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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환의 장애인물전 - 김학묵 회장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05-23 08:50:48


<장애인물 톺아보기>

우리 사회에 뜨거운 한 획을 그은 장애 인물과 그의 열정적인 인생을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장애인물 톺아보기>. 에이블뉴스 백종환 대표 함께 합니다. 어서 오세요.

질문1 : 오늘 소개해 주실 분은 누구입니까?
답변 : 우리나라에 사회복지란 개념을 첫 도입한 학자이자 공무원이었던 분인데요. 하지만 우리가 이분을 기억하기로는 평생 나비넥타이를 즐겨 착용하신 분입니다.

사단법인 한국뇌상마비복지회를 창립해서 초대회장으로 여생을 뇌성마비 장애인들에게 바쳤던 김학묵 회장님이십니다.

김학묵 회장님은 워낙에 젠틀맨으로 소문나 있고, 학식이 깊어서 장애인의 날 기념식을 할 때 장애인복지단체들이 협의회를 만들어 주최했는데 초대부터 줄곧 회장을 맡으셨고요. 뿐만 아니라 장애인복지법에 있는 국무총리 산하 중앙장애인복지위원회 회장도 오랫동안 맡아 오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장애가 없는 비장애인이었습니다.

질문2 : 비장애인, 학자, 공무원을 하셨던 분으로 장애인분야의 굵직한 직함을 거의 초대회장을 엮임하셨던 분이었다면 이 분의 삶의 궤적이 무척이나 궁금한데요?
답변 : 이 분은 1916년 충북 음성군에서 일제 강점기 아래서 사회운동단체 ‘대한 자강회’의 발기인이었던 김상범 공의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김학묵 회장님은 휘문고보와 고려대학교 전신인 보성전문학교 법학과를 졸업했고요.

그리고 KBS 전신인가요? 국내 첫 라디오 방송이었던 경성방송국 아나운서를 지냈는데요. 라디오 음악프로그램 진행 중에 창을 부르러 나온 기생을 소개하면서 여사라는 호칭을 썼다는 이유로 논란이 일자 ‘사람 차별하는 곳에서 일할 수 없다’며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나운서 이력은 아주 짧았다고 합니다.

질문3 : 당시 방송국의 아나운서란는 직업은 대단했을 텐데요. 방송국을 그만두고 어떤 일을 했다고 합니까?

답변 : 경기도 사회과장으로 공직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해방 이후에 유엔 장학생으로 선발돼 영국 런던 대학교에서 영국 사회보장 제도를 연구하던 중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나라를 위해서 일해 줄 것을 요청해서 1951년, 한국전쟁 중에 귀국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듬해 1954년 고등고시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하다 다시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에 유학해서 사회사업을 전공하고 귀국해서 서울시에서 일하게 됩니다.

질문4 : 대학 졸업 후 영국이나 미국에서 사회복지 분야를 공부하고 공무원으로 계속 근무한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나라 사회복지 분야에 큰 일을 하셨나요?

답변 ; 그렇습니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이 하야하게 된 4.19 혁명 직후 허정 과도정부에서 보건사회부, 현 보건복지부 초대 차관을 지냈고요.
제2공화국인 장면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을 12년 동안 일하면서 서울에 있는 여러 대학교에서 사회사업 행정을 강의한 교수로서도 명성을 날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65년에는 '사회사업개론'이라는 책을 저술했는데요. 이 책은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나온 책이었습니다.

특히, 김학묵 회장님은 사회사업이란 용어에서 사회복지란 개념을 우리나라에 첫 도입한 전문가이자 행정가였고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복지부 차관을 지내면서도 전셋집에서 살았던 청렴한 공직자로 알려져 있는 분이기도 합니다.

질문5 : 공직이나 대학교수로 활동했던 분이 장애인 분야로 전환하게 된 어떤 결정적 계기가 있었을까요?

