록 혼자 연습을 했을까, 왜 장애인을 사람들은 거리에서 보이지 않을까 등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고, 왜 장애인 때문에 가족이 힘들어 해야 하고 책임져야 하는지와 가족으로서의 사랑 사이에 갈등을 담기도 하였고, 식당에서 장애인 흉내를 내는 아이와 그 부모의 태도, 비하와 냉대의 사회와 장애를 포용하고자 하는 지역사회의 모습 등이 대조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장차현실 작가는 현재 사)경기장애인부모연대 양평지회장을 맡고 장애인 권익옹호를 위한 활동과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영화 ‘니 얼굴’에서 사람들이 장애인이 그림을 그리는 코너에 와서 ‘그림 그려 주시나봐’라고 말하면 은혜씨는 웃으며 ‘네, 니 얼굴’이라고 답한다. 짧은 말 속에 캐리커처를 그려 준다는 설명이 포함되어 있다. 예쁘게 그려 달라는 주문에 ‘원래 예쁜데요.’라고 말하며 예쁘지 않은 캐리커처를 그려준다.

노인이 노령연금을 받아서 손자에게 자장면을 사 주는 경우 아직도 능력이 있다는 자신감과 손자를 사랑하는 기쁨을 감동으로 느끼게 하는데, 은혜씨의 작가 활동은 가족으로서는 자립과 행복 즐김의 감동이 있다. 세상 최고의 승리자는 생을 즐기는 자다. 우리는 이 나름의 생을 즐기는 모습이 가장 감동적인 것이다.

손님들이 늘어나자 잠을 쫓아가며 사진을 찍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모습, 인기가 너무 많아 탈이라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은혜씨의 모습, 방문객들과 춤을 추고 일상을 즐기는 모습에서 인기가 많아 골치가 아프다는 말로 여유까지 부린다.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있으신 분, 긍정적 에너지 충전이 필요하신 분, 힐링이 필요하신 분, 삶의 가치와 즐거움을 잃어 버리고 방황하시는 분들은 이 영화를 보면 신선한 충격과 선명한 자신의 캐리커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그렇고 그런 평범한 얼굴 속에서 특징을 찾아 개성을 살려주는 캐리커처처럼 우리는 자신의 인생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고 자신에게 충실하며 즐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장애에 대한 단단한 벽마저도 이 영화 속에서는 허물어져 버릴 것이다.

이 영화는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을 통해 첫선을 보였고, 제18회 서울환경영화제 한국환경영화부문 우수상과 2021 씬라인페스트에서 인터내셔널인스퍼레이션어워드를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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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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