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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전이「자산어보」를 쓰는 일에 매진했던 이유
카테고리 : 영화 속에 진리 | 조회수 : 1042021-04-30 오후 3:45:00

정약전이자산어보를 쓰는 일에 매진했던 이유

 

강민호

 

우리는 정약용에 대해서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지만 그의 두 번째 형인 정약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정약용은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역사 518년을 통틀어서도 세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학자이다.

 

목민심서승민심서, 경세유포5백여 권에 달라는 엄청난 책들을 남긴 정약종은 경치와 경제 과학이나 의약, 지리 등 조선후기의 전 학문영역에서 독보적인 업적도 남겼다. 그러나 정약전은 자산어보포해시말이라는 두 권의 책만 남겼다.

 

그것도포해시말는 문승득이라는 홍어를 거래하는 중간 산인이 섬에 있는 어부들에게서 홍어를 사고 뭍으로 온다가, 태풍을 만난 오키나와와 필리핀까지 표류 했다가 조선으로 돌아왔던 이야기를 듣고 쓴 책이다. 또한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흑산도에 유배생활을 하면서 해양 생물들을 관찰해서 기록한 책이다.

 

이 때문에 동생인 정약용과 다르게 정약전은 조선후기의 어떤 학문영역에도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이런 점이 우리에게 정약용은 대학자로 생각하게 하고 정약전은 조선시대에 활동 했던 수많은 평범한 학자들 중에 한명이라고 생각하게 해서 관심을 두지 않게 하였다.

 

그러나 어쩌면 정약용보다 정약전이 더 대학자일지도 모른다. 실체로 배트남의 호치민이 머리맡에 두고 읽었다고는 목민심서를 비롯한 정약종이 모든 책들을 쓸 때 정약전의 자문을 받았다고 한다.

 

최근에 개봉했던 영화자산어보에서도 정약종이 자신이 쓴 글에 오류가 있는지 없는지 제자인 이학레를 시켜 정약전에게 가서 점점 받아 오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 때마다 정약전은 정약종의 글대한 자신의 생각과 유교적인 관점에서 잘못 해석한 부분들을 바로 잡아 주었다. 정약종은 그것에 대해서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형님이 알려주어서 편지로 감사를 표하는 장면도 영화에서 볼 수 있었다.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정약전이 죽었다는 소식에 정약종은 이제 자신이 터득한 지식이 옳은 것이지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슬퍼했다고 한다.

 

이런 정약전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학문과 정치에 대한 견해를 담은 책들을 쓰지 않고, 영화에서 창대의 말대로 아무데도 쓸모없는 자산어보표해시말이란 책만 썼을까? 불순한 서학이란 학문을 공부했고 종교적으로도 받아드려서 세례까지 받아서 천주교 신자가 되어서. 왕에게 충성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졌기 때문인가?

 

영화자산어보를 본 필자는 그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가지게 되었다. 정약전은 조선후기에 오면서 건국이념을 잃어버린 조선 정치권에 대한 환멸을 가지게 되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학문과 정치에 대한 견해를 책들을 쓰지 않았다는 생각한 것이다.

 

본래 조선은 맹자에서 나오는 군주민수(君舟民水)의 이념으로 세워졌던 나라였다. 백성들에게 생활 안정을 보장 할 수 없으면 백성들의 의해서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 조선의 건국이념이다. 정약전이 살았던 시대에 조선 정치권은 이 건국이념을 잃어버렸다. 때문에 당시에 조선 백성들의 생활이 점점 더 피폐해졌다.

 

전약전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당시 조선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환멸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정약전은 자신의 학문과 정치에 대한 견해를 담은 책들을 남기지 않았다. 당시 백성들의 민생고를 해결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자산어보를 쓰는 것이 잠시 당시에 정치권에 있었던 자기의 책무라고 생각해서 매진했던 것이다.

 

이런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쓴 생각을 민주주의를 국가 이념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정치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유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논란을 일으키는 좋은 정책들을 추진하는 것보다 국민들의 민생고를 해결 할 수 있는 정책들을 추진 할 때, 대한민국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의 직분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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