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비저블맨] - 발상의 전환으로 이루어진 공포의 간접 체험
카테고리 : 영화이야기 | 조회수 : 6052020-03-08 오후 6: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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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리 워넬

주연 : 엘리자베스 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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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투명 인간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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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투명 인간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사춘기 시절 친구들과 투명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한참 성적인 호기심이 왕성하던 친구들은 투명 인간이 되어 여자 목욕탕에 몰래 들어가고 싶다며 키득거렸었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과는 달리 투명 인간이 되어 극장에 몰래 들어가 영화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은 내가 도덕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당시 영화에 대한 나의 관심은 폭발하고 있었지만 내 용돈으로는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는 것이 벅찼다. 게다가 내겐 위로 누나, 아래로 여동생이 있어서 친구들과는 달리 여자에 대한 환상도 없었을 뿐이다.

사춘기 소년들의 변태적이면서 사소한 바람들 뿐만 아니라 투명 인간이 된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 없는 곳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고, 무언가를 훔쳐도 걸릴 염려가 없다. 누군가를 곁에서 하루 종일 몰래 지켜보거나 나를 괴롭히는 누군가를 때려 주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투명 인간이 되어 할 수 있는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부분이 불법적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남에게는 들켜서는 안 될 불법적이며 창피한 행동을 우리는 투명 인간이라는 판타지로 소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우리의 욕망을 반영한 것이 폴 베호벤 감독의 2000년 개봉작인 [할로우 맨]이다. [할로우 맨]은 비밀 프로젝트로 인하여 투명 인간이 된 과학자 세바스찬 케인(케빈 베이컨)이 점점 위험한 존재가 되어 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이다. [할로우 맨]은 투명 인간이 된 세바스찬 케인의 시점에서 영화를 진행하는데, 관객들은 세바스찬 케인이 투명 인간이 되어 벌이는 온갖 관음적이고 폭력적인 범죄를 간접 체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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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투명 인간의 피해자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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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인간을 소재로 한 [인비저블맨]이 개봉했다. 이 영화는 북미에서 개봉 첫 주만에 제작비의 4배에 해당하는 2천8백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리며 당당히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발길이 뚝 끊어진 우리나라 극장가에서도 [인비저블맨]은 개봉 첫 주 누적관객 15만 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비록 우리나라 성적인 불만족스럽겠지만 어찌 되었건 현재까지 [인비저블맨]의 흥행은 성공적이라 자평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비저블맨]의 성공 이유는 무엇일까? [할로우 맨]처럼 투명 인간에 대한 관객의 금지된 관음적인 욕구를 채워줬기 때문일까? 놀랍게도 정반대이다. [인비저블맨]은 투명 인간이 아닌, 투명 인간에게 철저하게 당하는 피해자 세실리아(엘리자베스 모스)의 시선으로 영화를 진행해나간다. 그러면서 공포 영화의 명가인 블룸하우스 제작의 영화답게 관객으로 하여금 제대로 공포를 맛보게 만든다.

사실 투명 인간이 되는 것을 상상했던 우리들은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투명 인간이 된 우리는 그 상황을 맘껏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투명 인간에게 당하는 상대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상황인지를... 생각해보라. 누군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곁에서 몰래 지켜보고 있다면 그것은 정말 소름 끼치는 일이다. [인비저블맨]은 결국 발상의 전환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투명 인간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세실리아의 공포를 간접 체험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러한 발상의 전환은 [인비저블맨]의 성공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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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로 전해지는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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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은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이다. 공포스러운 장면이 전혀 아닌데도 [인비저블맨]은 파도 소리의 사운드를 최대한 확대함으로써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불안감을 나에게 안긴다. 곧바로 화면은 남편 몰래 잠에서 깨어 몸을 일으키는 세실리아를 보여준다. 세실리아는 진정제를 남편에게 먹여 잠재우고 그 틈을 타서 몰래 도망을 가려 한다. 남편이 깨지 않게 조심조심 움직이는 세실리아. 그렇기에 나도 소리에 굉장히 민감해진다. 바로 그때 세실리아는 실수로 개 밥그릇을 건드리고, 그 소리는 굉장히 과장되어 마치 천둥이 치듯 화면 전체에 울려 퍼진다. 그 장면에서 얼마나 놀랐던지...

