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장애인으로서 살아가기 힘든 나라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나 통계 자료가 말해주는 숫자들을 실제로 접하고 나니 한국의 현실이 더욱 암담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장애통계연보(2019,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자료에 의하면 2015년 한국의 GDP(국내 총생산) 대비 장애인의 복지 지출은 0.59%에 불과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국가들의 평균이 1.93% 임을 생각하면, 3할도 안 되는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 관련 각종 통계를 보면 더욱 참혹하다. 보건복지부와 통계청이 장애인 관련 통계를 수집‧정리, 발표한 ‘2020 통계로 보는 장애인의 삶’에 따르면 장애인의 고용률은 34.9%로 전체 인구 고용률(60.7%)의 절반이 약간 넘는 수준이며, 52%가 연소득 3000만원 미만인 것으로 조사됐다.

장애인복지 실태를 알려주는 이런 수치보다 더욱 나를 놀라게 한 사실이 있다. 한국은 장애인으로서 살아가기 힘들 뿐 아니라, ‘장애인이 되는 것’도 힘든 나라라는 사실이다. 발가락이 9개 잘려도 나머지 하나가 남아 있다는 이유로, 손가락이 잘려도 그것이 네 번째 손가락이라는 이유로, 청력을 잃어도 다른 한쪽 귀는 멀쩡하다는 이유로 장애인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좀 더 노골적으로 고쳐 말하면, 장애인으로서 나라의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허락받지 못한 장애. ©펙셀스(https://www.pexels.com)
허락받지 못한 장애. ©펙셀스(https://www.pexels.com)

캐나다의 정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청력 장애로 인해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①조용한 환경에서 익숙한 사람과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들리지 않거나, 장애가 없는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보다 3배 더 오래 걸린다.(적절한 치료, 약물 및 장치를 사용하더라도)

②귀하의 장애는 항상 또는 거의 항상 존재한다.(일반적으로 최소 90%)

③귀하의 손상이 12개월 동안 지속 되었거나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상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장애가 있는 경우 캐나다에서는 다양한 연방과 주에서 제공하는 장애 혜택 및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다.

장애 세액 공제(Disability Tax Credit, DTC)는 청력 손실을 포함하여 신체적 또는 정신적 기능에 심각하고 장기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청구할 수 있는 환불 불가능한 세액 공제. 장애가 있는 사람이 내야 하는 소득세 금액을 줄이거나 환급받을 수 있다.

등록된 장애 저축 계획(RDSP)은 장기 저축 계획. 장애가 있는 개인과 그 가족이 미래를 위해 저축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고안되었다. 캐나다 정부는 적격한 RDSP 보유자에게 매칭 보조금과 채권을 제공하며 비과세 혜택을 준다.

고용 보험(EI) 질병 수당은 질병, 부상 또는 격리로 인해 일할 수 없는 유자격 근로자에게 임시로 소득을 지원하는 제도다. 편측성 난청이 있는 사람이 증상으로 인해 일을 할 수 없는 경우 EI 질병 수당을 받을 수 있다.

캐나다의 각 주에는 장애가 있는 개인에게 재정 지원, 건강 혜택 및 기타 형태의 지원을 제공하는 자체 장애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 자격 기준과 혜택은 주마다 다르다.

한국과는 달리 캐나다는 일측 난청도 일상생활의 상당한 불편함을 느낄 경우 다양한 혜택과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다. 물론 신청한다고 모든 혜택을 전부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두 번 보아도, 거꾸로 보아도 한국보다 장애 판정 기준과 혜택이 후하다고 생각된다.

2020년 봄, 코로나가 세계를 강타하고 난 후 그로부터 1여 년 뒤 2021년 가을, 전 세계 사람들이 기다리던 코로나 백신은 엄마의 귀를 강타했다. 2차 백신 접종을 맞고 열흘쯤 지났을 때 엄마는 응급실에 실려 갔다. 어지럼증을 동반한 난청이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접종 시기별 난청 발생을 보면 41.7%에 달하는 환자들이 두 번째 접종 이후 청력 손실을 보고했다. 첫 번째 접종에서의 난청 발생은 39.1%, 세 번째 접종은 21%였다. 돌발성난청 증상 발현까지의 평균 시간은 접종 후 9.2일이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런 사례가 보고되었음에도 코로나 백신과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는 이유로 백신 부작용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쓸 수는 없어 병원 진단서에도 '원인 모를 돌발성 난청'으로 기록되었다. 병원에서 퇴원 후 여러 가지 치료와 약을 써보았지만 결국 엄마의 한쪽 청력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의 보건복지부는 엄마를 장애인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왼쪽 귀는 멀쩡하다는 게 이유였다. 한쪽 청력을 잃은 것만으로는 일상생활에 큰 불편함이 없기에 장애인 판정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는 그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인지 묻고 싶었다. 엄마는 한쪽 귀를 잃고 나서, 3명 이상이 모인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화 내용이나 특정 소리가 나는 방향, 음원의 종류와 거리에 대한 구분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옆집에서 나는 진공청소기 소리임이 분명한데 깜짝 놀라며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묻는 일이 많아졌고, 엄마의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말을 하면 고개를 돌려 다른 쪽 귀를 대고는 다시 말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은퇴 후에도 활발하게 기간제 교사로 활동하던 엄마가 20명 이상 아이들이 동시에 말하는 교실에서의 대화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생겨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캐나다는 ‘장애’의 정의에 꽤 부합하는 판정 기준을 두는 듯하다. 그에 비해 한국은 장애 복지 수준을 차치하고라도 판정 기준조차 지나치게 인색한 것이 더 시급한 문제로 느껴진다.

국립국어원의 표준대국어사전에 따르면 장애인(障礙人)은 ‘신체의 일부에 장애가 있거나 정신 능력이 원활하지 못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다. 나라가 만든 표준대국어사전이 정의한 그 뜻이 맞다면 주변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같은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신체적 정신적 결함으로 인해 남들보다 시간과 비용이 더 드는 사람을 ‘장애인’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반드시 발가락이 몽땅 날아가거나, 보다 중요한 손가락이 절단되거나, 양쪽 귀를 모두 잃어야지만 ‘장애’로 인정해 주는 인색함으로 절약된 나라의 세금이, 어떤 식으로 국민의 행복에 달리 기여되고 있는지 무척 궁금해진다.

세계 인구의 15%가 장애인으로 보고(세계장애보고서) 되는데 한국의 등록 장애인은 5%에 불과하다. 분명히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500만(10%) 국민의 ‘허락받지 못한 장애’는 씁쓸한 한국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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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3학년 때 인턴십을 한 인연으로 삼성전자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4년의 고과를 채운 후 대리 직급으로 승진을 하기 직전 무작정 퇴사를 하고 캐나다로 왔다. 자유로운 인생을 꿈꾸며 태평양을 건너왔으나 자유는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진리를 깨달으며 자숙과 고찰의 30대를 보내고 있다. 캐나다에서의 7년 간의 고군분투를 에세이로 집필한 <무작정 퇴사, 그리고 캐나다>를 출간했으며 최근에는 전자책 <내 일기를 출간 에세이로 만드는 방법>을 썼다. 캐나다와 한국의 소수자 인권에 대해 자주 생각하며 가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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