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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카테고리 : 사제의 공간 | 조회수 : 2472020-03-13 오후 6:34:00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강론 듣기 : https://youtu.be/WF3R2gvd1IY




포도밭 주인의 무던한 인내심을 무너뜨린 소작인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포도밭을 만들고 경작을 맡기고 정해진 바만 받겠다고 말한 주인은 소작인들을 믿었습니다. 소작인들은 마치 자신들이 주인인 듯 마음껏 경작을 했을 겁니다. 주인이 곁에 있지 않았고 간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은 농사의 결과물 중 정해진 부분만 주인에게 돌려주면 계속 그 밭에서 일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런 생활에서 착각이 일어납니다. '주인은 오지 않으니 어차피 이곳은 우리 것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익숙해진 생활이 가져온 이 착각은 주인의 존재를 망각하고 무시하며 업신 여기는 수준을 발전합니다. 그래서 결국 그 아들까지 죽이게 됩니다. 




주인은 생각이 없는 사람인 듯 계속 부질 없는 노력을 합니다. 기대를 품고 종들을 계속 보내는 것은, 또 결국 아들을 보내는 이유는 주인이 소작인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 그리고 바리사이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고 사람들과 하느님을 연결하는 자리에 섰던 사제들, 그리고 사람들을 대표하고 그들에게 중요한 모든 것을 결정하던 원로들은 그야말로 '소작인'의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이야기가 끝나자 그들은 모두 분노합니다. 부끄러움이 아니라 화를 내며 예수님을 붙잡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은 바로 그들이 그동안 백성으로 부르며 다스리던 이들 사이에 예수님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진 힘은 구세주로서 전지전능한 힘과 능력 그리고 그분의 사회적 지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백성의 지도자나 봉기를 일으킬 만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사람들 안에 계셔서 사람들에게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렇게 살았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장 큰 힘이 되었고 유일한 방패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만약 예수님을 잡았다면 바로 그들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소작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고 그들은 그럴 수 없었던 처지였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백성이 이 이야기를 그냥 교훈적인 이야기로만 들었으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을 이길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은 아무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들의 분노는 컸지만 그래도 그들은 지혜를 발휘했을 겁니다. 




이후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붙잡았고 십자가로 죽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죄를 붙이려 노력을 했고 결국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주님을 죽입니다. 하느님의아들을 아들이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죽였습니다. 그 아들조차 자신들만이 인정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사람들 사이에 머물며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셨던 예수님의 메세지는 듣는 이의 자리와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뜻으로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주님이 사람들을 정말 사랑하셨다는 것이며 그들 안에서 당신의 마지막을 맞이할 때까지 피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자격이 있어야 하고 배움이 있어야 하느님을 알 수 있고 또 신앙에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백성들 안에 있는 구세주는 지금도 충격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 전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이 이야기를 하며 제가 듣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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