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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파

지체장애 강병철 씨 삶 - ③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09-30 16:16:09
박 씨를 다시 만나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했다. 그는 돈도 없고 이렇다 할 직업도 없고 거기다 장애까지 있음에도 박 씨는 그의 성실함을 높이 사 주었다. 그 무렵 박 씨는 다대포 독신자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아내를 만난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했습니다.”


부부와 큰아들.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부부와 큰아들. ⓒ이복남
박 씨를 만나면서 결혼을 생각했다. 처가에는 장인 장모를 비롯하여 처형 처남 처제까지 있었는데 그가 장애인인 것을 알고 아무도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처가에서는 박 씨에게 그와 만나지 말라고 했으나 박 씨가 말을 듣지 않자 박 씨까지 가족으로도 취급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처가에서 승낙을 받으려면 결혼을 못 할 것 같았다.

“승낙은 나중에 받자, 우리가 열심히 살다보면 장인장모님도 좋아지지 않겠느냐?”

처가 쪽 사람들의 그에 대한 감정은 쉽사리 풀릴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처가에서는 나중에 승낙을 받자고 박 씨를 달래었다. 그도 아내만 있으면 된다 싶었다. 박 씨도 그러겠다고 했다.
그의 부모님은 박 씨를 좋다했지만, 그는 박 씨가 그녀의 가족들하고도 척을 지면서 그를 선택해준 것이 고마웠다.

“다시 만난 지 1년 만에 결혼식을 했는데 결국 처가 식구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는데, 목사님 내외분이 장인 장모 석에 앉았다. 그날 신부는 많이 울었다. 신부를 부둥켜 않고 그도 울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도 결혼을 했으니 돈을 벌고 싶었다. 그때 한 친구가 돈을 벌려면 주식을 해 보라고 했다. 그가 가진 주식에 투자했다. 아내도 제법 모은 돈이 있었는데 아내 돈까지 주식에 투자했다.

“주식 그거 정말 아무나 하는 것 아닙디다.”

주식이 폭락했다. 그동안 나전칠기를 하면서 제법 돈을 모았는데 아내 돈까지 홀라당 다 까먹고 빚만 졌다. 결혼 후 1년 쯤 되었는데 주식이 망하자 실의에 빠졌다.

“제가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아내가 붕어빵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아내가 붕어빵 장사를 시작한 것은 그야말로 감동되었다. 아내는 붕어빵 장사라도 해서 실의에 빠진 그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던 것이다.

“아내가 저렇게 살고자 하는데 나는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서 그렇게 시작한 붕어빵 장사가 20여 년 동안이나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린 버팀목이었습니다.

아내와 변산반도 여행.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아내와 변산반도 여행. ⓒ이복남
처음에는 아내와 같이 리어카에서 길거리에서 붕어빵 장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푸드 트럭을 하나 사서 붕어빵뿐만 아니라 계란빵 도넛 와플파이 등 여러 가지 장사를 했다. 처음에는 아내와 같이 했는데 나중에는 혼자서 했다.

“그동안 집사람하고는 사이가 좋았는데 같이 장사를 하다보니까 의견일치가 안 되어 자꾸 다툴 일이 생겨 집사람한테 혼자 할 테니 나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큰아들 그리고 작은 아들이 태어나서 아내는 아이들도 돌보아야 하므로 장사는 혼자서 했다.

“푸드 트럭에서 핫도그 장사를 하는데……. 어떤 사람이 불법 유턴을 하는 바람에 기름이 다 튀어서 전신화상을 입고 몇 달간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습니다.”

사고는 누구나 당할 수 있겠지만 불법유턴에 의한 교통사고라니,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고 길거리 장사의 애환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수급자로 살아서 아내가 공식적인 일은 못하고 부업도 하고 아르바이트로 했습니다.”

그러는 세월이 7년이었다.

“어느 날 큰동서가 찾아 와서 이러면 안 된다며 다리를 놓았습니다.”

큰동서가 언제까지 남남으로 지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이제는 부모님의 화도 많이 풀리셨고, 자식 낳고 사는데 어쩌겠느냐며 장인장모님을 찾아가라고 했다.