따지고 보면 [인비저블맨]은 다른 공포 영화와는 달리 관객에게 공포를 느끼게 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대부분의 공포 영화는 섬뜩한 비주얼로 관객을 놀래키지만, [인비저블맨]은 그와는 정반대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존재를 통해 놀래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사운드이다. 처음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에서부터 영화는 관객에게 사운드로 공포를 느끼게 해주겠다고 선전포고를 하더니, 개 밥그릇을 건드리는 별것 아닌 소리조차 과장되게 표현하여 남편이 깰까 봐 조심하는 세실이라의 공포스러운 심리를 나에게 전이시킨다.

영화 중반부터 세실리아가 투명 인간에게 본격적으로 당하는 장면은 음악의 강약 조절을 이용하는데, 세실리아가 다락방에서 페인트로 투명 인간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시각적 공포가 전무한 영화에서 사운드를 통한 공포는 영화에서 꼭 필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인비저블맨]은 사운드를 잘 활용함으로써 공포 영화 본연의 재미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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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모스의 연기는 절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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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인비저블맨]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투명 인간을 영화는 섣부르게 관객 앞에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영화 중반까지 혹시 남편의 학대에 대한 트라우마로 세실리아가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투명 인간의 존재는 불분명하다. 당연히 세실리아의 주변 사람들 또한 투명 인간에 대한 세실리아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렇게 세실리아는 사람들로부터 고립된다. 세실리아가 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스스로 투명 인간의 존재를 밝혀내는 수밖에 없다.

영화의 초반까지가 사운드에 의한 공포라면 중반부터는 세실리아를 연기한 엘리자베스 모스의 연기가 영화 전체를 움켜쥔다.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가까스로 도망쳤지만 그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나약한 모습에서부터 스스로 투명 인간의 존재를 밝혀내기 위해 용기를 발휘하는 모습까지. 엘리자베스 모스의 연기는 극과 극을 달리는 세실리아를 완벽하게 표현해낸다.

하지만 투명 인간도 만만치 않은데 결국 세실리아에게 살인 누명을 씌워 정신병원에 감금시킨다. 정신병원에서 세실리아의 광기 어린 모습은 엘리자베스 모스의 연기의 결정판이다. 혹시 이 모든 것이 다중인격장애를 앓고 있는 세실리아가 만들어낸 허상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하게 만들 정도이다. 이렇게 세실리아는 살인누명을 쓴 채 정신병원에서 일평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때쯤, 예기치 않게 세실리아에게 막강한 무기가 생긴다. 이제 투명 인간은 세실리아를 건드릴 수 없고, 세실리아도 투명 인간에게 대항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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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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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이 많아서 공포 영화를 잘 보지 못한다. 그런데 [인비저블맨]은 딱 내가 볼 수 있을 만큼만 무섭다. 일단 시각적인 공포가 없다 보니 아무래도 공포의 강도는 낮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더욱더 [인비저블맨]을 재미있게 봤을지도 모르겠다.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의 장르를 공포보다는 스릴러로 판단하고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세실리아가 예상하지 못한 무기를 갖게 되고, 그것을 이용해서 투명 인간에게 복수를 하는 장면에서는 통쾌함도 느껴졌다. 만약 세실리아가 정신병원에 감금된 채 영화가 끝이 났다면 분명 여운은 있었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투명 인간이 진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중인격장애를 겪는 세실리아의 허상인지 논란의 여지가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 대신 [인비저블맨]은 깔끔한 마무리를 택했다. 결국 악은 죄의 대가를 치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세실리아는 투명 인간에게 그가 했던 방식대로 죄의 대가를 치르게 했지만 그녀 스스로가 새로운 투명 인간이 될 여지를 남겼다. 어쩌면 이 영화의 속 편 제목이 '인비저블 우먼'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세실리아가 펼친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이 영화가 죽어가는 다크 유니버스를 되살리는 영화인지, 아니면 그냥 독립된 하나의 영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세실리아의 이야기가 이것이 끝이 아닐 것 같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를 뚫고 본 보람이 충분히 있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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