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다리가 불편한 사람은 불편한 다리를 보완하는 것으로 목발을 사용했다. 목발은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이 겨드랑이에 끼고 걷는 지팡이다. 목발은 말 그대로 나무로 만든 발인데 영어로는 클러치(crutches)라고 한다. 지체장애인들은 목발로 불편한 다리를 대신하였는데 몇 년 전부터 나무가 아닌 알루미늄이나 스텐 등 금속으로 만든 목발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목발이란 용어가 ‘지체장애인이 겨드랑이에 끼고 걷는 지팡이’를 지칭하는 말로 이미 굳어져 알루미늄이나 스텐 등 다른 제품도 목발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무 목발에 비해 알루미늄 목발은 잘 휘어지고 스텐목발은 너무 무거워서 좀 더 가볍고 튼튼한 목발로 나온 것이 티타늄목발이다.

티타늄목발 안내문. ⓒ티타늄목발 카페

장애인보장구 대부분은 국가에서 지원을 하고 있다. 수급자는 무료이고, 수급자가 아닌 장애인은 정해진 건강보험 수가에서 20%를 본인이 부담한다. 지체장애인용 보장구에는 의지 보조기 외에 목발, 정형구두 그리고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 등이 있다.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잘 걷지 못하는 1~2급 장애인이다.

조금이나마 걸을 수 있는 2~3급 장애인은 목발을 사용하는데 목발의 보장구 지원액은 1만5천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무 목발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이 알루미늄목발은 사용하지만 1만5천원은 저가용이라 본인의 돈을 더 보태서 목발을 구입한다는데, 알루미늄은 잘 휘어지고 스텐목발은 너무 무겁다고 했다.

지체장애인들의 바람은 가볍고 튼튼한 목발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티타늄목발이다. 대부분의 지체장애인들이 티타늄목발에 대해서 알고는 있지만 가격이 비싸서 엄두도 못 냈다. 건강보험에서 지원되는 목발의 가격은 1만5천원인데 반해 티타늄목발은 6십5만원이나 하기 때문이다.

전동휠체어는 2백만 원이 넘는데도 자비로운 봉사단체들이 있어서 여러 곳에서 나누기 행사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많은 지체장애인들이 갖고 싶어 하는 티타늄목발을 무상으로 나누어 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저금통을 들어보는 김명석 전무와 이영우 대표. ⓒ이복남

1년 전 쯤 필자가 우연히 이런 사실을 알고 “티타늄목발 나누기”를 해 보려고 계획했더니 모 장애인단체에서 후원자를 구해 보겠다고 했으나 1년이 다 되도록 별 진전이 없었다.

필자가 운영하는 하사가장애인상담넷에서 지난 봄나들이 행사를 울주군 석남사로 갔었다. 우리 후원자 중에서 컴퓨터를 수리제작하는 뉴월드시스템 이영우 대표가 그날 행사에 함께 했는데 우연히 나온 얘기가 “티타늄목발 나누기”를 언제 할 것이냐 였다. 1년 전 처음 그 얘기가 나왔을 때 저금통이 하나 있으니 자기도 조금이나마 보태겠다고 했다.

작년까지는 하사가장애인상담넷이 부산시에서 약간의 보조금을 받고 있었기에 “티타늄목발 나누기”에 얼마정도는 보탤 수 있었지만 2016년부터는 보조금이 중단되어 이제는 보탤 수 있는 형편이 안 되었다.

“후원자를 찾아 준다 했지만 답이 없으니 그냥 우리끼리 해 보면 안 될까요?”

그날 봄나들이에 행사에는 공교롭게도 세 명의 목발장애인이 참석했었고 그 세 사람도 다 티타늄목발을 원했다.

“그래 그냥 우리끼리 해봅시다.”

장우신협 다대지점에서 저금통을 깨고. ⓒ이복남

티타늄목발 한 조(2개)의 가격은 6십5만원이다. 이영우 대표가 저금통을 깨고, 세 명의 지체장애인이 각 10만원씩을 내고 나머지는 필자가 부담하기로 했다. 티타늄목발을 제작하는 ㈜에이티엑스에 목발을 의뢰하면서 그 얘기를 했더니 30만원을 후원해 주셨고, 필자의 딸이 그 얘기를 듣더니 이번 달에 보너스를 탔다면서 자기도 10만원은 보태겠다고 했다.

