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째 월드컵 16강 성지이자 카타르 도하 근교 알 라얀에 위치한 '사막의 다이아몬드'라는 애칭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 ⓒ이원무
2번째 월드컵 16강 성지이자 카타르 도하 근교 알 라얀에 위치한 '사막의 다이아몬드'라는 애칭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 ⓒ이원무

4년 전 ‘카잔의 기적’이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참 빠르다. 올해 월드컵은 카타르에서 개최하게 됐는데, 중동의 날씨 특성상 여름에는 섭씨 40도가 넘어, 대회를 치르기에 적절치 않아 11월 개최로 결정 났다. 하지만 유럽 빅리그 입장에선 시즌 도중 월드컵을 치르는 것이라, 리그 일정은 물론 선수들 몸 관리에도 차질이 생기는 등의 이유로 카타르월드컵 개최를 반대했다.

하지만 국제 축구연맹 FIFA는 리그 일정에 상관없이 카타르의 11월 개최를 강행하기에 이른다. 이 월드컵 개최와 관련하여 카타르부터의 뇌물이 오고 갔다는 얘기, 월드컵경기장을 건축하는데 수많은 노동자의 사망 등 피로 물든 월드컵이라는 소리 등이 끊이지 않았지만, 이런 우려에도 전 세계 축구팬들의 축제인 월드컵은 개막되었다. 

우리 팀은 남미의 전통강호인 우루과이, 아프리카의 검은 별 가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쟁쟁한 미드필드진을 보유한 막강 전력의 포르투갈과 한 조에 속해 있었다. 가나가 최약체라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유연성과 개인 능력이 상당히 좋고, 한 번 폭발하면 걷잡을 수 없는 게 가나 등의 아프리카 팀의 장점이었다. 더군다나 우리에겐 2014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의 알제리전 참사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 조는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정도라면 불평해선 안 되는 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나 자신이 대한민국 국민이라 우리 팀의 16강 진출을 바랬고,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은 더욱 그러했다.

카타르월드컵을 보기 위해 개막 3개월 전까지 신분증 역할을 하는 하야카드 등록을 완료하고, 비행기 표도 끊고, 경기장 티켓도 미리 예약·구매했다. 티켓은 가나와 포르투갈전, 그리고 루사일 경기장에서 열리는 16강전 티켓을 샀다. 우루과이전은 서울의 필자 집에서 경기를 봤는데, 생각과는 달리 미드필드 선수들과 수비진들이 우루과이의 미드필드진을 무력화시키는 바람에 0-0무승부를 기록했다. 이겼으면 좋았겠지만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경기결과였다.

가나전부터는 현장에서 직접 경기를 챙겨보기 위해 두바이로 출국했다. 월드컵 팬들은 몰려오는데, 카타르 땅이 좁기에 숙박은 상당히 부족했고 숙박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숙박도 최고로 싸봤자 하루 자는데 15만 원은 기본이었고 어떤 데는 하루에 1000만 원인 등 부유층이 아니면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침 사우디아항공, 오만항공, 플라이두바이 등에서 24시간 이내로 월드컵 관람 겸 카타르 관광을 할 수 있는 셔틀 비행기를 마련한다는 소식이 7~8개월 전부터 있었다. 셔틀 비행기 비용이 카타르 숙박비용보다는 훨씬 저렴해, 두바이에서 머물고 경기 당일에 월드컵 관람 겸 여행을 결심하게 됐다. 그래서 경기 당일에만 카타르를 방문할 목적으로 셔틀 비행기 편을 예약했다.

가나전 관람을 위해 두바이를 떠났을 때 숙소 근처에 있는 두바이 메트로 역인 Discovery Garden역(위 왼쪽), 셔틀 비행기 탑승을 위해 갔던 두바이 Al Maktoum International Airport 출국장 전경 중 일부(위 오른쪽), 셔틀 비행기인 Flydubai(플라이두바이) 비행기 안(아래 왼쪽), 셔틀 비행기 타고 도하에 도착한 후 도하 국제공항 전경 ⓒ이원무
가나전 관람을 위해 두바이를 떠났을 때 숙소 근처에 있는 두바이 메트로 역인 Discovery Garden역(위 왼쪽), 셔틀 비행기 탑승을 위해 갔던 두바이 Al Maktoum International Airport 출국장 전경 중 일부(위 오른쪽), 셔틀 비행기인 Flydubai(플라이두바이) 비행기 안(아래 왼쪽), 셔틀 비행기 타고 도하에 도착한 후 도하 국제공항 전경 . ⓒ이원무

서울에서 예미레이트 항공으로 두바이에 도착했고, 이틀 뒤 거기서 플라이두바이 셔틀 비행기 편으로 카타르 도하에 도착했다. 이후 도하 근교 알 라얀의 에듀케이션 스타디움으로 이동해 가나전을 관람했다. 이 경기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라 공격 일변도로 나갈 것이라 예상했고, 예상대로 전반전부터 공격하며 가나 수비진과 미드필드진을 괴롭혔다.

