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연구와 당사자 연구를 비교한 그림. ⓒestas, 세바다
일반연구와 당사자 연구를 비교한 그림. ⓒestas, 세바다

지난 신경다양성 포럼 때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인 일본 도쿄대학의 아야야 사츠키 특임강사가 신경다양인 중심으로 운영·참가해 당사자 연구하는 모임인 오토에모지테를 소개했다. 이 연구에선 당사자와 문제를 분리하며, 다른 사람 발언 시 이야기 금지, 무리하지 않기, 소리가 나지 않는 음식(사탕 등)은 가능 등 신경다양인에게 맞는 규칙을 디자인하고, ‘혼자일 때 겪는 어려움’.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겪는 소통의 어려움’에 대한 연구를 둘 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이 연구에선 ‘데이터’가 중요해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상황이었나’ 등 매일 생활 속에서 자신의 경험 데이터를 구체적으로 모으는 등의 구체성, 당사자 책임 추궁이 아닌 시간 축에 따라 사실을 열거하고 패턴 탐구하고 발견하는 등 구조에 주목하는 구조성,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범위 내에서 조금씩 다양한 사람들과 논의하는 식으로 어려움을 말하는 등의 공유성을 중요 포인트로 삼는다.

마침 청주정신건강센터에서 이런 당사자 연구를 강연해 달라고 아야야 사츠키를 초청했다. 이참에 자폐성 장애인 자조모임 estas를 한번 보자고 아야야 강사가 연락했고, 우리 측에서 이를 수락했다. 신경다양성 지지모임 세바다에겐 아야야 강사 같이 보자고 estas에서 제안했고, 세바다는 이 제안을 수락했다.

그래서 지난주 목요일 estas와 세바다에서 아야야 사츠키 강사를 초청해 서울 중곡동에 있는 회복공간 ‘난다’에서 한일 신경다양인 교류회를 공동주관·개최했다. 이 교류회에선 아야야 강사의 당사자 연구 시연은 물론, estas와 세바다 소개, 그리고 한일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가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본에 있는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를 포함한 신경다양인과 ‘난다’에 가지 못한 한국 자폐인 및 관련 전문가, 종사자 등은 Zoom 공간을 통해 참석했다.

교류회 이전엔 소소한 소통이란 사회적 기업에서 필자를 포함한 자폐성 장애인들과 기업 대표 및 직원들이 모여 아야야 강사에게 궁금한 걸 물어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거기서 강사는 일본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 단체는 여러 개지만 놀이 중심이고 사회활동 그룹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아울러, 부모 모임이 많고 성인 자폐인 당사자 목소리보다 부모 목소리가 강함을 언급했다.

사회적 기업 ‘소소한 소통’에서 자폐성 장애인들과 기업 직원, 대표 등이 모여 한국의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쉬운 정보 관련한 현실 등에 대해 도쿄대학 아야야 사츠키 특임강사에게 알리고, 일본의 현황에 대해 강사에게 질문하는 모습. ⓒ이원무
사회적 기업 ‘소소한 소통’에서 자폐성 장애인들과 기업 직원, 대표 등이 모여 한국의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쉬운 정보 관련한 현실 등에 대해 도쿄대학 아야야 사츠키 특임강사에게 알리고, 일본의 현황에 대해 강사에게 질문하는 모습. ⓒ이원무

이후 교류회가 있었는데, 여기에 대해선 필자가 아야야 사츠키 강사에게 확인한 정보까지 포함해 강사가 시연한 당사자 연구에 관해 먼저 잠깐 소개하겠다. 강사는 당사자 연구 시연주제로 ‘어려운 글을 볼 때 대처방법은?’이란 주제를 내놨다. 그리고선 어려운 글을 접할 때 어려움에 대해 교류회에 참석한 당사자가 얘기했으면 한다고 했다. 이에 당사자들은 다음과 같은 어려움을 전했는데 여기선 일부만 소개하겠다.

‘관공서에서 공문서 신청 시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어요.’

‘종교인들도 어려운 말을 씁니다. 옛날 말로 설명하거든요. 최근에 한국에서도 성경을 한글로 번역할 정도입니다.’

