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선거 상징하는 사진. ⓒKBS

코로나-19로 사회 분위기가 엄중한 요즘,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서 성년후견을 받는 피성년후견인에게도 선거권이 있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올해 4월 국회의원 총선 때 피성년후견인도 투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금치산제도 시행 당시에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금치산자에게 선거권이 없었는데, 성년후견제도 도입 후 민법에서 법 시행일부터 5년이 지날 시 금치산/한정치산 선고는 효력을 잃는다고 규정한 것으로 인해 피성년후견인에 대한 선거권 논쟁이 시작되었다.

성년후견제는 금치산제도 연장이니까 선거권은 없다는 주장과 정신 능력 부족으로 인한 선거권 박탈은 잘못됐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에서 서울시 선관위에 공식적 유권해석을 요청했고 결국엔 피성년후견인에게 선거권 부여라는 해석을 받아냈다는 거다.

이와 관련해 장애인권리협약 제12조 일반논평을 봐야겠다. 일반논평을 보면 정신 능력은 한 개인의 의사결정기술을 가리키며, 과학적/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맥락에 따라 능력의 표출이 달라진다고 되어 있다. 또한 정신 능력의 부족을 법적 권한을 부정하는 합법화 구실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서 법적 권한이란 장애인을 포함, 모든 이들이 갖는 천부적 권리이며, 법적 적격성법률 대리인을 통칭한 말이다. 법적 적격성이란 장애인 당사자가 갖는 실질적 권리로 개인의 법적 성격으로 인정되며, 법률 대리인은 그 권리에 따라 행동한 게 법 앞에서 인정받도록 하는 거라 이 둘은 법 앞의 평등을 위해 반드시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정치‧사회적 맥락과 환경이 장애인에게 우호적이면 의사결정 시 많은 지원을 받거나 결정을 존중받는 걸 통해 정신 능력을 표출, 법적 권한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 맥락과 환경이 장애인에게 차별적‧부정적이면 장애인이 의사결정 시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결정을 존중받지 못해 법적 권한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게 될 거다.

정신이상이나 인지장애 등으로 결정능력 손상이 있다 해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법적 권한을 부정하는 관행이 세계 여러 나라에 존재하고 있다. 그 관행의 이면에는 결정 결과가 부정적이거나 결정을 내린 사람의 결정능력에 결핍이 있다는 전제 등이 깔려있다. 우리나라의 정신적 장애인도 이런 관행을 겪으며 존엄성을 말살당하고 있다.

그런데 이 관행은 유독 장애인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인간의 역동적인 내적 심리를 정확히 사정할 수 있다는 추정에 근거한다. 심리 사정에서 불합격하면 법적 권한마저 부정당하는 건데, 역동적인 내적 사정을 모두 다 정확히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부정확하게 사정하는 측면이 적어도 1~2개 정도는 있지 않을까?

이런 것들을 종합해 생각해보면 정신 능력이 부족하다고 정신적 장애인을 포함한 피성년후견인의 선거권을 부정하는 것은 부당함을 새삼스레 보게 된다. 이들에게도 천부적인 권리인 법적 권한은 물론 법 앞에 모든 이가 평등하다는 대원칙과 대전제도 부정당한다. 이렇게 되면 이들은 당당한 권리의 주체가 아닌 객체이자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서울시 선관위의 유권해석은 피성년후견인을 포함해 성년후견, 장애여부를 불문하고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법 앞의 평등이 적용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는 시작점이자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서울시뿐만 아니라 각 시‧군‧구, 시‧도 등 모든 지자체 등에서도 이런 유권해석을 적용해 지역적 편차‧차별 없이 정신적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피성년후견인이 소중한 선거권을 행사했으면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정신적 장애인의 의사결정지원제도 도입을 위한 토론회 때 모습. ⓒ이원무

피성년후견인의 선거권 박탈의 이면에는 조력의사결정제도가 미비하거나 부재한 현실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조력의사결정제도에 대한 논의를 이전보다 더욱 활발히 진행했으면 좋겠다.

아울러 성년후견을 받음으로 인해 혼인, 이혼, 입양, 파양 시 후견인의 동의를 요구해 장애인의 가족구성권을 침해하거나 선거권 박탈하거나, 국가공무원 자격 제한하는 등의 성년후견 결격조항을 폐지했으면 한다.

궁극적으로는 대체의사결정제도의 성격이 있는 성년후견제의 폐지와 조력의사결정제도의 마련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그래서 모든 이들의 ‘법 앞에 평등’이라는 대원칙과 대전제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지켜 인간의 존엄성이 증진되는 평등한 세상이 현실로 다가오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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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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