하지만, 김진수를 중심으로 한 크로스 일변도의 공격에서 전술의 다양성이 조금은 부족했고, 마지막 슛에서 결정력이 떨어졌다. 또한, 공격과 수비에서 줄기차게 헌신했던 이재성(마인츠)와 나상호 대신, 권창훈과 작은 정우영을 기용했지만, 이재성이 담당했던 부분에서 구멍이 났고, 이는 가나의 20대 공격수 모하메드 쿠두스와 모하메드 살리수에겐 좋은 공략 지점이었다.

경기가 그래도 겉에선 우리에게 유리하게 흐른다고 생각될 즈음, 전반 24분에 가나는 프리킥 찬스를 얻었다. 안드레 아이유가 프리킥을 찼고, 중앙수비수 김민재가 그 공을 머리에 댔는데, 공은 문전에 떨어졌다. 모하메드 살리수는 정확하게 공을 네트로 밀어 넣었는데, 그 과정에 조던 아이유의 핸들링 반칙이 있었는지 비디오 판독(VAR)이 있었지만, 그대로 골로 인정됐다.

이 골로 인해 가나는 사기가 올라갔고, 10분 후 전반 34분에 조던 아이유의 크로스를 모하메드 쿠두스가 헤딩슛으로 연결시켜 2-0으로 달아났다. 가나에 흐름을 내준 대표팀이 이대로 지는 게 아닌가 했지만, 후반이 시작되면서 작은 정우영 대신 나상호를 기용하고, 후반 11분엔 권창훈 대신 이강인을 투입하면서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가나전 시작 전 양국 선수들 모습(위 왼쪽), 모하메드 살리수의 골 이후 희미하게 보이는 0-1 스코어와 가나전 관중 모습(위 오른쪽), 후반전 우리 팀이 세트피스를 얻은 상황(아래 왼쪽), 경기 내내 덥지는 않고 시원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좌석 밑에 설치된 냉방장치(아래 오른쪽) ⓒ이원무
가나전 시작 전 양국 선수들 모습(위 왼쪽), 모하메드 살리수의 골 이후 희미하게 보이는 0-1 스코어와 가나전 관중 모습(위 오른쪽), 후반전 우리 팀이 세트피스를 얻은 상황(아래 왼쪽), 경기 내내 덥지는 않고 시원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좌석 밑에 설치된 냉방장치(아래 오른쪽). ⓒ이원무

이강인은 마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듯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렸고, 조규성은 이것을 헤딩으로 연결해 가나 골망을 흔들었다. 대표팀 분위기는 살아났고, 3분 뒤엔 윙백인 김진수의 크로스를 다시 조규성이 헤딩으로 연결해 골망을 흔들었다. 2-2. 이대로만 하면 이길 것만 같았다.

하지만 후반 23분, 우리 수비 오른쪽에서 낮게 깔린 공을 김민재가 막으려다 놓쳤고, 이게 모하메드 쿠두스에게 연결됐다. 쿠두스는 땅볼 슛을 때렸고, 이게 골키퍼 김승규를 지나 골망을 갈랐다. 꼭 이겨야 하는 경기라 후반 33분, 수비형 미드필더 정우영을 빼고 공격수 황의조로 교체하는 등 대표팀은 모험을 단행했지만, 끝내 골에는 실패하고 3-2로 아쉽게 졌다.

더군다나 경기 종료 직전 우리 선수의 슛이 가나 선수를 맞았던 터라, 코너킥을 대표팀이 얻는 듯했지만, 주심은 경기 종료 휘슬을 불었다. 대표팀 벤투 감독은 항의했지만 주심은 오히려 감독에게 퇴장을 명령했다. 주심의 이해할 수 없는 경기운영과 가나의 첫 번째 골을 핸들링으로 인정했다면 지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겹치며 내 마음속에 아쉬움은 짙게 남았다. 가나 팬들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긴 했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만은 않았다.

