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카테고리 : 나의 이야기 | 조회수 : 11262017-09-24 오후 9:44:00

제가 특수학교 다녔던 시절에 선생님들이나 선배님들에게서는 너는 보기와 많이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보기에는 순진하고 의심을 할 줄 모르는 것 같이 보이는데, 알고 보면 약사 빠르고 의심도 많은 놈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선생님들과 선배님들의 말씀대로 약사 빠르고 의심도 많은 놈입니다. 제가 이런 성격을 가지게 원인은 아마도 다섯 살 때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작은고모, 삼촌과 함께 살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할머니, 작은고모, 삼촌은 어머니 이상으로 저에게 잘해주었지만 본능적으로 어머니 대신 나를 키워주는 것에 미안함이 생겼고 눈치를 보고 할머니와 작은고모 마음에 들은 말과 행동을 하는 버릇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동네 사람들은 성치 못한 저 때문에 할머니께서 고생 많이 한다고 했고 장애인시설에 맡겼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와, 차라리 제가 죽어버리는 것이 할머니와 다른 가족들에게 좋다는 이야기들은 많이 들었습니다. 저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 했던 사람들은 우리 할머니와 가족들 앞에서는 저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일찍부터 사람들의 이중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많이 보다보니까 사람들의 말을 의심하는 습성이 생겼습니다.

 

저는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의 눈치를 살펴서 말과 행동하고 남의 아무리 듣기 좋은 말을 해도 그 말을 그대로 믿지 않은 것이 몸에 익혀졌습니다. 그 덕분인가? 특수학교에 제학 할 때는 물론이고 대학시절에도 학생들 사이에서 왕따 한번 당해본 적도 없고 누구에게 이용을 당했던 적도 없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사회생활을 하기에는 매우 유용한 성격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이 성격 때문에 저는 지금과 전혀 다른 인생을 살 번했습니다. 예수님에게 돌아오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15세에 제주에 있는 특수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다니고 싶었던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지만 저는 전혀 기쁘지 않았습니다. 정체성 혼란기인 사춘기이었기 때문에 공부해서 뭐하지 생각만 했습니다. 그 생각 때문에 중등부에 올라가셨을 때 공부해서 인생을 달라지게 하라고 말씀해주시던 선생님들하고 자주 마찰이 있었습니다. 제게 공부하라고 말씀 하시던 선생님 중에는 저와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선생님도 계셨습니다. 한번은 그 선생님께서 공부해서 대학가라는 말씀에 선생님은 머리가 좋고 집도 넉넉하니까 배부른 말씀을 한다고 대들었습니다. 이런 저를 공부하게 만든 것은 할머니이었습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에 제가 살아가 것을 걱정하는 말씀을 듣고 할머니를 안심시킬 수 있는 길을 찾을까하여 대학에 진학을 결심한 것입니다. 아침보충학습부터 야간자율학습까지 힘이 붙일 때도 있었지만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참았습니다. 결국 우석대학교 특수교육과 입학 할 수 있었다.

다른 학과와 다르게 특수교육과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좋아 학습하는데 필요한 도움도 쉬게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장애학생들이 많이 가지 못하는 M/T에도 매번 갈 수 있었고, 3학년 때는 장애학생복지단체에서 자원활동부를 받아 자원봉사 하는 학생들을 교육하고 관리하는 일도 했습니다. 제가 학습 능력이 떨어져서 공부하는 것이 많이 힘들었지만, 만약 제가 끝까지 선생님들의 말씀을 못 믿고 대학에 진학하지 안했다면 경험 할 수 없었던 소중한 추억입니다.

 

남의 말을 의심하는 성격 때문에 또 가지 큰 실수를 했던 것은 예수님을 늦게 영접한 것입니다. 제가 특수학교에 입학해서 얼마 안 될 때 일입니다. 감기로 아파서 기숙사에 누워 있었는데 약을 가지고 오신 양호선생님께서 저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예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감정이 일어났지 않았습니다. 의심이 않았던 저는 양호선생님의 그런 모습이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다녔던 특수학교에는 예수님을 믿은 선생들이 많아서 예수님께서 저를 목숨보다 더 사랑했다는 것을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때 제에게 선생님들을 보내어 예수님을 영접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도마보다 더 의심 많았던 성격 때문에 그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선생님들이 주일에 교회에 나오라고 해도 저는 예수님도 신화 속에 인물인데 아닌데 왜 믿어야 되요?” 하며 또는 성도 한 명 늘리고 저를 전도하는 것이 아니에요라고 반문하면서 예수님께서 보냈던 선생님들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대학교 다닐 때도 주번에 믿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밥값이 모자랐을 때 주일 점심 한 끼를 해결하려고 또는 여자애가 교회 같이 가자고 하면 학교 앞에 있는 교회에 갔습니다.

