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더 배고파야 한다.(장복의 추억3)
카테고리 : 나의 이야기 | 조회수 : 10992017-03-01 오후 7:12:00

자네는 더 배고파야 한다.(장복의 추억3)

강민호

 

자네는 더 배고파야 한다“. 이 말은 내가 오프라인 대학시절에 활동했던 장애학생 복지를 위한 학생자치기구인 장복에서 했던 장애신입생 O/T 때 온 초대 회장이었던 선배님께서 내게 해주신 조언이었다.

 

선배의 그 조언은 목에 걸린간 생선가시처럼 내게 아픔을 주었다. 마치 특수학교에서 12년 동안 조회 시간에 교장선생님들이 하셨던 비장애인학생들 보다 더 많은 노력으로 당당 사회인이 되기를 바라다"고 히는 말씀처럼 내가 장애인이라는 열등감을 사정없이 찌르는 느낌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장애인으로 태어나서 평범하게 설기 위해서도 더 많은 노력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로 오해했기 때문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때까지도 그 열등감이 성장하는 것을 막지 못했던, 나는 내가 다른 동기 장애학생들보다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으니까 학교생활에서 생기는 수만은 불편함을 감수하라는 말로 오해했다. 먼지가 있는 곳에 다른 먼지가 더 해지면 희뿌옇게 쌓이는 것처럼. 내가 처음 가졌던 장복에 대한 오해와 뒤섞어져서 장복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선배들은 장복을 소개하면서 우리장복은 장애학생 복지를 위한 단체이지만, 봉사하는 단체는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학교생활에서 불편한 점이 있을 때마다 장복에다 무조건 도움을 청하지 말고, 스스로 해결한다가 못하면 얘기 하라고 했다. 나는 그 얘기가 장복이 진정으로 장애학생을 위한 단채가 아니라 단지 이름 때문에 장애학생들을 도와주는 척하는 단채라는 이미지로 생각하게 되었다. 요즘 학생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펙이나 쌓고, 장학금 같은 대학생활 하는데 어려가지 혜택을 받으려고 활동하는 단체로만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한 나는 장복에 가임하지 않고 필요 할 때만 이용하는 소수의 장애인선배들처럼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 생각은 한 달도 못 넘겨서 달라졌고 내 대학생활 추억의 90%가 그 장복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내 별명도 언제나 장복방에 있다고 해서 장복 귀신이라고 했을 정도로 장복을 좋아했다.

내가 그렇게 장복을 좋아하게 된 것은 좋은 선배들이 많이 있어서 나를 많이 챙겨주었고 좋은 얘기도 많이 해주었기 때문인데. 그 중에서도 그때 막 해병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박민우라는 선배가 나를 제일 많이 챙겨주었다. 선배는 같이 듣는 전공시간에는 내 옆에 앉아 필기해주고 정심도 같이 장복방에서 많이 먹어주었다. 그때마다 나의 학교생활에 문제점을 많이 말해주었다.

 

선배가 제일 많이 얘기한 것이 동기들이나 선배들과 같이 있을 때 당당해지라고 4년 동안 여기에서 생활 할 건덴, 미안하다는 이유로 언제까지 서먹서먹하게 지낼 것이 라고 얘기했다. 또 내가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내가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서 관계를 맺고. 동기나 선배들이 나를 챙기는 것이 학교생활에 일부처럼 생각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선배 말대로 하기 위해 어떻게 할까? 생각한 끝에 나는 평소에는 관심도 없었던, 머리 엄색하고 여자동기에게 오빠 엄색했다고 먼저 문자 보내고 답장이 오자, 한 나절 내내 문자하면서 친해졌다. 또 저녁을 못 먹은 날이면 기숙사에 사는 남자동기들에게 일부러 매점에서 만두, 빵 같은 것을 사먹는 것을 도와주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같이 야식을 먹고 술도 마시면서 친해졌다. 그러면서 많은 것을 도와주야 해서 나를 안 좋게 생각 할 것이라고 했던 내 생각과 달리 동기들이 나를 좋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에 더 용기를 얻어 보다 더 많은 동기나 선배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또 친해졌다. 그래서 도저히 못 할 것 같았던 대학생활에 적응을 무난하게 하였다. 그런 나를 보며 한 4학년 선배는 짜식 처음 볼 때와 달리 학교생활 잘 하네웃으면서 얘기할 정도였다.

나는 대학생활에 잘 적응한 것에 내가 처음으로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많은 동기들을 따라 장복에 가입한 것 후회하지 않았고, 내가 용기를 준 선배가 있는 장복회원 된 것이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때쯤 결정적으로 장복을 좋아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날 내 전동휠체어 앞바퀴가 구명이 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을 장복방에 있던 한 선배가 새 바퀴로 교체해주고 나서 바람은 네가 넣어라고 했다. 그 말에 잠시 당황하는 내게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바퀴 교제해주는 것은 내가 도저히 할 수 없으니까 한 것이고 바람 넣은 것은 내가 자전거방에 가서 넣을 수 있다고 한 번 해보라고 말했다.

 

나는 그 선배 말대로 했고 돌아오면서 큰 성취감이 들었다. 그리고 선배들이 말한 우리 장복은 봉사하는 단체가 아니라는 뜻을 깨달았다. 일방적으로 장애학생들을 도와주는 단체가 아니라 장애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어려움을 해결하고 학교생활에 적응하는데 힘을 더해 주는 단체라는 뜻이었다. 그런 장복이 있어서 많은 장애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학교생활에 적응 할 수 있고, 비장애학생들과 진정한 동료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있을 때는 장복방에 가고, 장복에서 하는 행사에는 거의 참여했다. 그리고 일 년 동안 장복 임원도 하면서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도 잊어버리게 할 만큼 행복한 대학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 내가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방법과,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익혔다.

 

이런 장복활동이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지금 나에게 새로운 목표를 갖게 한다.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모두 다 해결해주는 사회복지사가 아닌, 클라이언트가 자기의 문제를 해결 할 있게 힘을 더해 주는 사회복지사가 되겠다는 목표이다. 그래서 클라이언트가 이웃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갔는데 든든한 지지자가 되고 싶다.

  

장복: 우석대장애학생복지연합회            20146

  장복방: 우석대장애학생복지연합회 사무실

 

 
댓글내용 
말만 거칠게 하는 가족들
너가 나의실험대상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