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알 신 미얀마의 김주열이 될 것이다.
카테고리 : 밝은 세상을 위해 | 조회수 : 2552021-03-12 오후 4:51:00

치알 신 미얀마의 김주열이 될 것이다.

 

강민호

 

지난 3일 미얀마 2대 도시인 말레이에서 군인들이 쏘는 총알에 머리를 맞자 사망한 치알 신이 미얀마의 김주열이 될 것이다. 국민들의 신뢰도가 떨었던 한국자유당에서 나이가 많았던 이승만대통령의 사망 시 정권교체 되는 것을 막이 위해, 온갖 부정한 방범을 동원해서 1960315일 정부통령선거에서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킨다.

 

전국 곳곳에서 3,15부정선거는 무효이라고 하는 학생들의 시위들이 산발적으로 일어났기 시작했다. 경남 마산이 에서도 3,15부정선거를 받아드릴 수 없다는 학생들의 시위가 일어났다.

 

그때 마산 외가 집에서 마산상고 입학시험 결과를 기다리던 전북 남원 출신의 김주열학생이 다른 학생들과 함께 시위에 참가하다가 행방불명되었다. 시위에 참가했던 다른 학생들이 주검으로도 다 발견이 되었는데 김주열학생만 주검으로도 발견되지 않았다.

 

김주열학생이 행방불명이 되지 거의 한 달이 되는 날인 411일에 마산 앞 바다에 김주열학생의 주검이 떠올랐다. 그런데 김주열학생의 눈에는 전투용 폭탄이 박혀 있었다. 김주열학생이 참가했던 학생들의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던 경찰들이 김주열학생의 눈에 전투용 폭탄을 꽂아서 죽이고, 은폐하려고 묵에 돌덩이를 매달아 마산 앞바다에 빠뜨렸던 것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들의 시위는 국민들이 참여하는 자유당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되었다. 자유당에서는 경찰에게 시위대에 항해 발포해도 되자는 하였고 실제로 경찰들은 시위대를 항해 발포하였고, 서울에서만 130명이 죽고 1000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더 거세게 저항하자 426일 이승만대통령이 대통령자리에서 물러가겠다는 하야성명을 천명하면서, 12년 동안 이어졌던 자유당정권이 끝나게 되었다. 김주열학생의 죽음이 국민들의 뜻을 무시하고 정권을 계속 유지하려고 했던 자유당에 대한 국민들이 가지고 있던 잠재적 분노를 폭발시켜 물러나게 했던 도화선이 되었던 것이다.

 

치알 신의 죽음이 불범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미얀마 군부에 대한 저항이 더욱 거세게 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1962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2016년 총선에서 아웅산 수지여사가 이끄는 미얀마민족민주동맹(MLD)이 압승 될 때까지 국민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수탈했다. 또한 온갖 부정과 부패를 저질렀다.

이해 미얀마 국민들은 19883천의 시민이 참여한 이른바 88민주항쟁을 신호탄으로 군부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해 미얀마 군부는 자인하게 탄압했지만 줄기차게 저항한 끝에 2016년 아웅산 수지여사의 문민정부를 탄생시켰다.

 

아웅산 수지여사의 문민정부는 군부가 저질렀던 부정과 부패를 일소하고 국민들의 자유를 보장하고 생활 안정을 지원하는 정책들을 실시했다. 이것이 미얀마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 202011월에 실시했던 총선에서 다시 아웅산수지여사의 미얀마민족민주동맹이 승리하여 2기 문민정부가 출범하게 되었다.

 

정치적 영향력이 더욱 약해진 위기에 쳐한 미얀마 군부는 작년 11월 총선 직후부터 이번 선거가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면서 선거결과를 받아드리지 않았다. 미얀마 헌제에다 202011월 총선은 부정선거라고 재소했지만 부정선거의 혐의가 없는 판결도 내렸다.

 

이처럼 합법적으로 미얀마의 2기 문민정부 출범을 막지 못하게 되자 미얀마 국회 회가 시작 되었던 올해 21일에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군부는 아웅산수지여사 국가고문과 윙윙 미얀마 대통령을 강음시키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서 1년 동안 군부 통치를 하겠다고 했다.

 

미얀마의 국민들은 불법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리고 있는 것이다. 19살인 치알 신도 모두 다 잘된 거야라는 문구가 써진 티셔즈를 입고 이 시위에 참가했다가 경찰의 총에 맞자 숨진 것이다. SNS 통하여 치알 신의 모습이 전 세계로 알려지고 치알 신이 미얀마 군부에 대한 국민들의 시위의 상징으로 되자, 경찰의 총에 맞자 숨진 것이 의심된다고 하면서 치알 신의 시신도 유기하기도 했다.

 

치알 신이 죽음 이후에 미얀마 군부는 국민들의 시위를 더욱 강경하게 진압하기 시작해서 피의 일요일과 피의 화요일이라는 비극도 일어났다. 최근에는 미얀마에서는 경찰들이 일명 토끼몰이라는 작전으로 시위대와 일반시민들 상대로 무차별 발포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항쟁 그리고 6,10민주항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독제정부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미들의 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할수록 저항도 더욱 거세지고 끝내 민주주의를 쟁취하였다. 미얀마 국민들도 지금은 군부의 강경 진압에 많은 희생을 당하고 있지만 줄기차게 투쟁해서 민주주의를 쟁취할 것이다.

 

그때는 치알 신이 우리의 김주열학생처럼 미얀마 국민들의 마음에 민주열사로 살아 있게 된 것이다.

 
댓글내용 
4.7 제보선 그 이유 한 달
당시에도 태평양전쟁에서 성 계약은 국제협약을 위반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