이제는 포르투갈전을 무조건 이겨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두바이로 돌아온 후 4일이 지난 12월 2일 포르투갈전을 보려고 셔틀 비행기 편으로, 다시 도하로 향했다. 그런데 도하 도착 후 내 스마트폰 연결이 원활하지 않아, 문제 해결을 위해 월드컵 자원봉사자들에게 수소문한 끝에 도하 컨벤션센터 근처의 Ooredoo(카타르 통신사임)매장으로 가 직원에게 상담받았다.

상담 결과 직원은 내가 끼운 Ooredoo 유심칩 데이터 용량 부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돈을 지불한 후, 용량 부족 문제는 해결돼, 스마트폰 인터넷 연결은 다시 원활해졌다. 그런데 배터리 부족으로, 근처 스타벅스에서 충전 후, 경기가 열리는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12월 2일 포르투갈 전을 보기 위해 도하에 도착한 후 도하 국제공항 입국장을 나온 모습 ⓒ이원무
12월 2일 포르투갈 전을 보기 위해 도하에 도착한 후 도하 국제공항 입국장을 나온 모습.  ⓒ이원무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포르투갈에 먼저 한 골을 내준 상황이었다. 포르투갈은 우리의 좌우 뒷공간을 꾸준히 공략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20여 분이 지난 후 전반 27분, 이강인의 코너킥이 호날두 등에 맞았고 볼을 받은 김영권이 왼발로 슛을 연결해 골망을 갈랐다. 1-1.

이후 호날두가 슛을 때렸지만, 우리 팀 김승규 골키퍼가 선방했고, 손흥민이 전반 40분 날린 슛이 골키퍼 정면에 안기는 등 양팀은 공방을 계속하다 1-1로 전반을 끝냈다. 후반이 시작된 후 10분경이 됐을까? 조규성의 패스를 손흥민이 패널티 지역에서 슛으로 연결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 계속 1-1상황은 유지됐고, 우루과이는 가나를 2-0으로 이기고 있었다,

우리에겐 한 골이 필요한 상황에서 후반 20분, 미드필드의 살림꾼 이재성을 빼고 앞선 두 경기에서 근육 통증 때문에 결장했던 황희찬이 그라운드를 밟았다. 저러다 좌우 측면 뒷공간은 뚫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지만, 그래도 세르지오 감독의 결정이니 믿고 따를 수밖에. 포르투갈도 1위 확정이 될 것 같자, 호날두, 네베스를 빼고 안드레 실바 등을 내보냈다.

경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우리가 16강 진출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하고 반신반의한 순간, 손흥민이 하프라인부터 장거리 드리블을 했다, 하지만 그를 포르투갈 선수들 여러 명이 에워쌌다. 그럼에도 경기 경험이 많은 손흥민은 이들의 가랑이 사이로 뒤에서부터 부지런히 달려가던 황희찬에게 볼을 연결했고, 그는 슛을 연결해 포르투갈 골망을 갈랐다. 2-1.

포르투갈전 전반전 장면 중 일부(왼쪽), 전광판에 우리가 2대 1로 포르투갈을 이겼다는 표시(오른쪽) ⓒ이원무
포르투갈전 전반전 장면 중 일부(왼쪽), 전광판에 우리가 2대 1로 포르투갈을 이겼다는 표시(오른쪽). ⓒ이원무

알자누브 경기장에서 16강 진출을 생각하면서 축제 분위기였던 우루과이 선수들과 응원단은 이 순간부터 분위기가 얼음장으로 변해버렸다. 반면 우리는 16강 진출이 8부 능선까지 간 상황이라, 나를 포함한 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더 이상 골은 나오지 않았고, 우리 팀이 2002년 이후 20년 만에 다시 만난 포르투갈을 2-1로 이겼다.

하지만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우루과이가 골을 넣을 뻔한 장면도 있었지만 가나 골키퍼 선방으로 무위로 끝났다. 추가시간이 지났는데도, 우루과이의 프리킥 찬스가 있었지만, 가나 골키퍼는 다시 선방했다. 이후 경기는 2-0 우루과이 승리로 끝났다. 골득실차 0으로 우리와 같았지만, 다득점에서 앞선 우리나라가 우루과이를 밀어내고, 2위를 차지했다.

이 순간 우리의 2번째 원정 16강 진출이 확정됐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이 열린 더반에서 16강 진출한 후 12년 만에 원정에서 다시 16강의 역사를 이뤘다. 또한, 알 라얀의 기적이자 제2의 <도하의 기적>이었다. 여기서 <도하의 기적>이란 29년 전 아메리카 월드컵 본선진출이 극적으로 확정됐던 순간을 말하는 거다.

