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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되고 싶었던 가난한 소년

장루장애 4급 장병근 씨의 삶-①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6-03-11 13:52:32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구비구비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이 시는 서정주 시인의 귀촉도(歸蜀途)이다. 귀촉도란 불여귀 두견새 소쩍새 등의 다른 이름이다. 한 번 가면 다시 오기 어려운 먼 길 서역 삼만 리 그리고 파촉 삼만 리, 그 거리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 쯤 일까. 사랑하는 님은 가고 나만 홀로 남아 통한의 피눈물을 흘린다.

장병근 씨.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장병근 씨. ⓒ이복남
님아, 제발 나도 데려가 주오. 그는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고 아내를 보내고 자신에게는 장루만 남았다.

장병근(1946년생) 씨는 삼남매의 둘째인데 위로 형이 있고 아래가 여동생이다. 부모님은 일본 고베에 살았는데 해방이 되면서 더 이상 일본에서 살 수가 없어서 한국으로 돌아 왔다. 처음에는 외가가 있는 밀양에 살았다. 아버지는 고베에서 가구공장을 하시면서 돈을 벌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밀항선을 타고 제법 많은 일본 돈을 가져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는 더 이상 일본 돈은 통용이 되지 않았다. 국가에서 금지를 시켰던 것이다. 아버지는 일본 돈을 처분해야 했기에 밀항선을 타고 다시 일본으로 가서 일용품이나 약품 같은 것을 사왔는데 오다가 풍랑을 만나기도 했고 세관에 쫓기다가 물건을 바다에 버리기도 했다.

“몇 년이 지나면서 집안은 쫄딱 망해서 거렁뱅이가 되었습니다.”

빈털터리가 된 아버지는 어디로 사라져서 소식도 몰랐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찾아 부산에 와서 초량에서 세 아이를 키우며 분식점을 했다. 그의 꿈은 어릴 때부터 정치인이 되고 싶었다. 어쩌다 한 번 씩 매스컴을 타는 정치인들이 멋있게 보였던 것이다. 철이 들면서 정치가는커녕 끼니걱정을 해야 하는 집안 형편으로 꿈을 접어야 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식당을 했으므로 도시락은 챙겨 주셨다.

아내와 두 아들.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아내와 두 아들. ⓒ이복남
“굶주리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 점심을 우유죽 또는 강냉이 죽을 배급했는데, 내 벤또하고 바꿔 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는 어느 목재소에서 일을 하는 아버지를 찾아서 함께 식당을 운영했다. 그러다 도시계획으로 집은 철거가 되고 임시로 초량 고지대에 비어있는 분교로 이사를 했으나 어느 날 철거민촌인 분교에 불이 났다.

“분교는 물론이고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어 버렸습니다.”

집은 다시 빈털터리가 되어 아버지는 지게꾼 막노동을 하고 어머니는 야채 노점상으로 전락했다. 부모님은 함께 살다가 따로 떨어져서 살기도 했는데 그는 부모님을 따라 밀양 갔다가 수산 갔다가 다시 부산으로 오는 등 부산과 경남 일대를 떠돌아 다니다보니 졸업앨범도 제대로 없었다.

그러다가 부산의 무늬목 상사에서 일을 하다가 영장이 나왔다. 그는 경기도 포천(이동) 열쇠부대 정훈참모부에서 보도사원으로 근무했다.

엄마와 세 아이. ⓒ이복남 에이블포토로 보기 엄마와 세 아이. ⓒ이복남
“돈도 없고 빽도 없었는데 운이 좋았지요.”

겨울이 되고 첫 휴가를 나왔다. 당시 휴가는 1년에 25일이었다.

“휴가가 1주일 쯤 남았는데 북괴가 쳐들어 왔으니 전 장병은 귀대하라는 겁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군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한 이른바 김신조 사건이었다. 당시 서울은 어땠는지 잘 모르겠지만 부산은 평온했기에 일정에 맞춰 귀대를 했다.

“내심 걱정은 하면서 부대정문에 도착하니 부대고유번호가 바뀌어서 큰일 났구나 싶었습니다.”

위병초소근무병이 왜 이제 귀대하느냐고 타박을 했지만 사태는 이미 끝난 뒤였고, 기압은 좀 받았다. 제대를 하고 부산 초량 집으로 돌아왔다.

일본에서부터 가구공장을 하신 아버지의 천직은 목수였던 모양이다. 그가 제대했을 때 쯤 아버지는 다시 목수 일을 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월급으로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다.<2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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