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은 겨울인데, 왜 봄방학이라고 해요?”

“아마도 봄을 준비하는 또 다른 겨울방학이란 말인가 보다.”

딸아이 어릴 적에 나눴던 대화이다.

어느 봄, 집 앞에서 만난 제비꽃. ⓒ김석주

동물들은 아직도 동면에 굶주려 있고, 식물들도 바짝 여윈 채로 차가운 눈 속에 움츠러 있다. 사람들은 줄어든 일조량과 적은 움직임에 심신이 약해지기 쉬운 때이고, 쇠약한 노인들은 긴 겨울 잘 이겨내다 이맘때를 못 넘기고 떠나시기도 한다. 이렇게 지쳐갈 즈음에 ‘아직도 겨울’이라는 사실보다는 ‘이제 곧 봄’이라는 희망을 말하는 것이 이 시기를 조금은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게 해주리라.

그런데,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봄은 희망이라기보다 두려움이다. 출산의 통증조차 까맣게 잊을만큼 우주를 통째로 품은 양 희망으로 만났던 아기와 한 해, 두 해를 지나면서 눈맞춤도, 걸음마도, “엄마, 아빠, 맘마” 말 한마디도 제 때에 자라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어느 새 사계절은 사라지고 겨울만 느끼게 된다. 여섯 해, 일곱 해가 지나도 여전히 꽃도, 잎도 돋아나지 않는 나무를 응시하며, 차라리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오늘로 세상이 멈추었으면 하는 시린 절망에 이르게 된다.

뭇사람들에겐 화사한 봄 햇살이, 절망에 갇힌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어지러운 공포로 다가오기도 한다. 새 유치원에서 쫓겨나지는 않을까, 새 선생님에게는 뭐라고 설명할까, 저 멀리 특수학교로 보내야 할까, 무서운 사춘기에 중학교 친구들에게 맞지는 않을까, 그리고 이제 어른이 된 아이는 어디로 가야할까. 뭇사람들에겐 피어나는 청춘이, 장애청년들에겐 여전히 혹한이다.

전철에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발달장애청년은 혐오의 대상이 되고, 직장에서 굼뜨고 답답한 장애인은 막말과 무시의 대상이 되고, 명절에 모인 친척들 사이에서는 누구도 그의 진로를 묻지 않는 투명인간이 된다. 장애인의 카톡 친구는 엄마 밖에 없으며, 주말에도 가족들과만 데이트한다.

장애인들의 집은 저 멀리 외딴 곳에 지어져 있고, 직장은 보호작업장으로 분리되어 있고, 직업훈련센터조차 동네주민들이 위험하고 혐오스럽다며 짓지 못하게 막아선다. 그리고 이 사회는 장애인에게 하루 8시간의 노동에 월급 10만원을 주며, 알아서 살든지 말든지 외면한다.

뭇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오늘 밤 40도의 열감기 한 번으로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남은 평생을 위와 같은 취급을 당하며 살 수 있을까요?”

한 해, 두 해, 십 년, 이십 년, 꽃이 피지 않는 나무만 바라보며 절망하다 어느 날 나는 문득 알게 되었다. 나무가 자라지 않는 게 아니라, 이 땅에 아직 봄이 오지 않았음을, 이 사회가 아직도 찬바람과 눈깨비만 흩날리는 한기 서린 긴 겨울임을......

그래서, 나는 다시 기다린다. 진짜로 봄이 오면 나의 나무에 꽃이 피리라. 한겨울 내내 단 하루도 빠짐 없이 실오라기 같은 빛을 찾아 쪼여주고, 시린 바람은 가슴으로 품어 막고, 피땀으로 기름진 흙과, 흘리면 흘릴수록 맑아진 눈물로 가꾼 나의 나무에 싹이 돋고 꽃이 피리라. 2월 어느 밤 내 꿈에 보았던 아름드리 나무가, 진짜로 봄이 오면 바로 이 땅에서 활짝 피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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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주 칼럼니스트 청년이 된 자폐성장애 아들과 비장애 딸을 둔 엄마이고, 음악치료사이자 부모활동가로서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을 만나고 있다. 현장의 문제와 정책제안,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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