답변 : 글쎄요. 직접적으로 말씀을 하시지는 않았지만 1969년 셋째 아들이 신경이 썩어들어가는 베세토씨병을 앓기 시작해서 연세대 재학 중 시각장애인이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8년간 투병 끝에 결국 1977년 스물여덟살의 나이로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요.

아들을 떠나보낸 다음해 1978년 3월에 한국뇌성마비복지회를 만들고 2001년 5월, 돌아가실 때 까지 20년을 넘게, 그야말로 여생을 뇌성마비 장애인복지를 위해서 헌신해 오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쩌면 장애와 베세토씨병으로 투병 생활을 했던 아들로 인해 공직에서 이 땅의 장애인분들을 위해 여생을 바치신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질문6 : 1978년에 장애인단체를 설립하셨으면 운영도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답변 : 그러니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80년대 이전의 우리나라 사회복지 분야의 활동은 사실상 거의 전무했지요. 가령, 예산에서는 물론이고 정책, 제도, 서비스 모든 분야에서 뒷전에 밀려 있었고 이 당시는 가장 우선순위가 국방 아니면 경제였지 않았습니까?

때문에 사회복지분야 특히 장애인복지 분야는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감사하다는 표어가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해서, 이 당시 장애인단체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은 그야말로 김학묵 회장님의 헌신이나 리더십이 아니었다면 뇌성마비복지회를 운영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었을 것은 누구나 인정했던 사실이었습니다.

질문7 : 그러니까요, 어떤 노하우가 있었을까요?

답변 : 김학묵 회장님은 한국뇌성마비복지회 창립하고 가장 먼저 했던 작업이 재원확보 방안이었는데요.

재원 확보를 위해 후원회를 만들어 그동안 공직생활을 통해서 알고 지냈던 사람들, 기관, 단체, 회사 등등을 총동원해서 후원회원을 만들고, 또 확대하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매월 작게는 1천원, 1만원의 정기후원자가 상당수에 이르러 년간 10여억원에 달하는 후원비가 조성되고 있어서 정부에 손 벌리지 않고 올곧게 단체를 운영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장애인단체가 장애인의 권익 활동을 위해서 최소한의 비용을 마련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1990년 이후 장애인단체들은 보건복지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운영비나 일부 인건비로 활용하고 있는데요.

한국뇌성마비복지회는 김학묵 회장님이 만들어 놓은 후원회가 워낙에 탄탄해서 정부에 소위 손 벌리지 않고 그래서 정부의 눈치보지 않고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재정확보를 위해서 후원 회원에만 의존하면 안되기에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는데요.
복지회를 창립하던 그해 1978년부터 제1회 사랑의 잔치를 시작으로 1980년 뇌상마비 아동을 위한 자선의 밤, 1984년 자선 가곡의 밤, 1987년 자선패션 바자회 등 각종 모금 활동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왔었습니다.

이와 같은 행사들은 복지회 재정을 안정시키는 것은 물론이고요.
장애인 문제를 사회문제화 함으로써 이슈화를 만들어 장애인복지를 정책으로 전환시키는 일이나 또는 장애인 인식개선에 크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행사를 진행해 왔던 것입니다.

질문8 : 그 열악한 시기에 어떠한 행사를 했길래 인식개선에 도움이 되었을까요?

답변 : 한 가지만 예를 들어서 말씀드리자면요. 뇌성마비 장애인의 특성상 잘 걷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래서 김학묵 회장께서는 1981년 용평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뇌성마비장애인 캠프인 오뚜기캠프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오뚜기 캠프는 지금까지 지속해서 운영되고 있는데요. 지난해에 38회째 였고, 올해 39회를 맞게 됩니다.

오뚜기 캠프는 보통 2박 3일동안 펼쳐지게 되는데요. 이 캠프에 참여하는 뇌성마비 장애인은 뇌성마비 청소년들로 대부분 학생들로 이루어집니다. 학생과 자원봉사자까지 합하면 매년 250명에서 300여명의 규모로 이루어지니까 아주 대규모 캠프아니겠습니까?
김학묵 회장께서 이 캠프를 마련한 것은 비장애인들에게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에도 큰 도움이 되리란 기대가 있었고요.

