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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때문에 작품의 평가 왜곡되지 않았으면”
장애예술인 인터뷰, 화가 "강내균"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12-16 11:23:00
화가 강내균. ⓒ강내균
▲화가 강내균. ⓒ강내균
장애에 장애를 더하다

미술계에서는 강내균으로 알고 있는 동양화가 강호찬은 두 살 때 소아마비로 양하지에 장애를 갖게 되어 목발을 사용한다. 하지만 요즘은 전동휠체어로 이동한다. 보통 나이가 들면 목발에서 휠체어로 바꾸어 생활하는데 그는 화가이기에 팔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휠체어를 사용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강내균은 장애인미술계에서는 아주 젊은 편이다. 1966년생으로 지금부터 한창 활동을 할 때이다.

작품 전시회에서. ⓒ강내균
▲작품 전시회에서. ⓒ강내균
미술을 전공으로

어린 시절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던 그는 주로 만화를 읽으며 캐릭터에 흥미를 느꼈지만 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부모님은 몸이 불편하니 약사가 되는 것이 미래를 위해 최선이라 판단하고 대학을 약대로 정해 주셨다. 하지만 내균은 약사로 평생을 산다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고2 때 진로를 바꾸어 미대를 택하였다.

고2 말부터 서양화를 배웠다. 공부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흥미를 느꼈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리며 공부한 미대 입시생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1년 재수를 하고 동국대학교 미대에 입학하였다. 그는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하였다.

대학생활은 활기찼다. 미술이라는 같은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소집단이라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었고, 장애가 물리적인 제약을 주었지만 심리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웠다.

목발을 짚고 통학하기도 힘든데 수업에 필요한 화구를 들고 다녀야 하는 어려움이 너무나 커서 3학년 때 소형차를 구입하여 직접 운전을 하고 다녔다. 한창 장애인운전자들이 확산되고 있었던 때였다. 장애인 차량은 세금 면제도 되고, LPG 연료도 사용할 수 있었다. 자동차가 생기자 내균은 학교생활이 훨씬 편해졌다. 그런데 그보다 더 좋은 일은 바로 연애활동이었다.

작품 '일몰'. ⓒ강내균
▲작품 '일몰'. ⓒ강내균
대학 CC에서 부부로

동국대학교는 비탈이 많아서 비장애인 학생들도 짐을 들고 이동을 하려면 숨이 찰 정도이다. 내균은 학과여학생들이 무거운 화구를 들고 학교로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을 보면 차를 세우고 말했다.

“같이 가자.”
한동안 유행어였던 야타족이다. 그런데 그 제안이 유독 한 여학생에게 집중되었다. 사랑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상진이란 동기동문인데 내균이 재수를 했기에 그녀는 한 살 아래였다.

1, 2학년 때는 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을 정도로 무관심했었지만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게 늘 신중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내균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남자로서의 호감으로 바뀌는데 그리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의 사랑은 견고했다. 부모님의 반대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들은 1995년 내균 스물아홉 살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들은 화가 부부답게 백악미술관 전시실에서 동문들의 부러움 속에 CC(캠퍼스 커플)의 성공적인 모델이 되었다.

결혼을 한 내균은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 직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미술학원을 차렸다. 내균은 입시생들을 가르치고, 부인은 어린이를 가르쳤다. 입시학원과 어린이학원을 20년 동안 운영하였던 것이다. 한동안은 원생들이 많아서 호황을 누린 적도 있지만 대형학원이 생기면서 작은 학원들은 문을 닫게 되었다.

학원을 접고 개인화실에서 개인 레슨을 한 적도 있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도 학원을 하며 딸을 키울 수 있었다.

작품 '산동네'. ⓒ강내균
▲작품 '산동네'. ⓒ강내균
본격적인 창작 활동

학원을 접은 후 본격적으로 미술작업을 시작하였다. 학창 시절 학교 전시회를 준비할 때는 앉아서 할 수 없는 큰 작품은 목발을 짚고 일어서서 그릴 수 있었지만 나이가 들자 서서 작업 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화선지를 바닥에 놓고 바닥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작은 작업실이 있어서 그곳에서 그림도 그리고, 작품을 한번 보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대부분 그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왔다가 그를 보고 말은 하지 않지만 조금 놀라는 기색을 보이기도 한다.

그는 작품에 진한 블루톤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것이 우울함,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근원을 표현하고 있다. 노원신문 백광현 기자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썼다.

"강호찬(강내균) 작가의 그림을 굳이 현대 한국 채색화의 장르에 가둘 필요는 없다.

기존 한국화가 갖는 전통의 화면분할을 깨는 과감한 구도 편성이라든지, 전통의 요철기법이 아닌 빛의 움직임에 천착하는 입체표현, 더구나 채색화에서도 폭넓은 재료와의 새로운 융합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가령 ‘그믐달 걸린 저녁’을 보면 ‘여백의 미’보다는 파격적인, 그래서 오히려 역동적인 화면구성이 먼저 눈에 띈다.

다양한 명도와 채도로 시간을 화면에 담아내는데, 저녁 또는 새벽하늘의 푸른빛은 다양한 명도와 채도를 뚫고 정지된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화면을 공간과 시간 속에서 살아 있게 만든다. 또한 강호찬 작가의 그림은 익숙한 주변의 풍경이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공통의 ‘고향의 향수’라는 공감대를 기본 모티브로 하여 시골 풍경 등이 많이 등장한다. 한국 채색화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평가되는 부분이다.

한국화의 ‘모필’이 얼마나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지 실험이 끝나지 않는다. 특히 짙거나 여린 블루(군청) 모노톤 계열의 색채를 주로 추출하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꾸준히 추구하고 있는 작가의 꿈은 늘 새로워지고 있다."

작품 '고향'. ⓒ강내균
▲작품 '고향'. ⓒ강내균
내균은 한국 채색화의 대가 박생광 화백(1904~1985)을 좋아한다. 박 화백은 한국 근대사의 풍랑 속에서도 활발한 예술 활동을 했으며,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 르 살롱전에 특별 초대돼 한국미술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색채의 마술사이자 민족혼의 화가로 한국 채색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상국립대 윤창술 교수는 경남일보(2021. 07. 22.)에 ‘이제부턴 박생광 화백이다.’라며 박생광의 미술 세계를 높게 조명하고 있다. 내균도 한국 채색화에서 이름을 남기고 싶은 욕심이 있다.

노원정예작가전에 참여해서 알게 된 분이 장애인복지관에서 그림을 가르치는 화가였는데 장애인미술계 소식을 알려 주었다. 그래서 장애인미술협회에도 가입하게 되었고, JW학술복지재단에서 주최하는 JW아트어워즈에 응모하여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장애가 있건 없건 화가들의 작품 활동의 본질은 똑같다고 강조한다. 다만 활동을 하는 데 육체적으로 불편을 느끼는 부분은 제도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고.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어려움은 장애 때문에 작품의 평가가 왜곡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강내균은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고 그런 느낌이 좋아서 작품을 구매하는 시기가 오기를 기대하며 지금 이 순간도 붓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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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한국장애예술인협회 (klah19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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