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하면 장애인의 달임을 모르는 우리 국민들은 이제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장애인의 달 2째 날인 4월 2일에는 항상 ‘자폐인의 날’이 있다.

이 날은 자폐성장애 인식제고를 통해 자폐인과 가족이 사회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고자 유엔총회에서 2007년 지정했다. 자폐인에 대한 관심·이해를 상징하는 파란 불을 밝히는 블루라이트 캠페인은 ‘자폐인의 날’의 대표적 행사다.

우리나라에서도 ‘자폐인의 날’ 행사는 올해도 예외 없이 진행되었다. 3월 31일 오후 6시,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자폐인의 날’을 맞이해 ‘파란 빛’ 점등식이 있었고, 4월 2일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보건복지부와 한국자폐인사랑협회 공동주최의 ‘4.2 사랑콘서트’가 열렸다. 필자도 자폐인의 날 행사에 참여하고 콘서트를 즐기기 위해 사랑콘서트가 열리는 세종문화회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자폐인의 날’ 행사 때 세종문화회관 앞 거리풍경 ⓒ이원무

콘서트가 열리기 전 세종문화회관 앞의 행사장에는 ‘자폐성 장애’의 다른 명칭을 공모하는 캠페인이 있었다. ‘자폐’라는 말의 의미는 스스로 닫는다는 뜻인데, 이 말이 자폐성 장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줄 수 있어 긍정적 의미가 담긴 장애 명칭이 없을까 하여 한국자폐인사랑협회에서 실시한 것이었다.

필자도 이 캠페인에 참여했고, 14가지 장애명칭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었는데 이 가운데 ‘사회적 의사소통·행동문제 장애’를 골랐다. 자폐성 장애의 특징이 사회적 의사소통이 쉽지 않고 행동이 조금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 그걸로 골랐다.

그런데 행동에 문제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건 아닐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폐인 행동에도 나름 이유가 있고, 우리는 그 이유를 잘 몰라 이를 알아가려 노력하는 거니까. 순간 ‘사회성 장애로 선택할 걸 그랬나?’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이 캠페인이 정말 법안에서 자폐성장애의 긍정적 새 이름으로 바뀌는 시작점, 계기가 되길 바라는 바이다. 한국자폐인사랑협회에서도 긍정적 의미의 장애명칭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한다 했으니 지켜보자.

자폐성 장애의 새 이름 찾기 투표판 ⓒ이원무

‘자폐인의 날’ 사랑콘서트 시작 전 세종문화회관 안의 홀 전경 ⓒ이원무

이후 진행된 ‘4.2 사랑콘서트’는 지인의 도움으로 표를 얻어 관람할 수 있었다. 8~90년대를 풍미했던 발라드 가수인 이상우, 신효범 씨의 공연과 자폐성 장애인으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 공연 등이 무대 위를 수놓았다. 필자도 음악을 좋아하는지라 이 날 필자가 좋아하는 노래와 공연이 있어 신나게 즐겼다.

그런데 이 날 콘서트에는 중간에 쉬는 시간이 없었다. 자폐인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개는 하나에 오랜 시간 집중이 어려운 것이 자폐성 장애의 특징이다.

콘서트가 쉼 없이 진행되다 보니 도중에 집중하지 못하는 자폐인들이 생겨 사회자가 조금만 집중해달라고 말했다. 자폐인을 차별한다는 느낌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쉬는 시간 좀 마련해주지!’

또 콘서트에 보건복지부 장관이 발달장애인지원센터의 단계적 증대와 자폐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 당부 등을 말해 자폐인에게 희망을 전하는 듯 했다. 하지만 대법원, 보건복지부 등의 내빈들 축사 시간이 너무 길었다. 희망을 주기는커녕 자폐인의 날 주인공은 자폐인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제공자 중심의 행사임이 느껴졌다.

‘자폐인의 날’ 행사를 즐긴 후 일하다 집으로 돌아가서 이후 차분히 생각해보았다. 자폐인의 날 행사처럼 자폐인들의 현실이 유쾌한지 말이다.

