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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화해와 용서의 섬으로 부활하기 바라며.
카테고리 : 역사에서 배운디 | 조회수 : 2992021-04-02 오후 11:57:00

제주도가 화해와 용서의 섬으로 부활하기 바라며.

 

강민호

 

김종인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두변이나 광주를 찾아가서 1980년에 일어났던 5,18광주민주항쟁 때, 회생했던 억울한 영혼들에게 참배했다. 그리고 김진태 전 국회의원 등 소속 의원들이 5,18광주민주항쟁이 북한의 고정간첩이 일으켰던 폭동이란 것을 사과했다.

정치적인 계산 있어 말했던 아니든지 과거 국가공권력이 저지렸던 끔지한 법죄에 대한 사과했다는 점에서 극정적으로 생각 할 수 있다. 개정 될 헌법에 들어가게 되는 5,18광주민주항쟁은 한 층면에서 보면 전두환대통령이 자신의 정권을 세우기 위해 광주 시민들을 제물로 삼았던 사건으로 볼 수 있다.

19791026일 김제규중앙정보부장에 의해 박정희대통령이 시해당한 사건을 조사권한을 맡으면서, 한명의 무명장군에서 나라 권력의 핵심이 된 전두환보안사 사령관은 제2의 박정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12,12쿠데타를 일으켜 정승화계엄 사령관을 위법으로 체포하고 북한이 남침한다는 가짜뉴스를 만들어서 비상계엄을 전국적으로 확대시켰다.

 

비상계엄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자 대학가 중심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전국 곳곳에서 일어났다. 광주에서 일어났던 시민들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시위가 전국에서 가장 강력하게 일어났다.

 

이에 전두환보안사 사령관은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침해서 비상계엄해제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자인하게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던 시민들에게도 폭행과 발포 했다. 이것에 분노했던 광주 시민들은 비상계엄을 해제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참여했고, 그들은  전남도청을 최후의 고도부로 삼아 끝까지 저항하게 했다. 아직도 논란거리인 헬기포격까지 하면서 비상계엄을 해제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자인하게 진압했던 사람이 전두환보안사 사령관이다. 그리고 그는 복한의 고정간첩이 일으킨 폭동이 5.18광주민주항쟁이라고 주장했다.

 

그 이후에 전두환보안사 사령관은 소위 말하는 체육관 선거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박정희대통령 시혜사건 이전까지 무명의 장군의 불과했던 전두환보안사 사령관은 광주 시민들을 제물로 삼아서 대통령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1948년에 일어났던 제주 4,3사건의 재현판으로 생각 할 수 있다.



전두환 정권이 광주 시민들을 제물로 삼아 세워졌으니 이승만 정권을 제주 도민들을 제물로 삼아서 세웠다. 이유는 
김구와 여운영에 비하여 이승만은 상대적으로 국민들의 인지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승만대통령은 우리나라 대통령을 될 수 없는 인물이었다. 19192월에 미 국무부에 일본 대신 국제연맹이 조선을 위임통치를 해주라고 하는 청원서를 보냈던 것이 알려져서, 상해 임시정부 대통령에서 탄핵을 바가 있다. 또한 이런다한 독립운동을 하지 안했던 인물이 이승만대통령이었다.

 

이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초대대통령으로 되어야 사람은 십 중 팔구는 김구나 여운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 되었던 사람은 이승만이었다. 일본이 폐망한 이후 3년 동안 한반도 남부를 통치했던 미군정의 의도에 가장 적합했던 인물이 이승만이었기 때문이었다.

 

세계 2차 대전이 종식한 이후 미국은 공산주의 세계가 팽창을 막기 위해 한반도 남부에 자본주의 정부를 세우기 원했다. 철저한 자본주의자이었고 철저한 반공주의자인 이승만을 한반도 남부에 세워진 정부에 대통령으로 미국은 낙점했던 것이다.

 

실시했던 경제정책들의 실패와 친일인사들을 중용했던 미군정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많았다. 그런 중에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은 전국 곳곳에서 사회주의자들의 무장봉기를 촉발시켰다.

 

제주 4,3항쟁 역시도 미군정에 대한 불만과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은 반대한 김달삼 주심으로 한 사회주의자들의 무장봉기었다. 제주 사회주의자들의 무장봉기는 행방한 이후 어려운 제주도 경제를 돕기 위해 일본 동포들이 보냈던 전기설비를 실어온 배를 미군정이 압류해서 가로챘던 복시환사건과 감자기 제주도를 전라남도에서 분리해서 ()로 승격시켜 제주도 경재를 더 나빠지게 한 것으로 불만 있어 다른  지역에서 일어났던 사회주의자들의 무장봉기들 보다 강력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또한 28주년 삼일절 기념식날에 있었던 발표사건 이후에 일어났던 3.10총 파업을  미군정은 군대와 경찰과 응원경찰까지 동원해서, 자인하게 진압했던 것도  김달삼을 중심으로한 제주도 사회주의자들이 무장봉기를 강하게 일으키는 또 한가지 원인이 된다. 제주도 사회주의자들과 군대가 무력충동 한 경우 엄청난 민간인 인명피해가 일어난 것을 걱정한
김익렬장군은 김달삼의 사회주의 무장대와 평화회담을 준비해서 합의까지 했다.

하지만 미군정은 김익렬장군을 해임하고 하산하던 사회주의 무장대를 공격하면서 평화협정 파기시켰다. 우익 청년들이 저지른 오라리방화사건을 사회주의자 무장대가 저지른 것으로 조작하여 무자비하게 진압하기 시작한다. 쉽게 사회주의 무장대가 진압되지 않자 ;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당선 된 이후 북한에서 넘어온 폭력배까지 동원해서 사회주의자 무장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하였다. 그 과정에서 무장대와 관련이 없는 민간들 상대로 했던 수많은 폭행, 성폭행, 학살이 일어났다. 이런 일들이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제주도 도민 3만 명이 죽었다 이외에도 수만명의 제주도 도민들이 신체적장애와 정신적장애도 입었다.

 

그렇게 이승만 정권은 제주도 도민들을 제물로 세우질 것이다. 그리고 그 끔찍한 범죄를 감추기 위해 이승만정부는 제주도를 빨겡이 섬으로 만들었다. 김당달삼이 김일정의 지령을 받고 무장봉기를 일으켰던 것이 제주4,3항쟁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지난 정기국회에서 재정된 제주 4.3특별범은 이승만정부가 세워질 때 제물이 되어야 했던 도민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제주도를 빨겡이 섬에서 화해와 용서의 섬으로 부활시키는 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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