그리고 뇌성마비 청소년들에게는 평소 비장애인들의 편견과 열악한 장애인 편의시설, 그리고 부담스러운 비용 등으로 해서 또래들에 비해 다양한 활동을 접하지 못하니까요. 뇌성마비 장애 청소년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김학묵 회장께서는 이 캠프를 통해 뇌성마비 장애청소년들이 부모님 없이도 스스로 생활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 그리고 자원봉사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비장애인들과의 편안한 소통 등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질문9 : 참으로 세심한 분이셨네요. 그러면서 국제장애인 캠프로 더 확대했다고요?

답변 ; 그렇습니다. 김학묵 회장께서는 열악한 환경에서의 뇌성마비 장애인들에 대한 자립 지원을 꾸준하게 생각해 오시면서 국내에서 치룬 행사를 3년정도 하시더니요.
급기야 1984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영국, 일본, 한국이 참가한 국제장애인캠프를 개최해서 뇌성마비장애인의 국제교류를 시작했고요.

1995년에는 서울에서 한국뇌성마비복지회 주도로 중국, 호주 등 12개국이 참가한 제5회 서태평양 뇌성마비협회 국제회의를 개최하기도 하면서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와 한국뇌성마비복지회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도 일본 장애인단체와 자매결연늘 맺고 지금까지도 매년 정기적으로 교류 활동을 해 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국제대회에 뇌성마비 장애인이 꾸준하게 참여하고 함께 교류할 수 있도록 하신 것에는 뇌성마비 장애인들의 스스로 혹은 우리 사회가 뇌성마비 장애인에게 사회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뇌성마비복지회를 통해서 경험하도록 하게 한 것입니다.

질문10 : 그럼, 오뚜기 캠프외에 뇌성마비 장애인들을 위해 김학묵 회장께서 이루어 놓으신 대표적 사업들은 무엇들이 있는지 궁금한데요?

답변 : 김학묵 회장님께서는 뇌성마비 장애인들의 문화활동이나 체육활동, 그리고 뇌성마비 장애인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사업을 꾸준하게 해 오셨는데요.

가령, 문화활동중에 오뚜기 축제는 지난해가 37회째 이어오고 있는 사업이고요. 오뚜기 축제는 뇌성마비인들의 장기자랑이라든가 놀이마당과 같은 공연이 펼쳐지는가 하면 인기 연예인들의 축하공연으로 하루를 즐기고요.

그림이라든가, 시화전 등 각종 작품들이 전시되고요. 또 일본 뇌성마비인들의 특별 찬조공연도 병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뇌성마비 장애시인과 비장애 시인들이 함께 각자의 시를 낭송하면서 교류하는 시간도 매년 갖고 있습니다. 뇌성마비 장애시인들은 장애특성상 발음이 부정확하지만 시낭송 전문가들과 함께 무대복도 맞춰 입고 공연을 펼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이기도 하고요. 시낭송을 하는 뇌성마비 시인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으로 와 닿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로 26회 개최된 바 있는 전국뇌성바미인 축구대회가 있는데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전후해서 열리는 축구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축구를 한다는 것이 잘 상상이 가지 않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그래서 이 축구대회를 통해서 뇌성마비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변화시켜 보려는 목적이 크고요.

그리고 뇌성마비인들 스스로 생활체육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국뇌성마비 축구대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면요. 대학에 입학하는 뇌성마비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왠만하면 대학에 입학하는 신입생 모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선정된 학생들에는 대학입학 등록금 중 수업료 전액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질문11 : 그런데요. 지금 대표님께서 뇌성마비 장애인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계시는데 최근에는 뇌병변 장애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답변 : 좋은 지적을 해 주셨는데요. 김학묵 회장님께서 이 단체를 창립할 때만 하더라도 뇌성마비인으로 명칭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뇌성마비 장애인이라고 설명을 드렸고요.

