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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게 하려는 것이다|윤원진 비안네 신부님
카테고리 : 사제의 공간 | 조회수 : 192021-09-14 오전 10:09:00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게 하려는 것이다

 

                                                                              윤원진 비안네 신부님

 

 

마음이 조급해질 때가 있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거나, 간절히 기도하는데도 변화가 없을 때 말이다.
마음이 조급해지면 불평이 시작되기 마련이다.
불평과 불만의 원인은 '조급증'인가 보다.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조급증이 시작되면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기 어려워진다.
보다 나은 내일을 간절히 바라다보면 지금의 내 모습이 초라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조급하게 어떤 것을 바라다보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오늘이 만족스럽지 않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먹은 백성들도 처음에는 만나를 먹으며 환호성을 질렀지만 금세 익숙해지고 말았다.
어쩌면 불평의 원인은 조급증이고, 조급증은 '익숙해짐'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든 익숙해지면 감사함을 잃게 되는 법이다. 매주 미사를 갈 수 있었던 때는 미사에 익숙해져 감사함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을 때는 몰랐던 것들을 이제 마스크 없이는 외출할 수 없게 되고서야 그때가 감사했음을 알게 되었다.

불평의 결과는 '불뱀'이다.
이 뱀은 아무런 걱정없는 에덴동산에 살면서도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을 부추긴 존재이다.
그분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뱀'이라 하셨다. 겉으로는 의인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불평으로 가득 찬 위선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남들 앞에서는 행복한 척 하지만 혼자 있을 때면 남들이 가진 것을 갖지 못한 자신을 보며 처량한 생각이 드는 겉과 속이 다른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 말이다.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불평의 뱀에게 물리면 조급증이 더 커진다.
이럴 때는 구리뱀이 특효약이다.
불평의 뱀은 모기와 같아서 긁으면 긁을수록 더 가렵다. 불평을 하면 할수록 기쁘지 않고 더욱 피폐해져 가는 것이다. 더군다나 불평은 전염성이 강해서 주위 사람들까지 불평하게 만든다.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기둥 위에 달린 구리뱀을 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들어야 한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려면 고개를 숙이고 발끝을 보게 된다.
고개를 숙이면 불평하게 되지만 고개를 들면 구리뱀을 보고 불평이 낫는다. 조급증이 사라지는 것이다.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은 분노를 이기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불평은 그 무게가 엄청나서 나를 짓누르고 그분을 쳐다보지 못하게끔 좌절로 이끈다.

지금의 내 앞에도 구리뱀이 있다.
그분께서는 구리뱀처럼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것이다. 잠시 십자고상을 바라본다.
불뱀과 구리뱀은 같은 뱀이지만 '두 뱀'은 결과가 다르다. 불평도 희망도 상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해석에 따라 현실이 달리 보이는 것이 아닐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다고 했다.
그렇다면 조급해져 불평이 더해갈 때에 지금 이 순간이 그분으로부터 받는 '벌'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야겠다.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는 것은 내게 어떤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구원의 준비단계인 것이다. 그분은 심판자가 아니라 구원자시라고 예수님이 알려주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마음이 조급하다.
그래서 다시 십자고상을 바라본다.
한껏 양 팔을 벌리신 그분께서 나를 안아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하다.

너는 십자가에 달린 내가 끝난 것으로 보이느냐.
구리뱀처럼 들어 올려진 내가 실패한 것 같으냐.
내가 이제 곧 부활할 것처럼
너도 이제 곧 일어설 것이다.
조급해하지 말고 십자가에 달린 나를 보아라.
불평으로 고개를 떨구지 말고 가슴을 펴라.
나를 바라보는 자는 나와 함께 부활할 것이다.
요한복음 (3,13-17)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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