29년 전 아메리카 월드컵 최종예선 당시, 우리는 일본의 미우라 가즈요시에게 결승골을 얻어맞아 충격패를 당했고, 일본에게 승점이 1점 뒤진 상태에서 마지막 경기가 북한전이었다. 무조건 이겨야 하는 상황이었고 일본은 이라크와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일본이 이라크보단 전력이 조금 위였고, 일본이 이기면 아무리 우리가 이겨도 아메리카 입성은 물거품일 상황이었다.

북한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우리는 3-0으로 이겼지만, 일본도 이라크를 2-1로 이기는 상황이라, 아메리카 월드컵 본선 진출은 사실상 물 건너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순간, 추가시간 때 이라크의 자파르 선수가 동점골을 넣어, 2-2 동점이 되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승점이 같았지만, 골득실차에서 우리가 +5, 일본이 +3으로 우리가 앞섰기에 우리 팀이 2위를 차지했다.

실낱같은 희망 속에 있던 우리 대표팀은 이라크의 동점골 소식이 들리자 일순간 환호했고, 극적으로 아메리카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나는 그 당시 20대 청춘이었고, 너무도 피곤해 경기를 보지 못하고 잠잤지만, 이 소식을 작은 누나로부터 들은 이후, 다시 선수들과 감독이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몰래 조용히 눈가에 눈물이 주룩주룩 나왔었다. 사람들은 이 순간을 <도하의 기적>이라고 하고 이는 29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회자되고 있다.

29년 전 이라크의 자파르 선수가 동점골을 넣었다는 소식이 우리 선수들에게 들리자 당시 고정운 선수가 선수단 스태프에 안기며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왼쪽), 포르투갈전 후 우루과이와 가나와의 경기가 끝나고 16강 진출이 확정되자 기뻐하는 선수들과 이를 축하하는 팬들 모습, 잔디에는 태극기를 깐 모습도 보인다. ⓒKBS스포츠 Youtube 캡처, 이원무
29년 전 이라크의 자파르 선수가 동점골을 넣었다는 소식이 우리 선수들에게 들리자 당시 고정운 선수가 선수단 스태프에 안기며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왼쪽), 포르투갈전 후 우루과이와 가나와의 경기가 끝나고 16강 진출이 확정되자 기뻐하는 선수들과 이를 축하하는 팬들 모습, 잔디에는 태극기를 깐 모습도 보인다. ⓒKBS스포츠 Youtube 캡처, 이원무

우리의 16강 진출 가능성은 포르투갈전 종료 전까지 실낱같았지만, 선수들의 간절히 이기고자 하는 마음에, 우리만의 축구를 우직하게 밀고 나간 끝에 황희찬의 역전 골이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29년 전 <도하의 기적>이 이라크가 도운 기적이라면, 이번 알 라얀의 기적은 우리의 간절함에 가나가 우루과이를 못 나가게 하는 도움까지 함께 한 기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2년 전 남아공월드컵에서 가나는 8강전에서 우루과이와 맞섰다. 1-1로 서로 팽팽한 상황에서 가나 선수가 날린 슛을 우루과이의 루이스 수아레스가 패널티 지역에서 손으로 막았다. 막지 않았으면 그대로 골이었고 가나는 4강으로 진출할 상황이었던 거다. 주심은 패널티를 선언했고, 가나 선수가 패널티킥을 찼지만, 우루과이 골키퍼의 손에 막혔다.

이후 경기는 승부차기로 접어들었고, 우루과이는 여기서 가나를 이겨 4강에 진출했다, 수아레스가 손으로만 막지 않았더라면 가나는 4강을 확정했을 텐데 말이다. 12년 전 일이 가나 선수들에게 기억이 나서였을까? 게다가 우리가 역전 골을 넣은 소식을 전해 들어서였을까? 우리가 진출하지 못할 바엔 우루과이의 16강 진출을 막자는 결심이 작용한 듯 가나는 상대방 공격을 필사적으로 막아 2-0 우루과이 승리로 끝내게 한 다음 자신들의 결심을 이뤘다.

한편 2014년부터 월드컵에 출전하며 번번이 16강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던 손흥민은 경기 끝나고 16강 진출이 확정되자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이후 환히 웃었다. 그의 모습에 나의 마음도 상당히 짠했다. 이후 16강 전을 보러 가기 전 스타디움 974 근처에서 도하의 기적과 알 라얀의 기적이 마음속에 겹치면서 나도 모르게 조용히 울게 되었다.

