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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간다는 것
금붕어 두 마리와 승혁이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4-03-31 14:28:58
작년에 금붕어 두 마리를 키운 적이 있었다.

처음엔 금붕어만 잠시 구경하면서 승혁이에게 금붕어라는 말도 가르쳐 줄 겸 보여주려고만 했었는데 막상 승혁이는 말배우기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금붕어를 직접 손으로 만져 보고 싶은 마음에 손으로 어항을 탕탕 치고 어항물을 여기저기 뿌리는 바람에 금붕어를 구경하던 아이들 무리에선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하는 수 없이 금붕어 앞을 못 떠나겠다고 땅바닥에 누워버린 승혁이를 데리고 빠져나오기 위해 어른 손바닥보다 조금 큰 플라스틱 어항에 까만 색이 섞인 금붕어와 붉은 색 금붕어 두 마리를 사서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금붕어 두 마리의 새엄마가 된 나는 그날부터 꼼짝없이 금붕어를 키우게 되었다.

어항은 금붕어 두 마리가 마음껏 헤엄치기엔 다소 비좁았고 처음엔 서로 경계하는 듯 잘 부딪히지 않았던 금붕어들은 차츰 시간이 지나자 가끔 몸을 부딪히고 때로는 맹렬히 움직이며 힘겨루기를 하는 듯 했다. 아무래도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니 더 짜증이 나나 싶어 물이라도 자주 갈아주어야 겠다는 생각에 금붕어를 키우는 동안 물만큼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갈아주었다. 금붕어를 살 때 함께 산 먹이도 "너무 많이 주지 말고 하루에 한 마리당 한 두 알만 주라"는 아저씨의 말대로 매일 넣어 주었다. 나의 지극한 보살핌(?) 덕분인지 금붕어는 일 년 동안이나 무사히 살아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두 녀석들의 세력다툼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어차피 좁다란 어항 안에서 사이좋게라도 지내면 좋을 것을 금붕어들은 그 공간 안에서도 제가 좋아하는 곳이 있는지 가만히 잘 쉬고 있는 까만 금붕어를 늘 공격적인 붉은 금붕어는 가만 두지 못했다. 먹이를 넣어줄 때에도 두 녀석들의 성격은 뚜렷하게 대비되었다. 평소 느릿느릿 움직이고 어항 한 귀퉁이에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하는 까만 금붕어는 먹이를 먹을 때도 한참 뒤에야 올라와서 먹이를 먹었다.

반면 까만 금붕어를 늘 못살게 구는 붉은 금붕어는 먹이를 먹을 때도 악착같은 성격이 드러났다. 주면 먹고 안주면 말고 식의 무사태평한 까만 금붕어와는 달리 내가 어항 뚜껑만 열어도 먹이를 주는 줄 알고 벌써부터 수면 위로 올라와 입을 뻐끔댔다. 그리고 각각 두 알씩 먹으라고 준 먹이도 어느 땐 혼자서 다 먹어치웠다. 가끔은 물소리가 날 정도로 텀벙거리며 까만 금붕어를 머리로 받으며 몰아세우기도 했다. 금붕어를 보던 세 살 배기 승혜도 "엄마 쟤 나빠. 자꾸 물고기 때려."할 정도로 붉은 금붕어의 성격은 포악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삶에 대해 치열한 듯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붉은 금붕어만 잘먹고 까만 놈의 먹이까지 빼앗아 먹으니 몇 달 후 두 녀석의 몸은 눈에 띄게 차이가 났다. 가끔 승혜나 승혁이가 넣어준 먹이까지 다 빼앗아 먹은 붉은 금붕어는 얼마나 먹어댔는지 배가 불룩하다 못해 터질 듯 했고 덩치 또한 까만 금붕어보다 훨씬 커서 공격적인 모습에 커다란 덩치까지 그 모습만 보아도 위압적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깡패'라고. 반면 까만 금붕어는 잘 먹지도 않고 주로 가만히 있는 것만 좋아해 처음 사왔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도 포악해 보이는 붉은 금붕어와 늘 함께 있어야 하는 까만 금붕어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었다. 가뜩이나 제 먹이도 제대로 못 챙겨먹는 소극적인 성격에 날이 갈수록 커지는 붉은 금붕어의 몸집은 그에게도 공포스러웠을 것이다. 그래도 제 나름대로 처세술을 터득했는지 붉은 금붕어가 싸움을 걸기 위해 툭툭 건드리면 슬슬 피하기만 했다. 간혹 붉은 금붕어가 머리로 부딪히며 노골적으로 공격해도 그냥 맞으며 가만히 있었다. 그러면 제풀에 지친 붉은 금붕어는 시들해진 듯 물러나 버렸다.

그렇게 수개월간 붉은 금붕어에게 시달리는 까만 금붕어가 안쓰러워 커다란 소라 껍데기를 하나 넣어주었다. 소라를 넣으니 좁은 어항의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어항의 공간은 좁아졌지만 그동안 붉은 금붕어에게 시달리던 까만 금붕어에겐 반가운 선물이었나 보다.