‘컴퓨터공학 전공했는데, 공학 용어가 어려운 게 있습니다. 찾아보지만 잘 감이 안 오더라고요.’

‘숫자에 대한 해석이 어렵고요. 그래프, 표 해석이 어려워요. 글자로 된 글을 선호합니다.’

도쿄대학 아야야 사츠키 특임강사가 당사자 연구 시연을 시작하는 모습. ⓒ이원무
도쿄대학 아야야 사츠키 특임강사가 당사자 연구 시연을 시작하는 모습. ⓒ이원무

그리고선 강사는 어려운 글을 접할 때 이런 것들을 했더니 해결되었던 경험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쉽게 그려진 그림을 통해 긴 영어 문장 시 첫 글자를 굵게 한다든지, 프로야구 경기에서 이해가 어려웠던 건 케이블 TV에서 다시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여러 번 보며 이해하든지, 또는 멘토 통해서 물어보든지, 아니면 메모하면서 어려운 책을 읽고 저자의 말을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요약하는 등의 방법 등을 이야기했다.

이렇게 당사자들이 어려운 글 대처하는 방법을 말했다. 이후, 강사는 어려운 글을 볼 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이에 대한 대처법은 어땠는지 알아보았고, 한국과 일본에서 동일한 대처법을 얘기해서 좋았다며, 이렇게 해서 당사자 연구를 통해 해결방법 중 자신이 고르고 싶은 걸 선택해 일상생활에서 시도해보고, 성공하면 그 방법은 자신에게 맞는 거고, 실패하면 그건 실패가 아니라 자신한테 맞지 않는 것이라며 말을 맺었고, 교류회는 종료됐다.

종료 후 필자는 당사자 연구 개요에 관한 확실한 정보를 강사로부터 확인했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당사자 연구에서 연구주제와 관련해 어떤 어려움(문제)이 있으면 그 어려움을 당사자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 이 어려움에 대한 해결법에 대해 당사자가 생각나면 그걸 말하도록 한다. 여러 해결법이 나오면 그 해결법 가운데 하나를 당사자가 선택, 일상생활에서 적용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선택한 해결법이 일상생활에서 잘 적용되고 성공하면 그 해결법은 자신에게 맞는 것이다. 성공한 방법 외에도 다른 해결법 시도할지 말지는, 당사자 선택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해결법이 일상생활에서 잘 안 됐을 경우 당사자 연구에서는 이를 실패라 하지 않고 보물 또는 경험이라 한다. 잘 안 됐을 경우는 그 해결법이 자신에게 맞지 않은 것일 뿐이며, 이후 다른 해결법으로 시도할 수도 있고, 시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시도할 때 실패하면 이걸 경험으로 본다는 거니, 이를 통해 우리는 실패할 자유를 갖게 되는 거다. 또한, 다른 해결법으로 시도할지 말지는 오로지 당사자의 선택에 맡김으로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보장함은 물론 너무 능력주의에 치우치지 않게끔 하는 거다. 이렇게 되면 장애의 의료적 모델과는 거리가 멀고 사회적 모델을 추구하는 연구가 되는 거다.

도쿄대학 아야야 사츠키 특임강사가 시연한 당사자 연구주제에 대한 당사자들의 경험이 칠판에 적힌 모습. ⓒ이원무
도쿄대학 아야야 사츠키 특임강사가 시연한 당사자 연구주제에 대한 당사자들의 경험이 칠판에 적힌 모습. ⓒ이원무

능력주의에 치우치지 않게끔 당사자 결정을 존중한다는 거니, 이런 당사자 연구가 많아진다면 장애인들은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계기를 마련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또한, 당사자 연구에선 학술적 연구 필요 없이, 오로지 당사자 경험을 중요시한다. 당사자의 살아있는 경험만큼 힘이 세고 강력한 건 없으니까. 이를 통해 살아있는 연구란 느낌마저 든다.

