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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인권에 뿌리박은 사법부로 거듭나길

책 '불량판결문' 독서 소회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07-09 13:55:03
불량판결문 표지. ⓒ블랙피쉬 출판사 에이블포토로 보기 불량판결문 표지. ⓒ블랙피쉬 출판사
작년에 시각장애인 관련 점자형 선거공보물 면수 제한이 헌법에 위배된 게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다. 한 글자를 점자로 표현하려면 2~3배 정도 크기로 해야 시각장애인들이 선거공보물에 대한 정보를 다른 이들과 동등하게 취득할 수 있음을 무시한 처사라 시각장애인 인권을 침해한 판결이었다.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장애인과 성 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에겐 상식과 인권에 맞지 않는 판결들이 이어지고 있다. 요즘 뉴스들을 통해 사법부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가 종종 생긴다. 이런 이유들을 나름대로 분석한 ‘불량판결문’이란 책이 올해 봄 전국 서점가에 출시됐다. 당시 필자는 이 책을 사서 읽어보았다.

이 책은 5장으로 이뤄져 있다. 먼저, 1장은 ‘악법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란 제목으로 시작한다. ‘악법도 법이다’는 말은 상식에 반한 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핍박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됨, 실제 구체적 사건에서 상식에 부합하게 법이 작동되어야 한다는 구체적 타당성은 국민의 힘 등 노력 없이는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음, 악법은 국회가 아닌 법원의 법 해석이란 공정을 통해 재생산된다는 점 등을 1장의 내용으로 언급했다.

2장은 ‘국민이 법원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란 제목인데, 법원이 재판 당사자와의 재판시간을 어기거나, 변론기일을 이유 없이 미루는 것, 법정에서 재판 당사자의 녹음을 허용치 않거나 당사자 말을 수사관들이 기록하는 신문조서 내용 왜곡, 장애인 차별을 신속 중지시킬 법원의 소극적 대처 등 당사자 고려 않는 느긋한 법원 태도, 소송비용 마련 어려운 사람이 신청할 수 있는 소송구조 결정이 더딘 것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상식에 맞지 않는 불량판결문’이란 제목의 3장은 청구금액 작은 소액 사건 시 판결 이유 생략하는 판결문, 가맹 본사는 가맹주와 알바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질 게 아니란 주장을 받아들인 법정의 판결, 피해장애인에게 의식주 제공의 이유로 가해자에게 집행유예 선고한 것, 외국인의 거주이전 자유는 출입국관리법으로 일정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단 판결로 배구선수 꿈을 포기하게 된 미등록 외국인 사례 소개 등을 담았다.

아울러, 23년 전 스웨터 공장 여성 살해사건에서 범인으로 지목된 김씨가 법정 철야 수사 후 경찰에서 모든 물증 확보했기에, 자백하면 2~3년 형 살고 나올 수 있단 경찰의 거짓 회유와 협박으로 인해 허위 자백했다고 했지만 김 씨의 자백과 정황 증거만으로 재판부가 징역 17년을 선고한 사례도 소개했다. 그의 경우, 재심청구도 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면서 재심 이유인 증거의 명백성과 신규성 둘 다 있어야만 청구가 받아 들여지는 엄격한 재심 사유에 대한 비판도 책에 실려있다.


법과 정의의 여신상. ⓒPixabay 에이블포토로 보기 법과 정의의 여신상. ⓒPixabay
4장의 ‘쉽게 편들 수 없는 논쟁의 판결, 그리고 법’에서는 극악범죄를 저지른 10대 촉법소년의 범행은 호기심과 우발성에 의한 것이 대다수라 강력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 범죄자와 피해자 간의 자발적 대화와 참여를 통한 갈등 해결절차로 촉법소년 범죄를 막을 수 있다는 방안을 소개했다.

또한 잘못된 음주습관을 방치해 살인을 저지른 가해자에게 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의 범죄 행위에 대한 형 감경사항을 적용하는 게 옳은 것인가에 대한 논란과 함께 2008년 8월 1일 오전 이후 살인 사건부터만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바람에, 그 이전에 벌어진 살인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폐지를 적용 받지 못하는 것 등의 내용을 논했다.