2000년부터 변경된 용어는 뇌병변인데 뇌병변은 뇌의 손상으로 중추신경장애가 있는 사람을 총칭하는 것이고요. 이 뇌병변에 뇌성마비, 뇌졸중, 외상성 뇌손상이 있는 분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뇌병변 장애인으로 용어를 바꿔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질문12 : 그럼, 뇌병변 장애인과 오랫동안 활동을 해 오셨는데 어떤 에피소드 같은 일화들이 없을까요?

답변 : 많지요. 정말 신사분이셨고, 장애인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장애계 지도자분들도 김학묵 회장님을 존경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 만큼 좋은 이야기들도 많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래도 좋은 일화가 없을까 해서 이 방송을 준비하면서 김회장님과 함께 하셨던 여러분들한테 여쭤 봤는데요. 김학묵 회장님의 운진기사분이 뇌성마비 장애인이었습니다.
주위에서 많은 분들이 만류를 했음에도 그 분은 뇌성마비 장애인을 운전기사로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일이 일어났냐 하면요.
대한적십사 행사때 당시 총리가 주 내빈으로 참석했고, 김학묵 회장님께서도 적십자 사무총장, 부총재를 지내셨기 때문에 행사의 VIP로 참석을 하셨는데요.
운전기사로 비서겸해서 김회장님 뒤를 따라 행사장에 입장을 하니까 총리 비서가 “이런 데에 오시면 안됩니다.” 하면서 그 분을 내 쫓아낸 것입니다.

물론, 김학묵 회장님의 비서겸 운전기사라고 설명을 해도 믿지 않았고요. 그래서 결국은 적십자 직원들이 확인을 해 줘서 총리 비서가 사과를 한 적이 있다고 그 운전기사 분이 직접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일화 하나는 한국뇌성마비복지회를 설립하고 회계 담당자는 뇌성마비 자녀를 둔 어머니를 채용한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장애 자녀를 키우면서 직장을 가질 수 없는 어려움을 덜어주고 복지회를 운영하면서 장애가 없는 회장님 본인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함이었다고 나중에 털어놨다고 합니다.

질문13 : 앞서 김학묵 회장께서 나비넥타이로 멋을 내시는 젠틀맨이라고 하셨고, 아나운서로도 활동하신바 있다고 했는데 가족분들이 언론이나 방송에서 활동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답변 : 특히 나비넥타이중에도 빨간색 나비넥타이를 즐겨 착용하셨는데요. 정말 신사분이셨습니다.

그리고 김학묵 회장님의 부친이 황성신문의 주필과 편집국장을 지내셨던 분이셨고요.
그런 영향이었을까요. 김학묵 회장님의 집안에는 유난히 신문, 방송인이 많았습니다.

동생 김주묵씨가 조선일보 정치부장, 경향신문 상무를 지냈고, 큰 아들 김재형씨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용의눈물’, ‘태조 왕건’등을 연출한 한국의 간판급 KBS PD였고요.

둘째 아들 김재휘씨도 춘천일보 사장을 역임했고, 넷째 아들 김재연씨는 인기 프로그램 ‘TV는 사랑을 싣고’ ‘체험 삶의 현장’등을 연출한 KBS PD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취재 기자로 활동하던 저도 무척이나 이뻐하셨는데요.
전문적인 내용의 원고를 부탁드리면 꼭 불러서 대필을 시키셨습니다. 회장님께서 직접 구술을 하고 제가 받아서 작성하곤 했는데요.

그리고 꼭 멋진 커피숍에서 커피를 사 주시고 유머를 섞어서 참 좋은 말씀을 해 주시곤 하셨는데 아나운서를 하셨을 만큼 목소리도 좋으셨지만 쩌렁쩌렁하게 말씀하시던 음성은 정말이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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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빈 기자 (marchy@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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