시설수용 생존자들도 당사자 연구를 적용하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왜냐면 시설수용 정당성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때 실패할 자유를 주지 않고 장애인을 권리 주체가 아닌 돌봄 객체로 보호하려는 논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에서 살 때 두려움과 어려움, 이를 해결한 방법들을 생존자들 서로가 이들만의 다양한 소통수단으로 소통하거나 얘기하고 공감한 후 삶에서 적용해본다면 어떨까 싶다. 물론 연구 과정에서 의사소통 지원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당사자 연구 시연 말고도, 교류회에선 한일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들 간 정보공유가 있었다. 일본 측에선 최근에 변화가 있긴 하지만 당사자 주도 프로그램이 많지 않고 코로나 19가 진정되는 시점에서도 온라인으로 자조모임이 진행되고 있고, 요코하마, 요코스카 같은 일부 지역에선 오프라인으로 진행되긴 하지만, 정보공유나 정치활동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전했다.

자폐성 장애인의 사회적 활동이 되고 있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일본 민주당 정권 때 그 활동에 관해 언급됐지만, 시간 지나면서 이야기가 들어갔단다. 장애인문화법에 동료지원 추가되고, 당사자 보장법이 있긴 하지만 당사자가 활동하기엔 어려운 구조라는 이야기도 전했다. 심지어 당사자 권익 없애는 게 좋지 않냐며 발언하는 분들도 있다고 얘기했다.

일본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들의 어려움을 들으니 결국 놀이 중심을 넘어 정보공유는 물론 사회·정치 활동 활성화가 되도록 하는 게 일본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 단체의 과제란 점을 알게 됐다. 정치 활동과 정보공유 등 당사자 활동에선 우리 측이 일본 자폐인보다 조금은 활발하다고 느끼게 됐지만 말이다. 물론, 교류회 전 강사의 답변을 생각해보며, 부모의 목소리가 당사자보다 강하고 반영이 비교적 잘되는 점은 일본과 상당 부분 비슷하다고 본다.

일본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 활동과 관련한 당시 상황에 대한 정보. ⓒ이원무
일본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 활동과 관련한 당시 상황에 대한 정보. ⓒ이원무

자폐인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문화가 되려면, 자폐성 장애 수용교육의 효과성 연구 및 시범사업과 부모, 일반 대중 등에게 수용 교육을 실제 실시하는 등의 장기적 계획을 국가·지자체가 수립하는 건 물론,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 의견이 정책·법률 등에 반영되는 공식적 통로 또한 국가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될 수 있게 자폐성 장애인 및 신경다양인 당사자 단체의 치밀한 장기적 전략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고, 일본에서도 이런 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이외에도 필자는 교류회 이전·이후 개인적으로 일본 자폐성 장애인 관련해서 궁금한 부분을 물어봤는데 돌아온 답변은 이렇다. 고인지·저인지 자폐성 장애인들 간 교류에 대해선 그렇게 많이 활성화되진 않았고, 국가·지자체에서 읽기 쉬운 정보의 의무화 여부에 관해선 쉬운 정보 자체가 제도가 아니기에 의무화가 안 됐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는 우리나라와 어느 정도는 비슷하다고 느꼈다.

또한, 국가, 지자체 차원의 지적·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체계적 심리지원 체계에 대해선 생활지원은 있을지 모르나 그런 체계는 없다는 말도 전했다. 다만 상담기관은 있고, 대학병원 등에 자폐성 장애인이 카운슬링 받으러 갈 수 있다는 말을 전했다. 이 역시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느꼈다.

이번 교류회를 통해 필자는 ▲실패할 자유 주는 당사자 연구 통해 장애인 사회통합 계기 마련과 아울러, 두 나라 다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부모보다 약하지만, 정보공유와 정치활동 등 자폐인 당사자 활동에선 우리나라가 약간 활발한 상황에서 ▲·일 자폐 당사자 현실이 비슷하고도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주로 느끼게 되었다.

이번 교류회를 계기로 한일 자폐인 당사자 간 교류가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 한일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들이 연대해 좋은 사례가 있으면 서로 배우고, 어려움은 함께 공유하는 기회가 많았으면 한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의 자폐인들이 각기 한국, 일본 사회에서 목소리를 존중받아 이들의 사회통합이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길 바라며 말이다.

아야야 사츠키 특임강사와 함께. ⓒ이원무
아야야 사츠키 특임강사와 함께. ⓒ이원무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