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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핌’, ‘도움’, ‘지원’의 복합성 문제
누구나 자원봉사 정신만 있으면 가능? “체계적 훈련 필요”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0-03-27 14:12:38
김형식 전 유엔장애인권리위원.ⓒ에이블뉴스DB
▲김형식 전 유엔장애인권리위원.ⓒ에이블뉴스DB
‘보살핌’, ‘도움’, ‘지원’, 복지 분야의 업무상 아주 친숙한 용어들이면서도 그 상호 복합성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가 안 된다. 구태여 영어를 빌리자면, care, assistance, support 에 해당할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우면서도 평소에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 용어들이다. 우선 떠오르는 문제는 ‘보살핌’, ‘도움, 지원’은 어느 누구나 자원봉사의 정신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다. 특별한 혹은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분명 오류다.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도움을 주고받는 행위는 생물체로서 필수적이며, 유아기에서 청년기로 성장하는 기간 동안의 보살핌, 혹은 의존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대부분의 인류사회에서 인생의 종말에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는 의존성에 대해 ‘보살핌’, ‘도움’, ‘지원’의 필요성으로 복합적인 사회 문화 양상과 의무를 만들어 놓았다. 도움을 주고받아야 할 관계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구태여 철학자 Abram Swaan 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결국 인간은 필연적으로 상호의존적으로 생존하게 되어있다. 반면에, 전통적인 가치의 약화 혹은 서양 문명의 영향으로 개인주의 성향이 득세하면서 전통적인 ‘보살핌’, ‘도움,’지원‘도 약해 졌거나 공공복지 서비스의 영역으로 옮겨진다.

그런데 문제는 지배적인 장애 운동권에서는 ‘보살핌’, ‘도움,’지원‘의 불가피성을 간과 하며 장애인을 해방시키는 독립생활을 지향하며 과거의 도움, 지원, 보살핌을 사회적 억압으로 치부해 버리기도 한다. 때로는 전통적인 도움, 지원, 보살핌의 실무가 억압적이고 역량을 약화시키는 요소가 있었음을 인정한다.

아울러, 도움, 지원, 보살핌의 실무가 보다 더 독립적이고 선택의 폭을 넓히어 가부장적이고, 침해 적이고 유기적인 요소를 줄여야한다는 운동권의 주장에도 동조함과 동시에, 시간의 제약을 둘 수 없는 인간 생존의 의존적 요소의 불가피함도 인정한다. 요컨대, 도움과 지원의 관계는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 모두에게 복잡한 관계인데, 이런 문제가 장애 학에서 심층적으로 연구되지 못한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독립생활운동은 성인의 지체장애인들을 중심으로 생활과 취업, 여가에 있어서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하여 발전한 것이다. 그들이 필요했던 도움이나 지원은 자기 돌봄, 가정생활 혹은 이동성에 관한 것 이었다.

반면에, 아동, 일시적/영구적 손상, 고질/퇴행성 질병, 말기환자, 각기 다른 수준의 학습장애, 정신사회 장애, 노약자와 치매, 그 외에 복합적 손상/장애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 등은 의료적 개입, 조언, 옹호, 상담, 정서적 지원 등이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에 의하여 각기 다른 형태와 종류의 보살핌과 지원이 동원된다. 생각해 보면 복잡한 과제이며 문제이다.

아래 부분에서는 위의 복합적인 문제들을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생각하고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전통적 보살핌의 문제: 전통적으로 가족이 가족성원의 보살핌을 책임졌었으나, 산업사회의 발전으로 가정, 지역사회의 보호, 보살핌의 역할은 약화되고, 지체손상, 정신지체, 학습장애가 있던 사람들은 시설이 돌보게 되었다. 그러나 1960, 1970년대에 와서 울펀스 버거의 정상화 이론과 장애운동의 대두로 종래의 시설화가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시설의 문제에 대해서는 반복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도전이 1980년대에 커뮤니티 캐어의 개념으로 발전하였다. 한국에는 최근에 문제로 대두 되지만,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캐어를 받는 노령 층의 문제점도 크게 부각되었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함의가 분명히 있다.

