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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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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신아가, 이상철
주연 : 유다인, 심희섭, 송재림, 옥자연, 유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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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게 생긴 일]을 보고 나서 반성을 했다. 기껏 우리나라의 저예산 독립 영화를 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너무 안일한 영화를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그래서 이번엔 제목부터가 꽤 센 [속물들]을 선택했다. 저예산 독립 영화이지만 그래도 꽤 이름이 알려진 유다인, 심희섭, 송재림, 유재명이 주연을 맡았다는 점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과연 [속물들]은 내게 어떤 느낌을 안겨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영화로운 나날], [미래에게 생긴 일]과 비교해서 가장 재미있었다. 일단 내용 자체가 흥미롭다. 영화는 기자인 김형중(심희섭) 미술작가 선우정(유다인), 큐레이터 서진호(송재림), 선우정의 친구 탁소연(옥자연)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의 관계가 꽤 얽혀 있는데 형중과 우정은 동거 관계이고, 우정은 진호와 잠자리를 갖는다. 형중은 진호의 자리를 빼앗고, 소연은 우정에게 형중을 꼬시겠다고 선언한다.
이들 사이에는 어떤 예의도 없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고 급기야 자기 자신을 위해 상대방의 뒤통수를 치는 막장 관계일 뿐이다. 미술작가로서의 부족한 재능을 차용 미술이라는 말로 포장해서 당당하게 표절을 일삼는 우정은 유민 미술관 특별전을 위해 진호를 이용한다. 그리고 그것을 형중에게 들킬 때를 대비해서 소연에게 형중을 꼬시라고 사주한다. 하지만 진호가 유민 미술관 큐레이터 자리에서 쫓겨나고 그 대신 형중이 그 자리에 앉자 태도를 바꿔 진호를 버리고 형중의 편에 선다.
막장인 것은 우정뿐만이 아니다 처음 등장부터 '나 막장 인생이야'라고 선언하는 소영은 물론이고, 겉보기엔 점잖은척하는 형중과 진호도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막장의 끝을 보여준다. 결국 유민 미술관 특별전에서 이들 모두가 한데 엉켜서 막장의 클라이맥스를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나에게 박장대소를 안겨주기도 했다. 소위 지식인들이라는 인간들이 서로의 뒤통수를 치며 흙탕물 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정말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속물들]은 대놓고 웃기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만약 선우정이라면, 내가 만약 서진호라면, 내가 만약 김형중이라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라고 뭐 다를까? 그들의 행동이 막장이라고는 하지만 어쩌면 내가 저 상황이라면 나도 성공을 위해, 혹은 복수를 위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라고 느끼게 만든다. 그렇다. 아닌척하지만 어쩌면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은 속물일지도...
결국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속물들'의 세상일 지도 모른다. 모두가 성공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인생 실패작 취급을 받게 된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발버둥 치고, 남을 이용하고, 급기야 남의 뒤통수를 치며 성공의 발판을 놓으려 한다. 선우정이 딱 그런 캐릭터이다. 가진 것도 없고, 그렇다고 재능도 없는 그녀 입장에서는 남을 이용하고 뒤통수를 치며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생존 방법일지도...
[속물들]은 저예산 독립 영화의 끝판왕이다. [영화로운 나날]처럼 기발하지만 훨씬 더 매끄럽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민낯을 허허실실 웃으며 까발린다. 상업 영화라면 불쾌할 수도 있었을 그런 방식이 [속물들]에서는 통한다. 비록 내가 감정이입을 할 매력적인 캐릭터는 그 어디에도 안 보이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나의 속물근성까지 건드려서 웃으면서도 뜨끔하게 만든다. 이런 영화라면 자주는 아니더라도 아주 가끔은 한 번씩 나태해진 나를 위해 감상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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