드디어 이영우 대표의 저금통을 깨기로 했다. 커다란 물통의 절반 이상 동전이랑 지폐가 차 있었다. 시중은행에서는 귀찮아할 것이므로(?) 하는 수 없이 부산장우신협으로 가져갔다. 부산장애우신협은 장애인을 위해서 만든 신협이므로.

저금통은 너무 무거워서 필자는 혼자 들기도 어려웠다. 장우신협 김명석(시각장애 1급) 전무가 저금통을 들어 보더니 아마도 150만 원 쯤(?) 예상은 했지만 당장은 세어줄 수가 없으니 놔두고 가라고 했다. 장우신협의 동전 세는 기계가 수동이라 업무를 마치고 세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대지점에는 자동기계가 있다고 했다.

저금통을 다대지점으로 가져갔다. 지폐가 187,000원이고 동전이 10원 50원 100원 500원 등 총 1,042,740원이었다. 그리고 1달러와 5달러가 있었는데 나중에 환전을 하니 6,870원이었다. 저금통에서 나온 돈은 총 1,236,610원이었다.

이영우 대표는 컴퓨터 전문수리를 하는데 수리비를 받으면 동전은 다 저금통에 넣었고 한 번 씩은 자신의 주머니를 털기도 했단다. 달러는 가끔 외국인들이 컴퓨터 수리를 하러 와서 저금통이 뭐냐고 묻기에 취지를 설명했더니 넣어 준 돈이란다.

그런데 이영우 대표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저금통에 저금을 하기 시작했을까.

“사업하는 사람은 통장에 돈이 있으면 다 쓰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모아서 뜻 있는 일에 쓰려고 2007년 10월 15일부터 모았습니다.”

그날이 대체 무슨 날일까.

“별거 아니지만 그날 부산일보에 제 인터뷰가 났습니다.”

부산일보 이영우 대표 인터뷰 기사. ⓒ이복남

아하! 그래서 필자가 그 날의 부산일보를 찾아보았다. "작은 일이 세상을 바꾼다"는 소망을 가지고 컴퓨터로 신앙과 삶의 기쁨을 다지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독실한 불교신자인데 부산 연제구 연산4동 혜원정사(주지 원허 스님)를 다닌다. 전국 사찰에서도 보기 드물게 혜원정사는 부부가 함께 법회를 보는 연꽃부부회를 꾸리고 있는데, 아내와 함께 이 법회에 빠지지 않고 참여한다. 한 때는 부산불교대학에서 홍보부장을 맡기도 했었다.

이영우 대표는 “사람하고 강아지 빼고는 다 고칩니다.”라는 슬로건으로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는데 이영우 대표는 1990년대 필자가 처음 컴퓨터를 접할 무렵부터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다.

티타늄목발 제작사인 ㈜에이티엑스에서는 이종형 부사장이 직접 내려와서 맞춰주겠다고 했다. ㈜에이티엑스는 본사가 인천이므로 대부분은 목발의 길이를 재서 알려주면 택배로 보낸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그 뜻이 가상하므로 직접 오겠다고 했다.

지난 16일 토요일 낮에 이종형 부사장이 필자의 사무실로 왔다. 티타늄목발을 사용 할 세 사람 즉 A씨 B씨 C씨 그리고 티타늄목발을 맞추기 위해 저금통을 깬 이영우 대표도 왔다. 이종형 부사장은 트럭에다 자재를 잔뜩 싣고 왔는데 티타늄목발은 키 높이에 따라 상중하 세 종류로 나오는데 그 중에서 목발을 사용하는 사람의 키에 맞추어 위나 아래를 잘라내고 위에는 겨드랑이 부분에 나무를 대고 아래에는 고무 패킹을 박았다.

티타늄목발 아래 부분을 잘라 보는 이영우 대표. ⓒ이복남

키가 작은 C씨부터 티타늄목발을 맞추었다. 그리고 B씨 그 다음 A씨는 맞는 사이즈가 없어서 회사에 가서 맞춰서 보내겠다고 하더니 차에 있을 것 같다며 주차장에 가보니 마침 있더란다. 보통 사람들은 중하만 있으면 되는데 A씨는 키가 커서 상이 필요한 것 같았다.

이종형 부사장은 이영우 대표에게 장애인들을 위해서 저금통을 깨 주어서 고맙다며 마지막 티타늄목발의 아래 부분 자르는 것을 이영우 대표에게 직접 해 보라고 했다.

세 사람에게 맞는 티타늄목발이 다 만들어졌다. 이종형 부사장은 필자에게 기증식을 하라고 했다. “아니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필자가 손사래를 쳤다.

