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함’의 크기는 같을지 몰라도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속도는 다르다.

◈ '깜깜한 미래, 외로운 절규' 거리로 나서다

해묵은 문제들이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을 때, 언론에서의 뉴스 가치는 떨어지지만 당사자들의 절박함은 커져만 가는 반비례상황이 계속된다. 절박함이 임계치를 넘자 앞이 보이지 않는 그들은 지팡이를 짚고, 손을 맞잡으며 거리로 나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언론에 연일 보도되고 있는 사이, 시각장애인들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14층 옥상에서 “시각장애인들의 안마사 자격 독점은 합헌”이라고 주장하며 집단 농성을 벌이는 등 집회를 계속해 왔다.

하지만 싸움은 외로웠다. 촛불집회와는 달리 시각장애인들의 투쟁은 언론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들의 절박한 외침이 그나마 세상에 크게 알려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2일 경찰과의 대치상황 때문이다. 부상자가 속출했고, 날아오는 전경의 주먹으로 그나마 희미하게 살아있는 한쪽 눈을 다친 시각장애인도 있었다.

2일 오후 3시 반쯤 전국 시각장애인연합회 소속 회원 2천여 명은 헌법재판소를 향해 거리행진을 하며 ‘시각장애인 안마사제도 합헌’을 주장하다 서울 종각역 사거리에서 전경들과 대치했다.

전경들은 며칠전 촛불집회에서 보여줬던 완력 그대로 시각 장애인들 앞에 섰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들은 경찰들이 휘두르는 방패와 날아오는 주먹에 더욱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 전경이 휘두른 주먹에 맞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오른쪽 눈을 실명한 뒤 왼쪽 눈의 시력만 희미하게 살아있는 류광현(24)씨. 그의 희미한 왼쪽 눈에 비친 상황은 심각했다. 완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 동료들이 전경에 의해서 밀리고 폭행당하는 것을 보고 시력이 남아 있는 자신이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한 류 씨는 동료들을 뒤로 빼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지없이 전방에 있던 경찰은 류 씨를 방패로 휘두르며 위협했고, 뒤쪽에서는 갑자가 주먹이 날아와 류 씨의 왼쪽 눈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 쳤다.

그 충격으로 류 씨의 왼쪽 눈 하드렌즈가 눈 밖으로 나왔고, 왼쪽 눈의 시야가 더 뿌옇게 흐려져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실명 위기는 아니지만 계속 통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미 각막이 얇아져 있는 왼쪽눈에 각막 안쪽까지 상처가 깊어질 경우에는 더 위험해 질 수 있다고 한다.

그에게 왼쪽 눈은 그나마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통로이다. 류씨는 “왼쪽 눈의 시력도 점점 잃어가고, 안마사 일도 근근하게 해나가고 있는데 이렇게 또 왼쪽 눈을 다치니 완전히 시력을 잃을까 무섭다”고 말했다.

◈ 그들이 뉴스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류씨 뿐 아니라 수십 명의 시각장애인들의 부상이 이어졌다.

행진을 막아서는 전경과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서진원(32)씨가 눈과 코 주위를 크게 다치는 등 시각장애인 수십 명이 다쳐 을지로 백병원 등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전국장애인청년연합회 강윤택 회장은 “평화적인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는데 전경들이 방패로 찍고 주먹으로 때렸다”며 “앞 못보는 장애인들이 밀리는 상황에서 다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 시각장애인들은 "경찰이 폭력을 휘두른 것에 대해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안정된 직업이 보장되지 않은 깜깜한 미래에, 언론에서도 소외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은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그나마 오늘 '뉴스'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2008-07-03 07:30:05 ]

CBS사회부 조은정 기자 aori@cbs.co.kr/에이블뉴스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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