 

애초에 대학에 진학 할 때 목표했던 할머니께서 나를 걱정하시지 않게 할 수 있는 길을 못 찾았던 저는 전주에 남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밖에 되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져서 그때까지 맺고 있던 모든 인연을 끊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전에 생활하던 구릅홈에서 문제가 생겨서 함께하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구릅홈에 올 때도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처음 나올 때만 해도 구릅홈에 살고 있으니까 세상말로 예의상 예배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한 동안 예배시간에 몸만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구릅홈 벽에 있는 예수님의 그림을 자세히 보게 되었습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스쳐보고 말랐는데 그날 밤에는 예수님의 그림에서 눈을 땔 수가 없었습니다. 갑자기 이상한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저를 걱정했던 가족들의 말들을 나를 무시하는 말로 들어서 가족들에게 상처 주었던 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어느 날인가 저의 모습에 화가 나서 할머니에게 왜 키워나고 원망을 했습니다. 제가 걱정되어 죽고 싶을 때도 죽지 못했다는 할머니께 핑계이라고 하면서 더 크게 대들었던 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공부해서 인생을 달라지게 하라고 했던 선생님들에게도 쓸데기 없는 공부를 하기 싫다고 하면서 반항했던 저의 모습도, 진심으로 저를 도와주었던 대학시절에 선후배 동기들을 색안경으로 보았던 저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어차피 그들은 특수교사가 되어 장애아동들을 지도하고 도와 줄 때를 대비해서 저를 도와주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서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없었던 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것이 다 장애인이란 열등감을 가지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무렵에도 저의 옆에 사람들은 저에게 헌신적으로 도와주고 있는데 저는 장애인이라는 열등감과 하는데 시간을 낭비하는 못된 벗을 고치지 못난 저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런 못되고 못난 저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님께 너무 송구해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예수님에게 돌아오게 하기 위해 극약처방으로 일부러 못되고 못난 저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 같았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생활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가족들, 좋은 선생님들 고마운 동기와 선후배 만나서 큰 어려움 없이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예수님께 감사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작은고모께서 글을 가르쳐 줄 때부터 막연하게 하고 싶었던 글 쓰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신, 예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시로 찬양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자, 예수님께서는 제가 전에부터 하고 싶었던 장애인운동도 할 수 있는 길고 열려주었습니다.

 

제가 이런 예수님을 영접 할 수 있는 우리교회에도 감사하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교회를 보니까 처음 올 때는 아무느낌이 없었던, 우리교회의 모습이 우리사회가 앞으로 되어야 하는 모습 같이 보였습니다.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어울러져 사는 사회 말입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앞으로 비장애인 성도들이 장애인 성도들에게 일 방향으로 도움을 주는 교회가 아니라 서로 쌍 방향으로 도움이 순환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말씀에서 자꾸 벗어나는 한국 교회들을 말씀으로 돌아오게 하는 등대 같은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대학교 때 활동했던 단체 동문회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대 사람들이 저의 얼굴이 젊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또 말씨도 예전보다 부드러워졌다고 이야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예전보다 너그러워져서 같이 놀기 더 좋은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좋다고 했습니다. 그 때 저는 그날 밤에 못났고 못된 저의 모습을 보여주셨던 예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했습니다. 장애인으로 태어난 열등감에 갇혀 있던 저를 새롭게 태어날 수 있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은혜에 부끄럽지 않도록 더 열심히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의 이런 마음을 시로 예수님에게 찬양을 드립니다.

 

그날 밤/강민호

 

인연 끊고 있던

그날 밤에 주님은

못되고 못났던

내 모습들을 보여주셨다.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보았던 도마보다

더 믿음이 없는

내 모습을 보여주셨다.

 

양호 선생님이 해주신

눈물의 기도를 보고도

감동이 일지 않았던

어리석은 마음을 보여주셨다.

 

맹인을 눈뜨게 하고

앉은 팽이를 걷게 하는

이적을 행해주시기 않은

원망만 가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셨다.

 

사람들로 내게 행하여주신

주심의 이적들을 감사할 줄

몰랐던 죄를 회개 할 수 있게

눈동자를 고정시켜 놓고

못되고 못났던 모습들을 보여주셨다.

 

 
태그 전북기독교신문 기고
댓글내용 
사랑은 마음으로 장애가 전의 되지 못하게 한다.
지난날에 했던 모든 선택들이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