마지막으로 5장 ‘불량판결문 어디에서 A/S 받나요?’에선 나부터 법원의 불친절과 무례에 눈 감으면 안 되고, 좋은 법은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쟁취하는 것이라며, 법에 대한 투쟁은 축복임을 저자는 피력한다.

불량판결문을 A/S하는 제도인 3심제(1심, 2심 항소심, 3심 상고심 대법원 재판)를 소개하면서는 3심인 대법원 심리의 경우 심리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패소 이유조차 없이 문구만 적혀진 판결문을 받아든 사람들이 대다수라며, 국민 누구나 3심에서 대법관에게 자신의 사건을 심리 받을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법원 판결에 대한 국가배상의 경우엔 법관의 부정한 목적과 평균적인 법관이 기울였어야 할 주의 의무 위반 등을 다 입증해야만 배상할 수 있다는 너무도 엄격한 조건을 요구하기에 배상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불량판결문 A/S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A/S권한을 사법부로부터 도로 가져오자는 이야기까지 한다.

이어 법관과 판사 임용에 국민 의견이 실제로 수렴되고 있지 않은 현실을 얘기하면서, 법관 평가 시 국민 평가가 반영되는 게 최고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이외에도 판결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해 상식에 맞는 법과 판결을 만들어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를 이어가자고 하면서 이야기를 정리한다.

2019년 12월 11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2019 장애인인권 디딤돌 걸림돌 판결‘ 선정보고회 개최 전경. ⓒ에이블뉴스 DB 에이블포토로 보기 2019년 12월 11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2019 장애인인권 디딤돌 걸림돌 판결‘ 선정보고회 개최 전경. ⓒ에이블뉴스 DB
이 책을 읽으면서 장애인 포함한 국민들이 법원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좋은 계기였다. 책에서 예로 잠시 든 치과진료 도중 의료사고가 일어난 사건 소송에서 의뢰금액이 3,000만 원 이하인데, 이 금액이 소송당사자에겐 자신의 전 재산보다 많단다.

그런데 3.000만 원 이하라 판결문에 패소 이유를 생략한 법원 태도를 보니, 소송하는 당사자의 삶에 법원이 별로 관심과 이해가 없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인력이 많지 않아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소액이란 이유로 판결문에 패소 이유를 적지 않는 건 비상식적이다. 적어도 판결문에 승소/패소한 이유를 기재하는 상식은 보였으면 한다.

그리고 법원 재판 안내에서 모든 사건을 건당 평균 2분 내로 처리하도록 짠 걸 보면서는 법원의 행정 편의적인 발상을 보게 되어 경악스러웠다. 책에서 지적한 것처럼 애초에 재판 당사자와 약속을 지킬 마음이 없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러니 재판이 계속 지연될 수밖에.

물론 법원 인력이 부족해 그런 것이라 할 수 있어도, 당사자들은 재판 관련 사건이 인생에 걸린 문제일 수 있는데 그런 식으로 하는 건 당사자가 느끼기엔 무성의하다는 느낌이 들겠단 생각마저 든다. 그런 분위기에서 상식과 당사자 인권에 맞는 재판이 가능할 리 만무하다. 인력을 증원해서 효율적인 인력 배분을 통해서라도 당사자에게 성의 있는 재판을 하는 법원으로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

아울러, 23년 전 스웨터 공장 여성 살해사건에서 경찰의 협박, 회유로 억울한 17년 형을 산 김씨 경우를 보면서는, 2007년 수원에서 발생한 노숙소녀 사망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사건 현장 인근에 있는 20대 지적장애인이 10대 청소년들과 함께 경찰에 연행됐는데, 그 장애인은 신뢰관계인, 조력인 도움 없이 경찰의 자백 강요 하에 수사받았다.

경찰이 무서워 거짓 자백을 받은 후 징역 5년 형을 확정받고, 감옥생활을 한 후 출소했지만, 사실 그 지적장애인은 범인이 아니었다. 경찰이 무서워 허위자백한 것이었다. 얼마 후 재심 신청하며 사실은 내가 죽이지 않았고, 경찰의 협박에 거짓으로 자백한 것이라 했다. 재판부는 이후 지적장애인의 무죄를 확정했다.

