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웃은 세상
목록
남한강변에서 발견 된 할머니와 손자의 시신을 보면서
카테고리 : 함께웃은 세상 | 조회수 : 11382017-03-12 오후 9:01:00

남한강변에서 발견 된 할머니와 손자의 시신을 보면서

 

강민호

지난 5월말 씀에 충주 남한강변에서 할머니와 손자의 시신이 발견 되었다. 4월말쯤 인천에 있는 집을 나간 후에 20여 일 동안 연락이 없고 행방도 알 수 없었던 할머니와 손자가 익사채로 발견 된 것이다.

 

그때까지 할머니와 손자의 행방을 추적보도 했던 국내 중요언론들은 할머니가 존자와 함께 동반 자살했다고 보도 하였다. 나는 언론에서 부모들이 자식들과 함께 동반자살을 했다는 뉴스 나올 때마다 사람이 보여 줄 수 있는 제일 오만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건의 할머니처럼 자신이 없는 후에 어린자식들이 어떻게 살게 되는 걱정이 되었어도, 사람이 해서는 안 돼는 행위이라고 생각해서이다. 사람들이 살고 죽은 일은 신()만이 할 수 있고 해야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는 자살하거나 동반 자살하는 것은 신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하는 오만한 행동이다.

 

그런데 나는 연론들 통해 할머니와 손자의 대한 사연이 보도 될수록 할머니와 함께 동반 자살했던 손자의 모습이,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두게 운명 중에 하나였다고 생각했다. 영국의 유명한 시인이 로버트 프로프스의 가지 않은 길에서 말했던 모두 사람들에게는 두게 운명이 있다. 이 두게 운명 중에 사람들이 선택하는 운명이 실제 사람들의 삶이 되는 것이다. 나에게도 예초 두게 운명이 있었다. 지금처럼 자립생활을 하는 중증장애인 삶과 할머니와 함께 동반자살 할 수밖에 없었던 이 손자 같은 삶이 있었다.

 

나는 다행하게도 자립생활을 하는 운명을 삶으로 선택 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의 삶을 선택 할 수 있었던 것은 주의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모의 소개로 장애인복지회관에서 치료받게 되면서 복지혜택을 받게 되었고, 장애인복지회관의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특수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특수학교에서 나는 정규교육과 내 스스로 생활을 할 수 있는 기술을 익혔다. 그리고 내게 꼭 필요한 마우스스틱과 전동휠체어도 특수학교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지원받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할머니께서 안계서도 혼자서도 기본 생활 할 수 있고 글짓기만큼은 잘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에 나는 대학에 진학에 공부도 하고 싶어졌고 어려워도 자립생활도 하고 싶다는 꿈도 가지게 되었다. 그때 내 처지를 생각하면 전혀 불가능한 꿈이었지만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만났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고 자립생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에 그런 사람들을 만났지 못했다면 지금 나의 삶은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어쩌면 남한강에서 동반자살 했던 할머니와 손자처럼 나도 우리 할머니와 함께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 할머니도 자신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되는 나 때문에 편의 눈을 감을 수 없고 나 역시도 할머니 없이 살아갈 길이 막막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로 다른 가족들도 있지만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양쪽에게 매우 부담스런 일이다. 다른 가족들이 나와 함께 살면 일상생활을 물론이고 경제적인 생활을 하는데도 많은 장애가 있을 밖에 없고. 나도 그런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죄인처럼 생활 할 수밖에 없다. 주간보호 시설과 장애인활동보조지원 서비스도 실시하고 있지만 그것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이용할 수 있고 많은 시간을 다른 가족들이 나의 수발을 할 수 밖에 없다. 장시간 내 수발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뇌경색이 있었던 그 손자의 양육 때문에 가족 간에 갈등이 일어난 것처럼 다른 가족들 간에도 갈등이 일어났을 것이다.

 

이 할머니가 손자와 함께 남한강에 몸을 던졌던 것도 뇌경색이 있었던 그 손자를 부양하는 문제로 가족들 간에 갈등이 일어났던 직후였다. 나는 그것을 알고 우리나라에서도 독일의 수발보험 같은 장애인 가족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제도가 있었다면, 그 할머니가 손자를 대리고 남한강에서 동반자살을 않았을 것이다. 장애가 있는 노인을 부양하는 가족들에게 사회보험 혜택이나 소액이라도 제정지원 해준다면, 나와 그 손자처럼 장애가 있는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도 크게 부담이 안 될 것이다. 이런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이 할머니가 선택 할 수 있는 최선에 방범을 동반 자살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할머니와 손자의 죽음이 복지사각지대가 여전히 많은 우리사회가 저질러 타살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그 할머니가 손자를 대리고 남한강에 가는 모습을 상상하면 우리 할머니와 내가 울면서 바다에 들어가는 모습으로 대치되어서 소름이 돋았다.

 

 

2016, 9,

 
태그 에이블뉴스 기한
댓글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