“집사람하고 아들 둘을 데리고 7년 만에 처음으로 처가에 가서 장인장모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장인 장모에게 인사를 드리고 나니, 그동안의 서먹함은 별 것도 아니었다. 장인 장모가 약간 계면쩍어 하시는 것 같았으나 이내 7년간의 앙금은 스르르 녹아 버렸다.

“지금은 처가하고 잘 지내는데, 처가도 다대포에 있어서 자주 갑니다.”

전동스쿠터 수리 배달.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전동스쿠터 수리 배달. ⓒ이복남
그가 수급자로 사는 동안에는 그도 다대포 임대아파트에 살았다. 지금도 여전히 다대포에 살고 있지만, 이제는 아이들도 다 자라고 그도 직장이 있어서 수급자에서는 벗어났다.

“아이들이 방과 후에는 우리 가게(푸드 트럭)에 와서 내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친구들을 데려와서 우리 아빠라고 자랑을 하기도 했습니다.”

큰아들은 물론이고 작은 아들도 장애인 아버지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런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성실하게 일했다.

큰 아들은 대학교 1학년이고 작은 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인데 큰아들은 아덴만에 있단다.

아덴만이라니, 아들이 왜 아덴만에 가 있을까.

아덴만은 아라비아반도의 예멘과 동아프리카의 소말리아 사이에 위치한 만으로, 아라비아 해와 홍해를 잇는 해역이다. 소말리아에서는 1991년 시작된 내전으로 극심한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면서 해적이 등장했다. 소말리아 해적은 국제사회의 물류 운송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떠올라 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가 2008년 10월에 해적 퇴치를 위한 국제협력을 결의했다.

우리나라도 국제연합의 결의에 따라 2009년 3월 청해부대를 소말리아 해역으로 파견했다. 2011년 1월 우리나라 해군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인근의 아덴만 해상에서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주얼리호를 구출한 작전을 펼쳤다. 이 여명작전에서 석해균 선장이 총상을 입었으나 아주대학교 이국종 교수가 살려낸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게 아덴만이 유명해지자 큰아들이 친구 하나와 동반입대를 하면서 아덴만을 자원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덴만이 위험하다고 말렸는데 아들이 기어이 아덴만에 가고 싶다고 해군에 지원했다는 것이다.

“아덴만에는 군인 월급 외에 수당이 나온답니다.”

휠체어를 수리하는 강병철씨.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휠체어를 수리하는 강병철씨. ⓒ이복남
아이들이 커가기도 했지만, 구청에서 단속이 심해서 더 이상 길거리 장사를 하기가 어려웠다. 그 무렵 마침 한 지인이 맞춤 휠체어 회사에 그를 소개했다.

휠체어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어떻게 취업을 했을까.

“예전에 양지에서 나전칠기를 할 때부터 손재주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휠체어를 사용하므로 휠체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회사에 나가고 얼마 안 있어 휠체어 수리는 물론이고 어떤 사람에게 어떤 휠체어가 맞겠다는 맞춤 휠체어에 자신이 생겼다.

“일을 해 보니까 장애인들이 정보에 너무 어둡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자신과 같은 소아마비 장애인은 거의 없어졌으므로 대부분이 사고나 교통사고 등의 후천적인 장애인이다. 그들이 휠체어를 맞추러 오는데 대부분이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얼마 전에도 사고로 장애를 입은 ** 씨를 설득해서 밖으로 나오게 하고 론볼링을 하게 했습니다.”

장애인은 안 된다 또는 장애인은 못한다는 편견을 깨고, 장애인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살 수 있도록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다고 했다. 아무리 중증장애인이라도 할 수 있다는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살다보면 또 어떤 일로 직업이 바꿀 수도 있겠지만, 현재는 제 직업에 만족하면서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장애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을 위한 각종 상담 등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은 장애인에게 힘이 되고자 하는 사명감으로 일한다고 했다. 아무쪼록 그가 바라는 일이 잘 되기를 빈다. <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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