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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길중위와 손현호하사의 박진경대령 암살사건
카테고리 : 역사에서 배운디 | 조회수 : 1322021-06-11 오후 3:20:00

문상길중위와 손현호하사의 박진경대령 암살사건

 

강민호

 

1948618일 제주도에 주둔하고 있던 제9연대 박진경대령이 그의 부하인 손현호하사의 의해 암살되었다. 당시 미군정의 박진경대령 암살사건에 대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문상길중위의 지시받은 손현호하사가 숙소에서 잠자던 박진경대령을 장총으로 쏟았다고 되어 있다.

 

그 사건으로 의해 문상길중위와 손현호하사는 미군정 재판에서 총살형을 언도 받았다. 총살형으로 죽기 직전에 문상길중위는 미군정의 지배하에 미군의 지위를 받으며 동족을 학살하는 군대가 되지 말라고 말했다.

 

문상길중위가 그런 말을 했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194731일 제주시 관덕정에서 지금의 주민자치위원회와 같은 제주도인민위원회가 주체한 3.1절 기념행사 중에 경찰들의 발표로 도민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제주도도민들은 초대도지사인 박경훈지사까지 사표를 내는 3.10 총파업으로 저항했다. 미군정은 육지에서 응원경찰과 서북청년단과 같은 폭력배 출신 반공단체들을 제주도로 내려 보내어 무자비한 진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제주도 도민들은 미군정에 대한 저항을 굽히지 않았고 남한만에 단독 정부수립을 위한 5.10 초대 국회의원선거가 결정되자, 194843일 사회주의 청년 김달삼이 500명의 청년으로 무장대를 구성해서 경찰지서와 우익 인사를 공격하였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미군정은 제주도에 주둔하고 있는 김익렬중령에게 무장대를 토벌 명령을 내렸고, 미군정의 명령대로 무장대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민간들의 큰 피해가 생길 것을 걱정한 김익렬중령은 무장대와 평화회담을 준비한다. 무장대의 대표인 김달삼과 72시간 안에 모든 전투를 멈추고 무장대의 해산, 김달삼을 포합한 모든 무장대들의 신번 보장하는데 합의 하였다.

 

하지만 그 합의는 미군정의 의해 무살 되었고 김익렬중위도 공산주의자로 몰려 보직해임 되었다. 그리고 우익 반공청년들이 민간들에 불을 지른 오라리사건을 좌익들이 불을 지른 것으로 조작해 대대적인 무장대에 대한 토벌 작전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무장대와 전혀 관련이 없는 노인, 여성 어린들이 제9연대 군인들의 총의 목숨을 잃었다. 제주도에 배정된 3개의 선거구 가운데 2개 선거구에서 무장대의 방해와 주민들의 선거거부로 선거가 무산되자, 자존심이 상한 미군정은 제주도를 공산주의자들의 섬으로 낙인찍었다.

 

그 결과로 19485월 한 달 동안 5000명의 민간인들이 제9연대 군인들의 의해 목숨을 잃었다. 그 때 제9연대 지위관이 김익렬중령의 후임으로 부임한 박진경중령이었다. 박진경중령은 제주도 민간인 5000명을 학살한 공로로 제9연대에 부임한지 달 만에 대령으로 영전되었다.

 

문상길중위와 손현호하사가 박진경대령을 암살했던 이유는 거기에 있다. 대령으로 승진한 박진경대령이 무장대를 소탕한다는 명문으로 더 많은 제주도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우리역사상 최고의 숭고한 암살 사건은 1909년 안중근의사의 이등방문을 암살했던 사건이다.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재의 원흉이자 아시아대륙을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했던 전쟁 범죄자들의 수괴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문상길중위와 손현호하사의 박진경대령을 암살한 사건은 안중근의 이등방문을 암살한 사건처럼 숭고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죄가 없는 제주도 민간인들을 학살한 범죄자를 죽었기 때문이다. 이런 문상길중위와 손현호하사에 대한 그 동안 제 평가 못 이루어지고 무덤 하나도 없는 것에 대해 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죄스러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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