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최승우 씨의 증언 (2부)

그 안에서 신입소대 소대장에게 이틀 동안 성폭행을 당하고

그리고 그 뒤에 신입소대에 가게 되면서 그곳이 부랑아, 부랑인 수용소 형제복지원이란 걸 알게 됐죠

한 3~4일 뒤에 알게 됐죠

자막]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최승우 씨의 증언 (2부)

최승우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는데 그때 제가 일반 소대에 있을 땐데 밥 먹으러 가서 부동자세로 있는데

13소대에서 밥을 먹으러 왔는데 앞에서 4번째 줄 정도에 제 동생이 보이더라고요

순간 눈물이 확 나더라고요 내 동생까지 잡아왔구나 싶어서...

그때 제가 잡혀가서 받았던 상처들을 똑같이 받지 않았을까? 그런 걱정에...

하지만 동생에게 말 한마디 못 건넸어요 다른 소대와 대화를 하면 기합을 받거나 구타를 당하니까

그냥 마음으로 울었어요 그리고 밥 먹으러 가거나 아니면 운동시간이나 이럴 때 가끔가다 한 번씩 봤죠

보고 싶어 죽겠더라고요 이야기도 하고 싶고 그랬는데 이야기라는 건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냥 멀리서만 쳐다보고, 제 동생이 제식훈련을 한다든지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다든지

원산폭격을 하고 있다든지 기합을 받을 때 저도 속으로 울었죠 겉으로 울지는 못하고...

너무너무 아팠어요 길거리에 있다가 잡혀왔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동생이 그렇게 오고...

동생도 거기에서 1년 정도 같이 있었죠 같이 있었지만 대화는 못했고

그리고 그 동생이랑 같이 귀가조치가 되고 참 힘든 사회생활을 했습니다

트라우마죠 결국은... 자살을 하더라고요

동생이 죽기 전에 했던 말이 기억이 나네요

형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될 사람들인 것 같다고 하면서 왜 우리는 사는 게 이 모양인가?

죽기 전에까지 그렇게 신세한탄을 하더라고요

나는 끝까지 자기 자식들이 있으니까 살아야 된다고 그렇게 숱하게 동생한테 말했는데

결국은 2009년 10월에 죽더라고요 너무너무...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하나뿐인 동생이 가고 나니까 정말 죽고 싶더라고요

천장이 이렇게 돼 있는 이유가 너무너무 목을 달았거든요 몇 번을 단지를 모르겠습니다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중에 귀가조치 돼가지고 자살한 사람이 많아요

자살한 친구들 이름까지 다 기억이 나요 심지어 제 옆에서 손목을 긋고 자살한 친구도 있었어요

이름도 기억이 나요 영만이라는 친구, 그리고 이 근처에 살던 이상길이라는 친구도 결국 자살을 해버리더라고요

삶의 회의가 느껴져서, 깡패생활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결과들을 스스로 생각을 했던 거죠

그래서 죽어야 되겠다는 그런 결심을 했던 모양이에요

사실은 저도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왜 살아야 되는지를 한 번씩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갑자기 또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더라고요 내가 이런 나라에 살아야 되나 싶기도 하고...

한 번씩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몸도 성하지도 않죠 제가 이렇게 사는 게 너무너무 힘들어요

30대에 저는 이를 전부 틀니를 했거든요 안에서 두들겨 맞은 거예요

조장들이나 형들이 때리잖아요 이 하나 빠지면 조금 있으면 나니까 괜찮아 새X야

툭툭 때렸던 그런 것들로 인해서 30대 후반 되니까 이가 다 빠져버리더라고요

틀니를 했거든요 몸이 안 따라주잖아요 안되다 보니 나라에서 지정해서 기초생활 수급자 된 거죠

꽤 됐습니다 병원도 여기 보시면 약을 달고 살잖아요 디스크에 혈압, 당뇨...

