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전거래할 땐 차용증부터 챙기자

문서는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자료

얼마 전할머니 한 분이 남루한 옷차림으로 찾아와 돈을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하고 있으니 도와달라며 차용증 한 장을 내밀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할머니는 시골에서 병든 남편을 돌보면서 혼자 농사를 지어 힘들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전 재산과도 같은 귀한 돈을 이웃에 사는 한 젋은이에게 빌려줬다가 떼일 위기에 처한 것이었다. 할머니가 돈을 빌려주는 것을 본 사람도 없고 또 현금으로 직접 주었기 때문에 은행통장 기록에도 증거가 될 만한 자료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증거라고는 오직 차용증 한 장뿐이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문제는 할머니가 신주단지처럼 믿고 있던 차용증에 있었다.

당사자들은 나름대로 기상천회한 갖가지 법률관계를 만들어가다가 결국 얽히고설켜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법률 전문가를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의 할머니도 돈을 빌려간 사람이 이웃에 사는 청년이고 차용증까지 써주면서 반드시 갚겠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그전에도 작은 액수이지만 몇 번 돈을 빌려간 후 약속한 날짜에 제대로 갚은 적이 있기 때문에 별다른 의심없이 상대방을 믿었던 것이다.

도대체 할머니가 철썩같이 믿고 있었던 차용증에는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우선 그 차용증에는 돈을 빌려간 사람으로 보이는 ‘김○○’이라는 사람의 인적사항이 전혀 없다. 즉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수천, 수백 명의 김○○ 중에 할머니가 돈을 빌려준 김두용이 도대체 어느 김○○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둘째, 돈을 빌려준 사람으로 보이는 ‘부산댁 할머니’가 도대체 누구인지 역시 위의 차용증만으로 알 수 없다. 그러므로 할머니는 자신이 차용증에 등장하는 ‘부산댁 할머니’와 동일한 인물임을 증명할 수 있는 또 다른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셋째, 돈을 빌리는 기간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다. 6개월간 빌린다고 했는데 도대체 어느 시점부터 6개월이란 말인가?

넷째, 위의 차용증에는 김○○의 막도장(길거링서 5분만에 기계로 판 도장)이 찍혀 있었는데, 막도장은 누구든지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할머니가 가지고 있는 차용증의 작성자가 정말 김두용이 맞는지도 불분명하다.

위의 소송은 결국 몇 달간 서너 명의 증인이 법정에서 진술하고 필적감정을 거치는 등 번거롭고 지루한 공방 끝에 다행히 조정으로 해결되었다. 그러나 할머니가 차용증을 쓸 당시 필요한 요건만 잘 갖추어 썼더라면 그렇게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문서의 증거력이란 >> 다소 극단적이긴 하지만 “법원은 열 명의 애매한 증인보다 한 장의 확실한 문서를 더 신뢰한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문서는 소송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양한 형태의 증거들 중에 문서에 기재된 내용이 증거자료가 되는 경우를 ‘서증’이라고 하는데, 한 저명한 법학자는 서증을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까지 표현한 바 있다.

문서 작성할 때 주의할 점들 >> 이처럼 소송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문서를 작성할 때는 어떤 점에 유념해야 할까?

첫째, 당사자의 인적사항을 정확하게 기재하는 것은 기본이다. 당사자의 이름과 주민번호, 주소, 연락처는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한 예로, 오랫동안 같은 마을에서 함께 살아온 두 사람이 돈거래를 하면서 차용증에 돈을 빌리는 사람의 이름을 ‘김성구’라고 적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돈을 빌린 ‘김성구’씨가 나중에 자신은 돈을 빌린 적이 절대로 없다며 발뺌하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돈을 빌린 사람의 호적상 이름은 ‘김승규’였고, ‘김성구’는 그 지역의 언어습관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평소에 부르던 이름이었는데, 돈을 빌린 그 사람은 단지 차용증에 ‘김성구’라고 적은 것을 빌미로 자신은 돈을 빌린 적이 없다는 주장을 했던 것이다. 분쟁을 이처럼 사소한 실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문서를 작성한 날짜는 절대로 생략해서는 안 된다. 문서에 기재한 날짜는 법원이 법률관계를 판단하는 기준점이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서류를 작성하면서 설마 날짜를 누락하겠는가 싶겠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흔하게 범하는 실수 중 하나이다.

셋째, 중요한 문서라면 가급적 인감도장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 누가 번거롭게 인감도장을 사용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인(Sign),이나 막도장은 위조의 가능성이 크므로 문서의 진실성을 담보하기 위해 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를 활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안전하다. 특히 큰돈이 오가는 거래에서 급하다고 막도장을 파서 찍는다면 나중에 분쟁의 소지가 될 수도 있음을 유의하자.

넷째, 문서 내용은 간결하고 명료하게, 그리고 어려운 한자어보다는 평소 사용하는 일상 용어로 쓰는 것이 좋다. 옆 사람에게 하소연하듯 사건의 경위나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글의 초점이 흐려질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많아진다. 따라서 여러 문장을 길게 연결해서 쓰기보다는 짧고 쉬운 문장으로 나누어 쓰는 것이 사후 분쟁의 소지를 줄이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www.s-deafcenter.org)/에이블뉴스(www.ablenews.co.kr)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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