2) 독립생활의 한계점:우리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유럽권의 장애운동가들은 장애인과 노인들의 캐어 에서 대두되는 문제를 마치 식민지주의 관계라고 정의한다. 식민지주의라고 함은 도움을 받는 이들의 음성은 무시되고, 그들의 전반적인 상황을 사회문제로 규정짓는다. 즉, 서비스 공급 측의 관계가 식민지 통치처럼 지배적이며 구속적이고, 부족함 점만 부각시키고, 마치 도움을 받는 이들을 부담으로 간주하고 어린아이 취급을 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1970년부터는 이 식민지주의 정신 상태에 도전하고 장애인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도록 주장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권리 운동의 시대가 오지 않았으나. 민권운동과 독립생활이 장애운동의 두 가지 핵심요소가 되었고 캐어로부터 벗어나 역량강화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존엄성, 평등한 처우, 신뢰가 서비스 이용자들이 받아야하는 서비스의 핵심가치가 되었으며, 직원들과의 관계도 선택, 콘트롤이 핵심이며 의존성과 수동적인 것은 배제되었다. 한 가지 예로, 이런 움직임을 계기로 활동 보조인을 직접 채용하고 비용도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콘트롤하는 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이 직접 채용과 지불 방법이 그 훨씬 만족스럽고, 효율, 효과성이 높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잘 나타났다. 길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전통적인 지불 방법을 관리하던 부처/단체로부터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영국에서는 ‘직불제도 법 Direct Payment Act’이 제정되어야 했다. 직불제도가 장애인의 독립생활을 실천에 옮기는 방법 중의 하나라는 주장도 들어 보아야 한다.

그러나 장애인 가운데에는 타인을 채용하기 보다는 가족을 선호하는 경우, 적절한 활동 보조인을 구하기 어려운 지리적, 사회적으로 소외된 장애인도 있다. 향후, 전반적인 장애인들의 선택이나 기호가 어떻게 정착 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그리고 활동보조인에 관한 여러 문제도 동시에 생각해 보아야 한다.

3) 여성 인력에 대한 의존의 문제. 오래전 서울에서 ‘활동보조인 교육’에 강의를 요청받은 적이 있었는데, 좀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현재는 얼마나 변했는지 몰라도 온통 여성뿐이며 남성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모르긴 해도 당시의 급여/임금은 아주 저조하였을 것이며, 나중에 이용자자와 활동보조인 사이에 발생하는 남, 오용 등 여러 문제나 갈등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대부분의 ‘캐어’서비스에서 딸, 아내, 며느리 등 여성의 노력이 대거 동원되고 거의 노예화되었다는 여성운동권의 주장도 상당한 논쟁과 아울러 연구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거의 대부분의 문헌에서는 여성의 케어링 역할을 이상형으로 간주하는 반면, 보호를 받는 당사자들의 경험은 오가는 대화에서, 보호의 과정에서 무시당하거나 무력화되었거나 여성 특유의 따듯함과 케어를 자선적/시혜적 케어로 오해함으로 빗어진 부정적인 경험도 있을 것이다. 케어 그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대신에 자선적/시혜적’ 태도에 대한 거부일수도 있다.

그런가하면, 이미 1970년대에 울펀스버거가 가치저하(devaluation)이론에서 갈파한대로, 이미 편견과 차별 혐오의 대상이 되어있는 장애인, 노약자 등 취약계층의 케어를 전담하게 된 여성 직업인들은 이미 저임금 구조와 취약계층과 동일시되어 그야말로 ‘도매 끔’으로 가치저하를 당하고 있을 개연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심각한 문제이며, 장애운동권은 이런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여야 할 것이다.

마치면서, 추호도 장애인 복지 분야의 ‘보살핌’, ‘도움’, ‘지원’을 탈 시설, 독립생활을 저해하는 요소로 주장하는 것도 아니며, 이 분야에 집중되는 여성 인력의 가치를 저하시키려는 의도는 더더욱 아니다. 단, ‘보살핌’, ‘도움’, ‘지원’에 따른 문제의 복합성을 설명해 보자고 했다. ‘보살핌’, ‘도움’, ‘지원’에 따른 정책이나 서비스를 일률적으로 재단하거나 시행하기 보다는 최대한의 융통성과 다양한 접근이 필요한듯하다.

서비스가 지속적인 혹은 간헐적 서비스의 혼합도 가능하다. 모든 서비스 선택과 옵션이 반드시 동시에 필요한 것도 이용 가능한 것도 아닐 것이다. 필요한 것은 모든 장애인의 다양한 서비스는 그들의 독특한 욕구, 열망, 그리고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형태의 서비스가 어떻게 전달되든, 서비스는 신뢰 할 수 있고, 행여나 인권/권리 침해의 요소가 없어야하며 이용자의 취약성 혹은 의존성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따듯함과, 캐어, 존엄성이 모든 서비스 관계를 특징이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자율성, 독립성이 전통적인 ‘보살핌’, ‘도움’, ‘지원’ 서비스의 표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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