‘자폐인의 날’을 축하하기 위한 내빈 축사 장면(좌측), 내빈과 자폐인 당사자가 함께 하는 장면(우측) ⓒ이원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콘서트 시작 직전 블루라이트 이벤트를 하는 장면 ⓒ이원무

사랑콘서트 때 국내 최초 발달장애 전문연주단체인 드림위드앙상블 공연 ⓒ이원무

얼마 전 S자폐아동 대안학교에서 폭력을 당한 자폐인 소식을 접했다. 훈육의 목적으로 자폐인에게 폭력을 쓸 수밖에 없다는 사법부 판단을 보며 ‘훈육을 위해서라면 자폐인 인권은 침해되어도 좋은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요즘 사회에서는 젊은 남성 누리꾼들이 자폐성 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 장애인을 인터넷에서 놀리는 차별행위가 늘고 있어 자폐인 사회참여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 같아 우려스럽다. 하지만 장차법에서 차별의 악의성 조건이 너무도 엄격하고 처벌대상에 온라인 언어폭력이 제외돼 있어 이 폭력을 처벌하기 어렵다.

자폐아와 관련해선 자폐성 장애를 의료적 시각인 자폐증으로 보아 치료하는 소아과, 신경정신과 등이 우리나라에 참 많다. 그런데 필자 경험에선 자폐성 장애 완화는 되나 장애를 완전히 치료하지 못한다. 치료하면 그게 무슨 장애이겠는가?

외부 시선엔 자폐인 행동이 문제로 보여 치료를 행하는 것일 텐데,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정도의 노력을 통해 장애가 완화되면 그걸로 족하다. 자폐성 장애를 소아과, 신경정신과 등에서 치료한다는 건 우리의 장애 정체성을 부정 당한다는 느낌이 들게 만들어 자폐인을 차별한다는 생각이 든다.

고용과 관련해서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자폐성 장애인 취업을 개별지도 수준으로만 한다. 일자리 구인모집은 신체장애에 경도되어 있으며, 장애가 심한 자폐인에 대한 취업대책도 없고 자폐성 장애를 업무능력의 부재라는 이유로 채용을 꺼리는 채용자들이 대부분이다. 고용에 있어서도 자폐인은 차별받고 있다.

한편 자폐성장애는 아동에만 있고 성인기에 없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자폐성장애가 있는 성인들이 존재한다. 필자와 같이 자폐성장애가 있는 성인들이 활동하는 수도권 자폐성장애인 자조집단 estas가 그 예라고 본다.

수도권 자폐성 장애인 자조집단 estas의 모임들 중 일부 장면들 ⓒ이원무

이외에도 아동기에서 성인기까지 전 연령에 걸쳐 대한민국 자폐인 복지실태를 보여주는 실태조사조차 없다. 올해의 경우 자폐인의 날과 관련, 네이버를 검색해보니 자폐인 당사자 삶과 관련된 이야기, 기사도 없다.

내빈들이 자폐인에게 희망을 얘기해도 자폐인식 부족, 자폐인 차별 등의 차디찬 현실을 생각하면 필자로선 ‘자폐인의 날’이 ‘자폐인 희망고문의 날’로 느껴진다.

일상에서 심한 차별과 비인간적 대우 속에 4월 2일만 자폐인들을 위로한답시고 제공자 중심의 콘서트를 하며 가족과 자폐인을 대함은 우리 자폐인들에겐 달갑지 않다. 자폐인의 날 행사는 우리에겐 시혜와 동정, 더 심하게는 희망고문에 불과하다.

필자를 비롯해 우리 자폐인들은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말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현실인 세상을 원한다. 자폐인이 직업으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정의를 위해 싸우며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현실인 그런 세상을 원한다.

차별 현실에 맞서 싸워 자폐인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세상을 현실로 만들도록 자신의 권리와 책임, 의무를 부단히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정부는 장차법 개정, 사법부의 정기적 장애인식 교육, 자폐성장애의 구체적 인식제고방안 마련 및 실행, 자폐인 고용환경 개선 등 자폐성 장애인 권리증진 환경을 진짜로 만들어야 한다.

자폐인 당사자, 정부, 전문가 등이 자폐성 장애 인식제고 및 차별철폐 행위를 일상에서 꾸준히 실천·노력할 때 필자를 비롯한 자폐인들에게 ‘자폐인의 날’은 ‘자폐인식 제고 및 차별철폐’의 의미인 날이 될 것임을 감히 말하고 싶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이제부터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할 때이다.

아울러 어제는 시혜와 동정의 ‘장애인의 날’이었다. 이 날을 ‘장애인식제고 및 차별철폐의 날’로 결심해 인식제고, 차별철폐, 권리증진의 의미를 되새기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계기로 삼았을 장애인들이 많았을 줄로 믿는다. 장애인들이 그런 결심과 계기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길 필자는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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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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