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8일,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보슬보슬이라고 하기엔 조금 빗줄기가 굵었다. 이틀 앞서 제43회 장애인의 날이자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시 주최의 큰 행사가 여의도 공원에서 있었다.

장애인의 이해와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고취하고자 정부가 제정한 날임과 동시에 장애인을 동정과 시혜의 대상을 거부하고, 시민으로서 권리를 회복하자고 장애계가 부르짖는 날이기도 하다. 정부와 당사자들의 입장은 이리 첨예하게 다르다.

2023 동행서울 누리축제 포토라인. ⓒ정민권
2023 동행서울 누리축제 포토라인. ⓒ정민권

나는 사회복지사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당사자로 매년 이 행사에 참여한다. 그리고 매년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장애인의 날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 다른 결을 갖는 것처럼 나 역시 참여하는 입장이 복지사와 당사자가 다르다.

방문하는 참여자들에게 나눠줄 선물과 이벤트를 며칠 전부터 준비한다. 무료로 나눠줄 선물을 포장하고 끝도 없이 줄을 설 것이 뻔한 먹거리를 꼼꼼하게 챙긴다. 예년과는 다르게 비가 내려 사람들이 적지 않을까 걱정과 기대가 동시에 들었다. 하지만 부스 준비가 끝나기도 전에 사람들은 불나방처럼 부스로 몰려들었다.

"이거 하나만 줘."

"행사 시작하면 드릴게요. 여기 이렇게 몰려 계시면 위험하니까 다른 곳도 둘러보고 오세요!"

튀기고 굽고, 달콤한 냄새로 유혹하는 부스 앞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면서도 어떻게든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도록 회유, 부탁을 간곡하게 할 수밖에 없다. 본격적으로 부스운영이 시작되면 줄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길게 늘어선다. 오가는 사람들을 막아설 정도로 사람들이 위험하게 뒤엉키고 그 틈에 새치기와 억지와 생떼가 난무한다. 줄을 세우려는 복지사와 실랑이를 하고 심지어 줄 선 사람끼리 다툼까지 벌어진다.

"줄을 서세요. 어머니 끼어드시면 어떡해요."

"나는 장애인이니까, 좀 봐줘."

"어머니, 여기 계신 분들 거의 다 장애인이에요. 뒤로 가세 줄 서세요."

"거 별거 아닌 거 주면서 되게 지랄이네!"

날선 대화가 반복되고 결국 행사를 진행하는 복지사들은 처음 가졌던 좋은 마음과 표정은 지친 마음에 점점 어두워진다. 반면 복지사들이 나눠주는 선물들을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받겠다고 생떼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 행사는 ‘선물’이라는 미끼로 되레 그들의 자존감을 떨어트리는 일이 아닐까 싶어 씁쓸하다. 정말 이게 뭐라고.

이제라도 참여자들의 감정은 살피지 않고 무조건 공짜 선심을 베푸는 것보다 그들이 장애 당사자의 권리를 침해받지 않으면서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앞으로는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는 것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라 부르짖는 시위도 멈추고 그저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즐길 수 있는 그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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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가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회복지사. 책 읽고 글도 쓴다. 그리고 종종 장애인권이나 인식개선을 위한 강연도 한다. 미디어에 비친 장애에 대한 생각과 함께 장애당사자로서 일상에서 겪는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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