알 라얀의 기적 전까지, 세계 축구계는 우리의 16강 진출 가능성을 낮게 봤다. 우루과이와 포르투갈의 16강 진출을 가장 높게 점치며, 대한민국은 승점 자판기 정도로 인식했다. 우루과이엔 손흥민의 동료 로드리고 벤탄쿠르와 레알 마드리드의 페데리코 발베르데 등 미드필드가 탄탄해 우리를 이길 거라 나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고 능동적 축구를 구사한 끝에 무승부를 기록한 걸 보며, 사실 나는 안도하는 마음에 16강 갈 수 있겠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 예상대로 가나전에 뒷공간이 약한 바람에 패배해 어려움을 겪었고, 황희찬 골 전까지 16강 진출의 희망이 실낱같았지만, 선수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자신들을 믿었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마지막에 달콤한 열매를 맺었다. 경기 후 선수들은 ‘중요한 것은 끝까지 꺾이지 않는 마음(중꺾마)’를 태극기에 적으며, 팬들과 함께 기쁨을 나눴다. 경기 후에도 나를 포함한 팬들의 기쁨은 계속됐다.

손흥민 현수막을 내걸며 팬들이 기뻐하는 모습(위 왼쪽), 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 근처에 있는 월드컵 트로피 조형물에서 대한민국 국기를 휘날리며 팬들이 대한민국을 외치는 모습(위 오른쪽),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 근처 공연장(아래 왼쪽), 도하 국제공항 근처의 메트로역인 수콰키프역 계단에서 팬들 중 일부가 기쁨을 표현하는 순간(아래 오른쪽) ⓒ이원무
손흥민 현수막을 내걸며 팬들이 기뻐하는 모습(위 왼쪽), 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 근처에 있는 월드컵 트로피 조형물에서 대한민국 국기를 휘날리며 팬들이 대한민국을 외치는 모습(위 오른쪽),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 근처 공연장(아래 왼쪽), 도하 국제공항 근처의 메트로역인 수콰키프역 계단에서 팬들 중 일부가 기쁨을 표현하는 순간(아래 오른쪽). ⓒ이원무

원정 16강의 꿈을 다시 이루기까지 12년 동안 선수들은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다. 2014년과 2018년엔 다시 원정 16강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선수들은 선진축구를 구사하는 유럽 시장에 문을 계속 두드리며 진출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해왔다. 능동적 축구를 구사하며 선수를 보호할 줄 아는 감독과 선수들 간의 오랜 시간 동안의 관계 형성 노력도 있었던 등 수많은 노력 끝에 올해 결국 이뤄낸 것을 생각하니, 역사는 한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명제가 다시 떠올랐다.

얼마 전, UN 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 소식을 들었다, 2006년 국제 인권조약인 장애인권리협약 제정 이후 2년 만에 협약을 비준했지만, 협약 25조 생명보험 차별 금지 조항 유보 때문에, 협약의 실질적인 이행에 도움이 되는 선택의정서 비준도 유보되었다. 우리나라에 장차법이 있긴 하지만 ‘과도한 부담’이라는 문구 등으로 인해 국내 장애인차별 대부분이 미해결된 채로 남아 있었다.

이에 장애인계에서는 국내의 모든 법적, 행정적 절차를 거치고도 미해결된 차별문제를 유엔에 진정하기 위한 개인진정제도와 진정 없어도 시설 인권유린 등 중대한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장애인권리위원회가 당사국에 가서 문제를 조사할 직권조사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진 선택의정서를 정부가 비준할 것을 간절히 요구했었다.

그럼에도, 선택의정서를 비준하면 장애인들의 진정이 많아질 것을 두려워해서인지 정부는 선택의정서 비준을 계속 미뤄왔다. 하지만 장애계의 간절한 바람은 계속 이어졌고, 2년 전 국회의 장애인 비례대표로 뽑힌 김예지 의원이 선택의정서 비준을 강력하게 촉구한 관계로 국회의원들 간에 이 이슈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갔기에, 장애계는 힘을 받았다.

결국, 2021년 말에 협약 25조 마호 유보조항을 철회해 선택의정서 비준은 목전에 와 있었지만, 국회에선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에 집중한 나머지 이 이슈에 대한 논의는 한없이 미뤄지는 듯했다. 선택의정서 비준이 계속 미뤄지니 장애인 권리증진은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에 장애계는 간절함을 갖고 장애인 인권증진을 위해 이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올렸다.

