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은 자연분만이었나요?”

“치료는 어떻게 해왔나요?”

“장애등급은 무엇인가요?”

아들 두 돌 때 처음 치료실의 문을 두드렸던 날부터 스무 살이 된 지금까지 학교, 치료센터, 복지관 등을 방문할 때마다 받는 질문들이다. 그리고 ‘자폐 1급’이라는 대답에 이르면, ‘아, 네에...’라는 간소한 반응으로 많은 의미들을 축소해 버린다.

인구 100명 중 1~2명이 자폐성 장애를 갖는다는데, 99%의 비장애인들은 접어두더라도 장애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이들은 얼마나 ‘자폐’를 이해하고 있을까? 왜 이들은 20년 동안이나 나와 아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똑같은 기록들만 남기고 있을까?

현재 학교에서는 영유아 때부터 발달장애 조기개입을 강조하고,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된 모든 학생들에 대해서 학기마다 개별화교육계획안을 작성하여 학과목 뿐 아니라 개인별 행동특성과 개선 방안 등을 기록하고 평가하고 있다. 그렇게 20년 동안 공들여 쌓아놓은 한 개인의 능력들은 다 어디로 증발시켜 버리고, 또 ‘자폐’라는 한 단어로 기록을 다시 시작하려는 것인가.

“아들은 한자 6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지능로봇 및 과학상자 경진대회 수상경력이 있습니다. 설명서를 보고 전 과정을 혼자서 조립할 수 있으며, 컴퓨터로 주어진 프로그램을 입력할 수 있습니다.”

“네에, 식사는 혼자 할 수 있나요? 용변처리는 가능한가요? 자해나 공격성, 이탈 행위는 없나요?”

“네, 없습니다. 그런데 재활작업장에서는 어떤 일을 시키나요, 능력별 분업화는 되어 있나요, 발전적인 자격증 과정을 진행하나요?”

“아뇨, 종이백 접기 등 단순작업만 합니다. 그런데 아드님의 다른 특이사항은 없나요?”

“발음이 어눌해서 문자로 소통이 가능합니다. 심심할 때면 몸을 좌우로 흔드는 상동행동이 있습니다.”

“아, 상동행동요? 다른 이용자분들이 따라할까 걱정 되네요.”

장애인을 고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혼자서 이동하고, 말할 줄 알고, 단체 지시에 따르고, 하루 8시간의 노동을 견뎌내는 비장애인의 환경에 맞는 사람만 일 시켜준다는 시혜적 의미일까? 아니다. 장애인을 고용한다는 것은 휠체어로 이동 가능한 엘리베이터와 경사로를 설치하고, 점자 안내와 문자 수단을 준비하고, 지적장애인에게 적합한 쉬운 언어를 사용하고, 그리고 자폐인의 특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환경을 갖춘다는 인권적 의미여야 한다.

그러면 자폐의 특성이란 무엇인가? 의사소통과 감각통합의 어려움을 평생 가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적 기능이나 정서적 교감, 사회적 욕구의 결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표현기술의 부족으로 가려져 있을 뿐,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각자의 타고난 재능이나 성향이 다르며, 능력의 발전과, 관계의 안정과, 성취의 경험을 추구한다.

언어장애와 상동행동을 가진 인도의 자폐 시인 티토는 컴퓨터 자판을 익히고서야 자신의 마음을 글로 표현할 수 있었다. ‘지적장애 판정을 받던 날 비틀거리며 호텔 방으로 돌아온 엄마는 아이를 안고 자기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었다. 아이도 슬펐지만, 자신의 고통스러운 느낌을 표현할 수 없었다. 말할 수 있다면, 아이는 엄마한테 정말 위로가 될 말을 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암담한 앞날을 생각하며 울고 있는 엄마 앞에서 아이는 즐거운 듯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엄마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즐거운 듯 춤을 추며 빙빙 맴돌았던 티토,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 겉모습에 더 절망하며 울부짖었으리라. 그렇다면 대부분의 부모들이 티토보다 더 나은 공감능력을 가졌다 할 수 있을까?

신경과 전문의였던 올리버 색스는 뚜렛증후군으로 틱장애와 강박증을 가진 외과 의사 베넷의 사례를 이야기한다. ‘아주 훌륭한 외과의사죠. 그런데 가끔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소리를 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수술에는 지장이 없을 테니까요.’ 복도를 깡충깡충 뛰어다니고, 손이나 발로 동료들을 계속 톡톡 두드리며, 허공에 발길질을 해대는 외과의사에게 외래환자들은 끊이지 않았고, 그의 아내도 단지 특성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일 뿐이었다.

동물학 박사가 된 자폐인 템플 그랜딘은 사춘기 시절, 심한 자해로 정신과 병동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보내었고, 자동문을 지날 때 느껴지는 불안감을 극복하고자 문 앞에서 들락거리기를 몇 시간 동안 반복해야했다. 그러한 자신의 감각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압박조끼를 발명하고, 동물들에게 적용시켜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안락사를 도왔다.

위의 사례들은 자폐인의 천재성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장애적 특성 속에 감추어진 인간 본연의 능력과 감정, 관계들이 엄연히 살아있으며, 그 특성이 또 다른 장점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에 발달장애인의 어머니가 대표를 맡아 대부분 장애인 직원으로 구성된 서울의 모 사회적 기업에서는 지하철 노선 외우기를 즐기는 자폐인의 특성을 활용해 꽃배달 업무를 시켰고, 수 개념이 정확한 직원에게는 제과제빵의 계량 업무를 맡겼다고 한다. 그리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경우에는 직원의 문제가 아니라, 업무분장을 잘못 설정한 회사의 책임으로 여긴다 하였다.

장애인 고용 현장은 이렇게 인식되고 진행되어야 한다. 영유아기부터 개입된 교육의 성취도와 발달 과정, 재능 계발 정도와 보완되어야 할 특성에 대한 상세한 기록들이 학교에서 복지관으로, 직업재활장에서 고용현장으로, 평생에 걸쳐 한 발달장애인의 보조기구가 되어야 한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점자와 보도블록이, 지체장애인에게는 휠체어와 리프트가, 자폐인에게는 직장과 사회 전체의 인식 공유가 생존의 필수 보장구이다.

인용 문헌:티토 라자쉬 무코파드야이(2005/마음나무/한얼미디어), 올리버 색스(2005/화성의 인류학자/바다출판사), 템플 그랜딘(2005/어느 자폐인 이야기/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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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주 칼럼니스트 청년이 된 자폐성장애 아들과 비장애 딸을 둔 엄마이고, 음악치료사이자 부모활동가로서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을 만나고 있다. 현장의 문제와 정책제안,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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