A씨 B씨 C씨 세 사람에게 티타늄목발을 짚고 복도를 걸어 보라고 했다.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C씨가 제일먼저 반색을 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앉을 때 양목발을 한손으로 모아 쥐어야하는데 나무목발은 한손에 쥐기가 버거워 힘들었던 반면 티타늄목발은 가볍게 한손에 쥐어진다는 것이다.

목발을 한손에 모아 쥐는 C씨. ⓒ이복남

A씨 B씨 C씨 세 사람이 각자 티타늄목발을 짚어 본 소감들을 얘기했다.

-가끔 겨드랑이 살이 목발사이로 씹히는데 그런 게 없다.

-나무목발은 걸을 때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는데 그런 게 없다.

-나무목발하고는 무게는 비슷한 것 같지만 부피가 작은 것 같다.

-보기가 좋아서 양복하고도 어울리겠다.

-볼트 너트가 없어서 옷이 걸리거나 찢어질 염려가 없다.

-승용차를 운전할 때 시트 옆에 쏙 들어 간다.

-외관이 날렵하고 미끈하다.

-한 손에 한조(2개)가 쥐어진다.

그런데 처음 티타늄목발을 사용해 보니 휘청거리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했다는 A씨 말에 이종형 부사장은 탄성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숙달이 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비가 오거나 물기가 있어도 나무목발이나 알루미늄목발처럼 위험하지 않다고 했다.

그랬더니 A씨는 수영을 다니는데 나무목발이 물에 불던데 이제 그럴 염려는 없겠다며 좋아라했다.

이종형 부사장은 어떤 사람이 티타늄목발을 물에 빠뜨렸는데 잠수부를 불러서 건졌다고 했다. 그러자 낚시를 좋아하는 이영우 대표가 바다낚시를 갈 때는 목발 옆에 부기를 달라고 해서 한 바탕 웃었다. 모두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종형 부사장이 티타늄목발은 한 번 하면 끝이니까 단골이 없고 홍보도 따로 필요 없다고 했다. 티타늄목발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누구라도 와서 물어 본다는 것이다.

“지금 가격도 재능기부를 하는 셈인데 소아마비도 없어져서 수요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우리 직원들은 하지 말자고 합니다.”

티타늄목발을 받은 세 사람과 이종형 부사장과 이영우 대표. ⓒ이복남

티타늄목발을 본인이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형제자매나 아들딸이 해 주는 경우가 많은데 얼마 전에는 딸이 아버지에게 해주려고 가격을 물어보고는 망설이는 사이에 아버지의 목발이 부러져서 다치는 바람에 그 다음 날 바로 티타늄목발을 맞추었다고 했다.

“티타늄목발을 한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죽을 때는 꼭 기증을 해 달라는 겁니다.”

티타늄목발은 반영구적이기 때문에 죽을 때 기증을 해 주면 새것처럼 표면처리를 다시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증하겠다고 했다. 아직은 그런 일이 없지만.

현재까지 ABC 세 사람도 알루미늄 목발은 너무 위험한 것 같아서 나무목발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나무목발을 구할 수가 없어서 몇 번이나 수리를 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티타늄목발을 한 사람들은 며칠 사이에 주변에서 “너거(너희)끼리만 하느냐”고 부러운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이종형 부사장도 다른 사람들이 항의 하면 어쩔 거냐고 그런 부분을 염려했었다.

티타늄목발은 형편이 되는 사람들은 구입하면 될 터이고, 그 밖에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후원자가 나타나거나, 티타늄목발도 보장구지원 품목에 포함되어 필요한 사람은 누구든지 사용할 수가 있었으면 좋겠다.

티타늄목발을 받고 흡족하게 돌아가는 사람. ⓒ이복남

목발의 삶

혼자서는 일어서지 못하고

걸어갈 수도 없지만

그래도 단단한 소망이 있다.

현관 벽 모서리에 기대어

말없이 기다리다가

당신의 따뜻한 손으로

내 손을 잡고

다정하게 걸어가 줄 때

내 몸은 당신의 몸이 되어

당신이 가는 길 함께 가리라.

머언 길 가다가

가시덤불에 할퀴고

돌부리에 채여

살갗 터지는 핏물의 아픔이 와도

당신이 가야할 길이라면

내 몸의 살과 뼈가 으스러져

한줌 가루가 되는 그날까지

나는

당신의 혼이 되어 함께 가리라.

*조창용(시인, 부산장애인총연합회 회장)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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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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