'국민의 힘' 김예지 의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선택의정서 비준 이슈가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전한 모습 ⓒ김예지 의원 페이스북 캡처
'국민의 힘' 김예지 의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선택의정서 비준 이슈가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전한 모습 ⓒ김예지 의원 페이스북 캡처

이렇게 간절함을 갖고 계속 요구한 결과, 마침내 올해 12월 8일 선택의정서 비준 동의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선택의정서 비준이 현실이 되는데 장애인권리협약 비준 시점으로부터 14년이 흘렀다. 김예지 의원의 노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선택의정서 비준의 당위성을 알리는 수많은 토론회와 기자회견, 그리고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는 물밑작업 등 장애계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장애계에 올해 역사로 남게 될 선택의정서 비준도 역시 한순간에 이뤄지지는 않았다는 게 다시금 느껴졌다.

선택의정서 비준이라는 역사를 통해 장애인 인권증진의 실마리 하나가 풀렸을 뿐이다. 패소자 부담원칙 개선에 대해 법조계가 약간 회의적이고, 인권위나 장애계 단체들의 독립성이 많이 줄어드는 등, 선택의정서의 활발한 활용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이 한순간에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는 한순간에 이뤄지지 않는 법이니까.

하지만, 장애인 당사자와 시민사회, 장애인계 등이 이런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나름의 합리적인 대안을 세우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며, 정부와 사법부 등을 효과적으로 압박한다면, 이를 통해 장애인이 누리고자 하는 인간다운 세상은 현실에 더욱 가깝게 될 거라 믿는다.

탈시설, 탈원화 문제는 어떤가? 지역사회의 지원 서비스와 인식개선이 충분치 못하다며, 시설을 유지하려는 세력들의 입김이 거세다. 하지만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과 시설수용 생존자, 시설 거주인 등이 서로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고 연대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조금이라도 꾸준히 한다면 어떨까?

한순간에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그런 노력들이 모인다면, 그리고 탈시설 정책 논의에 대해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과 시설수용 생존자, 시설 거주인의 참여 통로를 만들고,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기반한 서비스 체계 수립 등 여러 노력이 함께 한다면 진정한 탈시설이라는 역사는 분명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 본다. 진정한 탈시설이라는 역사도 한순간엔 이뤄지지 않고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기반한 제도 구축, 정부를 설득하는 등 수많은 노력이 동반돼야 함을 다시금 생각한다.

작년 7월 1일 당시 한국장애인연맹,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등 장애계 단체들이 선택의정서 비준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이원무
작년 7월 1일 당시 한국장애인연맹,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등 장애계 단체들이 선택의정서 비준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이원무

지하철 역사에 세워진 수많은 엘리베이터도 처음부터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이도역 사건 이후로 이동권과 안전에 문제를 제기한 장애인들의 피맺힌 절규와 수많은 요구 등의 노력 속에 이뤄진 것이다.

아직도 지하철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단차 문제 등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 해결은 멀기만 하지만, 구체적인 대안 제시 등의 노력을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계 등이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꾸준히 한다면, 이동권의 보장을 통한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이라는 역사 또한 현실이 될 것이다. 이것도 한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닌 수많은 노력이 이뤄져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10여 년 동안의 소식을 통해 경험하며 느낀 바다.

그래서 새삼스럽긴 하나, 결론과도 같은 이 명제를 다시금 기억하련다.

‘역사는 한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그나저나 4년 전, 카잔의 기적을 느끼며 기뻤는데, 올해엔 2번째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역사를 알 라얀 현장에서 목격하며 가슴 뭉클한 순간을 선수들, 팬들과 함께 나누게 돼 정말 행복했다. 앞으로는 12년에 한 번이 아닌 4년마다 오는 월드컵에 계속, 아니 16강을 넘어 8강, 4강뿐만 아니라, 심지어 결승까지도 진출하는 대표팀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한민국 축구팀의 한 팬으로 2번째 원정 16강 진출의 기쁨을 현장에서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4년 전 카잔에서 당시 세계 1위 독일을 2-0으로 이긴 후 한 컷(왼쪽), 2번째 원정 16강 진출 확정 후 외국의 어느 팬과 한 컷(오른쪽) ⓒ이원무
4년 전 카잔에서 당시 세계 1위 독일을 2-0으로 이긴 후 한 컷(왼쪽), 2번째 원정 16강 진출 확정 후 외국의 어느 팬과 한 컷(오른쪽). ⓒ이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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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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