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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들이 없었던 삼일 독립만세 운동
카테고리 : 역사에서 배운디 | 조회수 : 4382021-03-01 오후 9:58:00

리더들이 없었던 삼일 독립만세 운동

 

강민호

 

우리들의 독립선언서 낭독과 우매한 백성들이 일으키는 폭동과는 아무관련 없다.’ 이 말은 191931일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종로 경찰서에 연락해서 스스로 체포당했던 민족대표 33인들이 재판받으면 말했던 공통된 말이었다.

 

또한 독립선연서 낭독한 직후 체포당한 한용운은 취조관이 미국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고 오스만제국(터키)의 식민지들만 해당하고,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은 해당이 없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몰랐고, 조선도 병합된 나라서 독립선연문서만 낭독하면 국제사회가 우리나라를 독립시켜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대합했다. 굳지 한용운 입장에서 별명하자면 지금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달되지 않은 당시에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민족대표33인들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이후에 국민들이 전국각지에서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독립을 요구 했던, 행동은 우매한 백성들의 폭동이라고 생각했던 민족대표33인의 생각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당시에 전국에서 일어났던 삼일독립만세운동의 리더적인 역할을 해야 되는 민족대표33인들이 한발 빼는 말언뿐만 아니라 우매한 백성들의 폭동이라고 평가 절하했기 때문이다.

 

사실 독립선언문 낭독할 장소도 탑골공원에서 태화관으로 바꾸고 민족대표33인 중에 4명은 불참하고 29명만 참석했다. 이것에 대해서 역사학자 중에서는 이런 민족대표33인들을 우리가 존경을 해야 했는지 의문을 제기 하고 있는 학자들도 있다.

 

민족대표33인들의 독립선언서 낭독이 전국적인 삼일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필자 역시도 민족대표33인들의 언행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민족대표33인들 대부분은 일재의 기만적인 문화통치에 깃들어져서 나라의 독립을 포기하고, 일재통치 안에서 우리의 자치권만 얻자고 주장하면서 친일의 길로 들어갔던 것을 생각하면 부끄러운 조상들이라고 생각한다.

 

민족대표33인들이 삼일만세운동의 리더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던 상황에서도 191931일 탑골공원에서 정재용 청년이, 독립선언서를 대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것을 이후 두 달 동안 전국방방곳곳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전국적인 단일 지도체계가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국민이 얼마나 훌륭한 민족인 것을 알 수 있다.

 

일재의 공식적인 기록만 봐도 삼일만세운동으로 조선들에게 인명피해는 어마어마하였다. 당시에 우리나라 인구가 2000만 명 중 삼일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200만 명이었다. 사망했던 우리나라 사람들만 해도 75백 명이었고, 부상하거나 일재경찰에게 연행된 사람들도 11만 명이 넘었다.

 

이런 엄청난 인명 피해를 불구하고 이름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줄기차게 삼일독립만세운동이었다. 나중에는 폭력적인 독립만세운동으로 변절되지만 1910년 강재함병이 된 이후 18년까지 8년 동안 시실되었던 토지조사사업으로 토지들을 일재에게 빼앗기 농민들의 불만이 많았고, 문명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태영형과 측결처분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을 지배했던 것에 큰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암리교회 집단학살과 같이 일재가 삼일독립만세운동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한다.

 

이것으로 볼 때 삼일독립만세운동은 이름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으켰던 조국의 독립운동이고 무자비한 정치에 항거한 정치적인 운동이었다. 삼일독립만세운동에 참가했던 모든 사람들이 나라의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나라 주인의식을 가졌던 사람들이 우리의 조상인 것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진보와 보수라는 특정 진영논리로만 우리나라를 몰고 가려고 하는 정치인들을 감시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드릴 수 있는 정치를 할 수 있게 하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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