10년을 넘게 약으로 살고 있어요 힘들어요

그 안에서 신입소대 소대장에게 이틀 동안 성폭행을 당하고

그리고 그 뒤에 신입소대에 가게 되면서 그곳이 부랑아, 부랑인 수용소 형제복지원이란 걸 알게 됐죠

한 3~4일 뒤에 알게 됐죠

제가 지금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있어요

저는 그 안에 들어가서 어른들한테 성폭행을 엄청 많이 당했거든요

14살, 15살 때 예쁘다고, 그때는 왜소하고 귀엽게 생겼다고 소대장들의 노리개였죠

그래서 트라우마가 좀 심해요 그래서 서울에서 트라우마 치료를 받으면서...

그 안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냐면 입소하자마자 소대장한테 성폭행을 당하고 그리고 또...

아동소대 서무라는 직책으로 가게 됐는데 그때가 85년도인가 그렇게 될 겁니다

85년도쯤에 형제복지원 24소대 아동소대 서무로 가게 됐는데 그때 OOO이라는 소대장이 있었어요

그냥 서무로 가게 된 게 아니고 성적 노리개로 갔던 거죠

1년을 넘게 그 사람에게 성추행, 성폭행을 당했던 이런 일들이 있었어요

참 진짜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그 어릴 때 폭력적이 성적인 것들이 상처가 엄청 컸거든요

그래서 진짜...

옛날 그런 기억들을 되짚어보면 치욕 같은 형제복지원의 삶이었죠 5년이라는 세월동안...

너무너무 끔찍스럽습니다 지금도 제가 근래 들어서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리려고

진상규명을 위해서 뛰어다니지만, 다니고 있는 와중에 이렇게 형제복지원 사건을 끄집어냈잖아요

이전에는 말하지 않았으니까 알고는 있었지만 그냥 숨기고 살다가 지금 다시 꺼내다보니까

과거의 일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더라고요 갑자기 제가 잠이 없어졌어요

그때 당시의 악마와 같은 손길이라든지 폭력이라든지 성폭행...

그리고 제가 맞는 꿈, 자면서 느닷없이 나타나거든요 너무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근래 들어서 술을 좀 마시고 자는 편이에요

옛날 얘기 꺼내는 게 힘들다고 하셨잖아요? 근데도 계속 알리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까?

다른 데 가면 그런 얘기를 또 해야 되잖아요 계속 활동을 하고 계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이유는 있죠 이유는 엄청 많죠 첫째로 내 삶, 내 삶을 망가뜨렸다는 거

그리고 또 제 동생, 동생을 죽게 만들어 버렸다는 거

그리고 가정이, 제 가족들이 엉망이 돼버렸다는 거, 그게 첫 번째 이유예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런 과거 사건들이 해결이 되지 않으면 현재도 똑같은 일들이 생기고 있다고 저는,

요즘에 신문에도 나잖아요 복지시설이 엉망이다 보니까 안에서 두들겨 맞는 사람도 있고 죽는 사람도 있고

불타서 죽는 사람도 있고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그렇잖아요

그냥 국가에서 나오는 돈이나 받아먹으려고 하는 악덕 복지 기업가들이 있어요

돈만 바라보고 그런 사람들을 제재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밝히고 싶죠

제가 뭐 다른 게 뭐 있겠습니까?

그리고 하나 더 우리가 그때 당시에 부랑아, 부랑인이었다 하더라도

거기에 감금시키고 강제노역과 성폭행, 이런 것들을 행하면 안됐었습니다

사람 아닙니까? 인간이잖아요 인간을 어떻게 그렇게 가둬놓고 그런 일들을 시켜요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안 그렇습니까?

제가 배우지는 못했지만 이런 기본은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에 있잖아요 그게 뭡니까?

국민이 주권을 가지고 있고 국민이 주인이라는 건 알고 있거든요

국민이면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의 인권을 말살을 하고 그렇게 가둬놓고 인생을 망가뜨렸다면

그거는 당연히 책임을 져야 되는 거 아닙니까? 국가에서...

책임을 지지 않고 나 몰라라 하고 있기 때문에

더 밝히고 얼굴을 내놓고 나는 성폭행 당했다 두들겨 맞아서 이가 틀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겁니다

창피한 거 없어요 제가 죄를 짓고 들어가서 맞지 않았잖아요

떳떳합니다!

촬영협조

최승우 님께 감사드립니다.

감독 정승천 (daetongreyong@hanmail.net)

*정승천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현재 부산지역에서 장애인 문제, 환경 문제 등과 관련한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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