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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보여준 영화 조제
카테고리 : 영화 속에 진리 | 조회수 : 3552020-12-30 오후 11:38:00

                           내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보여주는 영화 조제

 

강민호

 

올 한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19 때문에 평소 쉽게 하던 일들을 하지 못했다. 그 중에 하나가 나의 유일한 취미라고 할 수 있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 보는 것이다.

 

담보나 검객과 같은 보고 싶은 영화들이 많았으나 코로나19에 감염 될까봐 영화관에 쉽게 갈 수 없었다. 한 동안 영화관에 가는 것을 참았던 내가 모처럼 영화관에 가서 조제란 영화를 봤다.

 

처음부터조제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갔던 것이 아니었다.  유물들을 도굴해서 비싼 값에 팔아먹은 도굴꾼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도굴을 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도굴이 저녁타임밖에 없어 꿩 대신 닭이란 마음으로 영화관 직원이 추천하는 조제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꿩 대신 닭이란 마음으로 보게 된 영화인 조제가 닭 대신 꿩을 먹게 될 것 같은 행운을 얻은 기분을 가지게 했다. 이유는 영화조제가 내가 사는 동안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깨달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조제는 어린 시절에 자신에게 학대를 가했던 보육원 원장을 음독살인시도 한다가 실패하고 도망쳐서 폐지를 주는 이웃 할머니와 함께 사는 여성장애인이었다. 그녀는 할머니가 주어 온 헌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그녀는 책들을 읽어가면서 자신이 책속에 주인공들로 착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은 원래 고아가 아니라 유럽에서 태어난 혼혈아로 어린 시절에 좋은 부모와 함께 풍족한 생활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그녀는 어린 시절에 부모와 함께 세계여행도 했다고 생각했고. 할머니와 단둘이 살게 된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생겨서 부모가 이혼하게 되었고 자신을 엄마와 함께 한국에 와서 외할머니와 살다가 엄마가 돌아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조제란 이름초차도 그녀의 본명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감명 있게 있었던 소설의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그녀가 자신을 할머니가 주어 온 책들의 주인공들로 착각하면서 살았던 것은 불행한 자기 현실을 외면하는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다. 나 역시도 조제와 같은 방어기제를 사용하면서 살았던 때가 있었다.

 

중증뇌성마비로 태어났던 나는 어린 시절에 집안에서만 있어야 했다. 집안에 있는 동안 나는 주로 책을 읽어나 EBS라디오에서 하는 이주일에 명작이란 프로그램을 많이 들었는데, 이 프로그램을 세계명작들과 한국명작들을 라디오 드라마로 각색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도 조제처럼 읽었던 책들의 중인공이나 이주일에 명작의 주인공들이 되는 상상했는데, 그 순간만큼은 내가 중증뇌성마비가 아닌 탐험가나 영웅 같은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상상을 많이 한다고 해서 현실의 나는 따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상상에서 깨면 중증뇌성마비인 나를 받아드리기 힘들었다.

조제도 그랬을 것이다. 착각에서 깨어날 때 불행한 자기 현실을 받아드리기 힘들어서 이름초차 바꾸어서 자신이 읽었던 책들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개 했던 것이다. 명석과의 사랑은 그녀가 읽었던 책들 속에서 현실세계로 나오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받아드리기 힘들었던 고아이고 가난한 여성애인이란 현실을 받아드리게 만들어 준 것이다.

 

처음에는 그러한 사실 때문에 조제는 명석에게 더욱 의존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받아드리기 현실도 받아드리는 순간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인생이란 것을 깨달게 된다. 조제도 역시 고아이고 가난한 여성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자기 인생이고, 그런 현실을 회피 할 때 따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바로 서야 불행한 인생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다.

 

그래서 나는 명석의 행복을 위해 이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명석 없이도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생각 되었다. 나는 글 쓰게 되면서 내가 중증뇌성마비이란 것을 받아드리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많은 좌절감들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학생들보다 학습능력도 떨어지고 평생 남의 도움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중증뇌성마비인으로 평생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오롯이 받아드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쓰기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될 만큼 오탈자 오류를 많이 범하는 것에 제일 크게 좌절하곤 했다. 이 때문에 글쓰기를 나는 어리 석은 미련을 기지고 있어 글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오탈자 오류를 범하는 것도 내가 글 쓰면서 사는 동안 해결해야 될 제일 큰 과제이란 것을 조제를 보고 나오며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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