소라를 넣어주자마자 몸집이 작은 까만 금붕어는 안으로 쏙 들어가더니 나올 생각을 안 했다.

매일 하루 종일 소라 안에만 있어 먹이를 받아먹도록 소라를 손으로 툭툭 쳐 주어야 나왔다. 먹이를 먹고는 금새 '소라방'으로 다시 들어가 잠적해 버렸다.

매일같이 까만 금붕어를 괴롭히는 것을 '낙'으로 살았던 붉은 금붕어는 막상 까만 금붕어가 안 보이자 저 나름대로 편안한 듯 보였다. 가끔 까만 금붕어를 찾으러 소라쪽을 기웃거렸지만 워낙 비대해진 몸이라 제대로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입구에서 빙빙 돌기만 했다.

그렇게 어항 안에는 평화의 기운이 감도는 듯 했다.

그런데 며칠동안 바쁜 일이 생겨 어항 물도 제대로 갈아주지 못하고 며칠 후에야 본 어항에는 여전히 까만 금붕어가 보이질 않았다. 소라 안을 보았는데 다른 때면 소라를 툭 쳐도 놀라서 나오던 까만 금붕어는 소라 안에 아예 손가락을 넣어 봐도 잡히질 않았다.

소라를 꺼내 안을 향해 수돗물을 틀은 후 손가락으로 소라 안의 나선을 따라 짚어보니 소라에 말린 듯한 까만 물고기가 힘없이 나왔다. 이미 죽은 지 꽤 된 듯 온 몸이 축 늘어지고 물 안에 있었는데도 몸이 물기없이 말라붙어 있었다.

깡패 친구에게도 시달릴 위험도 없고 자신만의 공간이었던 소라 껍데기 방은 까만 금붕어에겐 천국이었을 것이다. 까만 물고기는 이미 죽었지만 행복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폭력도 없는, 조용한 평화가 있던 천국에서 숨을 거두었으니.

까만 금붕어가 죽은 후 더 이상 소라도 필요없게 되어 어항안은 이제 더욱 기세등등해진 붉은 금붕어만 남고 또한번 어항엔 평화가 찾아왔다.

두 마리에서 한 마리로 줄으니 물도 매일같이 갈지 않아도 깨끗했고 그나마 눈엣가시였던 소라와 까만 금붕어도 없어져 더 넓어진 공간에서 붉은 금붕어는 신이 난 듯 했다.

또다시 첨벙거릴 정도로 어항 안을 신나게 헤엄쳤고 먹이도 혼자서 마음껏 욕심스럽게 먹어치웠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그렇게 수선스럽던 붉은 금붕어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꼼짝 않고 있어서 죽은 건 아닐까 해서 어항을 손가락으로 툭 치면 그제서야 지느러미를 흔들며 느릿느릿 헤엄을 쳤다. 꼭 죽은 까만 금붕어처럼.

먹이를 주어도 예전처럼 신나게 받아먹지 않는 듯 했다. 두 알을 주면 더 달라고 입을 뻐끔거릴 정도로 식탐했던 녀석은 두 알 중 한 알만 먹고 힘없이 바닥으로 내려갔다.

가끔 몸을 옆으로 해서 수면 위로 떠오르곤 해서 죽은 줄 알고 보면 다시 헤엄을 치곤 하며 죽은 척도 해서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엄마, 얘 아픈가봐." 하고 승혜가 알아차릴 정도로 '깡패' 금붕어는 아예 삶의 의욕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제 한 마리만 보살피면 되니 내가 잠시 금붕어에 등한해진 사이 어느 날 아침 물을 갈아주기 위해 어항을 보니 붉은 금붕어가 수면 위에 떠올라 있었다. 죽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물갈기에 소홀했던 것도 아니고 먹이가 부족했던 것도 아니었다. 마침 물 위엔 전날 내가 준 먹이 한 알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붉은 금붕어를 죽게 한 것은 아마도 삶의 의욕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까만 금붕어를 괴롭히면서 자신의 우세함을 과시하는 '삶의 의욕'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되고 자기와 함께 비좁은 공간에서 불편해 하며 함께 살아온 누군가가 막상 어느날 갑자기 없어져 버리자 혼자만의 세계에 남겨진 두려움과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1년간 함께 생활해 온 금붕어 두 마리의 '일생'을 지켜보면서 문득 함께 살아가기의 의미를 떠올려 본다.

아마도 '깡패'금붕어가 좀더 너그러웠다면, 혼자서 모든 것을 다 누리며 살아가는 풍족함 속의 외로움 대신 누군가와 조금은 불편하지만 함께 나누는 기쁨을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까만 금붕어는 자신만의 천국에서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 또한 무미건조한 삶에 못견뎌 스스로(이건 내 추측일지도 모른다) 죽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사는 세상도 무엇이 다를까 싶다. 혼자서 누리는 풍요 속의 외로움 대신 나누면 더 행복해지는 오묘한 삶의 이치가 이미 존재하기에 나또한 붉은 금붕어처럼 뒤늦게 후회하기 전에 느릿느릿 욕심없이 살면서 '행복한 빈곤'을 택하고 싶다.




칼럼니스트 임선미 (malakal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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