지금도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방식은 바뀌지 않았다. 예전엔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에 장애인 사법접근권 내용이라도 있었는데, 6년 전 그 내용을 모두 삭제했다. 그러니 경찰 수사환경은 전보다 더 장애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분위기다. 이렇게 장애인에게 고압적인 경찰 분위기가 비장애인에게도 느껴진다니 공포감마저 든다.

여기에 법원의 장애 및 인권 감수성은 상당히 낮아 경찰에서 이루어진 허위 자백을 근거로 판결하면 죄를 저지르지 않은 장애인은 억울하게 형을 받을 여지가 높다. 수사와 재판 분위기가 상식과 인권에 맞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물론 최근 성범죄자로 오인된 30대 자폐인 사건에서는 재판부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해서 다행이지만 말이다.

부동문자로 인쇄된 종이에 피해자 자필로 주민등록번호와 피해자 이름만 기재돼 있고, 지장 날읻된 채 피고인 변호인이 제출한 처벌불원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에이블뉴스 DB 에이블포토로 보기 부동문자로 인쇄된 종이에 피해자 자필로 주민등록번호와 피해자 이름만 기재돼 있고, 지장 날읻된 채 피고인 변호인이 제출한 처벌불원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에이블뉴스 DB
이외에도, 염전노예사건 피해장애인 1명이 처벌불원서를 썼다는 부분도 언급되었는데, 이걸 쓴 중증지적장애인은 한글을 읽고 쓰지 못하며 자신의 이름 석 자와 생년월일만 적을 수 있다고 수사기록에 고스란히 나와 있단다. 실은 가해 염주 아들이 계속 그분을 찾아와 무인을 받은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이 처벌불원서를 1심에서 인정했으니, 상식에 전혀 부합하지 않았다.

항소심 2심에서는 처벌불원서 효력을 부인했지만, 1심 집행유예 판결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었다. 지적장애인에게는 상당히 불공정하고 상식과 인권에 전혀 맞지 않은 판결이었다. 농촌 일용임금에 임금착취 기간을 곱한 금액을 받아도 시원찮을 판이니 말이다.

노동착취 기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공소시효 관련 판결의 문제점도 이 책에서 다뤘지만 이전 칼럼에서 언급했으니 여기선 다시 언급하지 않겠다.

얼마 전 SBS의 ‘모범택시’라는 드라마에서 폭력으로 지적장애인 노동 착취한 사람들을 모범택시 운전수인 김도기(이제훈 분)가 흠씬 두들겨 혼내는 장면을 봤다. 이 사람들은 경찰과 커넥션이 있는 것으로 드라마에서 나온다. 김도기의 응징 장면에 필자는 쾌감을 느꼈다. 왜냐면 염전 노예에서도 지역 경찰과 염전업주 간의 유착 같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염전 노예 등의 장애인 노동착취와 관련해 반성했다, 숙식 제공했다는 가해자의 주장과 가해자 통장에 밀린 임금 지급 등을 이유로 가해자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피해장애인에겐 상식과 인권에 맞지 않게 판결했던 게 생각나니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만약 장애인 노동착취 판결을 상식과 인권에 맞게 했다면 모범택시란 드라마가 나올 수 있었을까? 그리고 쾌감을 느낄 수 있었을까? 아마 그렇지 못했을 것 같다.

이처럼 상식과 인권에 뿌리박지 못한 경찰과 법원 등의 사법부가 장애인단체, 시민단체 등의 판결문 모니터링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무례한 모습에서 벗어나기를 저자는 ‘불량판결문’이란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을 거다. 필자도 그 마음을 깊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책 시간 되시면 사서 읽어보실 걸 강력추천한다. 장애인 사건과 관련한 법‧판결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문제들에 대한 판결과 대한민국 사법부의 현실을 조금은 더 세세하게 볼 수 있는 책이라는 느낌이 들어서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읽으면서 이해가 쉬웠다.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결국, 경찰, 검찰, 법원 등의 사법부에 시민들이 바라는 거는 진정으로 상식과 인권에 뿌리박는 모습으로 거듭나는 거다. 그래야, 시민들이 공정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것이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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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원무 (wmlee7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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