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광학교 학생들의 여름 캠프 래프팅 모습. ⓒ장애인생활신문

특수교육계의 대모 인천혜광학교를 찾아 살아 있는 50여년의 역사를 엿봤다. 시각장애인의 재활교육과 보육사업을 수행하는 이곳에는 120여명의 시각장애인 학생이 꿈과 희망을 키우고 있다. 학생과 교직원, 학부모가 함께하는 교육만이 배우는 기쁨과 돕는 보람, 신뢰받는 학교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굳건한 인천혜광학교를 탐방했다.

△ 설립과 발전과정=1956년 유난히 추운 겨울, 6·25 당시 파주에서 기거하던 6명의 시각장애 아동들이 군사작전상 전방에 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미군부대 트럭에 실려 강제로 내려왔다. 그때 혜광학교 설립자인 임경삼 목사와 송보애 원장이 송월동 본인 집에서 아이들을 양육하게 됐다. 이를 계기로 전쟁으로 인해 실명한 어린이들이 소문을 듣고 모이게 돼 그 규모가 점점 커졌다. 그때부터 시각장애 아동들에게 단순 양육이 아닌 교육을 지원하게 됐고, 이메리 이화여대 특수교육학과 교수의 자문을 받으며 점자교육과 침술, 물리치료교육 등을 시작하게 됐다.

이처럼 활동 영역이 넓어짐에 따라 공공기관으로 탈바꿈할 필요성을 느끼게 돼 사택을 기본 재산으로 재단법인 인천광명원을 설립하게 됐다. 이후 학생이 자꾸 늘어 주택에서의 생활이 불가능해지자 땅을 구입하고, 모래를 직접 구하러 다니는 등 힘든 과정을 거쳐 마침내 새 건물을 건축했다. 하지만 톱밥난로의 과열로 강당, 식당, 교실이 모두 타 버리는 고난을 겪었다. 그 후 교육청의 도움으로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옮겨 계단 없는 2층 철근콘크리트 건물을 건축하게 됐다.

설립자 부부는 어렸을 때부터 시각장애아동들의 동무였던 큰 딸인 지금의 임남숙 원장에게 생활시설인 광명원과 혜광학교를 인계하고 미주선교사로 파송돼 미국에서 지내고 있다.

그 후로도 인천혜광학교는 삼애관과 직업특별관을 준공, 이료전공과 설립 인가를 받는 등 많은 발전을 거듭해왔다.

△ 교육과정=현재 혜광학교는 유치부,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전공과로 나뉘어 학급이 편성돼 있으며, 총 123명의 학생이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학생들은 시각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일상생활과 학습 기본 능력을 기르고 창의력 능력을 발휘해 자신의 적성과 소질에 맞는 진로개척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치원의 경우 시각장애 유아의 흥미를 자연스럽게 지속시킬 수 있도록 해 유아의 상상력과 창의력 및 사고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현장학습을 시행하고 기초질서 및 생활수칙에 대한 기본적 예절을 학습하고 있다.

또한 초등부는 ▲수준별 개별화 수업 ▲기초 경제와 예절, 생활 교육 ▲독서교육 ▲정보화 능력 계발교육 ▲보건교육 등에 중점을 두고 교육하고 있으며 중등부와 고등부는 미래 직업인으로서 바른 자세확립을 위한 전환교육과 독서지도, 진로지도, 공동체의식 함양 등의 교육에 힘쓰고 있다. 안마, 마사지, 지압 등의 수기요법과 전기치료 등에 관한 기초의학과 관련 전문지식을 습득하는 이료전공과는 시각장애인들이 국민보건에 이바지하면서 자활 자립할 수 있도록 능력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천혜광학교는 ▲저시력지원센터 운영 ▲직업교육 ▲현장체험 학습 ▲컴퓨터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특색교육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명선목 인천혜광학교 교장. ⓒ장애인생활신문

학생들의 아픔에 눈물짓고 희망에 의지를 다잡는 인천혜광학교 명선목 교장, 그는 진정 시각장애인 학생들의 아버지였다.

“설립하신 분들의 깊은 뜻을 이어받아 1998년부터 교장으로서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을 가르친다기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웁니다.”

감사할 줄 아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명 교장은 학교 정문에 ‘감사의 향기는 행복한 세상’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는 학생 스스로가 감사함을 알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다.

“우리 아이들이 50~60세가 됐을 때를 생각합니다. 장기간 게임이라 생각하며 사회의 등불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명 교장은 언젠가 우리나라도 장애인의 천국이 될 것임을 믿으며 많은 나라에서 우리나라의 장애인 문화를 벤치마킹해 나갈 날이 오리라고 믿고 있다. 또 이에 대한 중요한 역할을 그가 하고 있다. 혜광학교의 김영민 선생님은 지난 8년간 네팔로 교육지원을 나가고 있다. 그때마다 혜광학교에서는 컴퓨터를 수집해 보내 도움을 주는 뜻 깊은 일을 하고 있다.

“본관을 지어야 하는 문제, 각 관공서에 우리 학생들을 취업 시키는 문제, 골볼 실업팀에 입단시키는 문제 등 아직도 제가 할 일은 무궁무진합니다.”

특수교육계의 산적한 문제 중 학생들의 상황과 유형에 맞는 다양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소수 장애의 특수학교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도 필요하다고 했다.

“올해 특수교사 동결로 인한 피해가 막심합니다. 더욱 많은 관심과 투자가 이어져야 할 공교육이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는 형편입니다.”

또한 명 교장은 인천시교육청에 장애인 정책과 교육을 전담하는 담당 장학관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의 투입으로 한국적인 특수교육이 돼야 만이 조금 더 나은 교육을 장애아동들이 받을 수 있음을 덧붙였다.

명 교장은 장애 예방교육의 미흡한 점을 꼬집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에서 교육돼야 하는 예방교육은 현재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올바른 인식개선 교육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홍보CD를 제작해 배포할 계획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인 교육으로 인식을 전환하는 일이야 말로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학원을 가지 못합니다. 이는 인식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아 장애아동들이 상처만 받고 돌아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스스로 강해지는 법을 익히라고 합니다. 비장애인들의 인식개선 만큼 중요한 것이 장애아이들이 강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혜광학교 학생들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청소년적십자단 RCY 봉사단이다. 최근 소록도 봉사활동을 포함해 복지관 이료봉사, 헌혈캠페인 등 다양한 분야의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받는 것을 익숙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사랑을 전하고 나누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고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지난 2002년에는 삼성효행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명 교장은 그동안 혜광학교 운영에 많은 도움과 지원을 보태준 곳들을 일일이 언급해가며 감사함을 전했다. 또 장애학생들의 도움으로 생활하는 선생님들에게 온 몸과 마음을 다 받쳐서 사랑의 마음으로 학생들을 대해주길 당부했다.

“비장애인보다 5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만큼 더 행복한 삶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순간순간 감사하며 사는 혜광학교 학생이 됩시다.”

채영찬 인천혜광학교 3학년. ⓒ장애인생활신문

채영찬(20, 시각 1급) 군은 다섯 살 때부터 15년 간 쭉 인천혜광학교를 다녔다. 앞이 전혀 보이진 않지만 그는 마음으로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듯 했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요. 특수교사로서의 꿈도 키우고 싶고 영어와 심리학도 공부해 보고 싶어요.”

채 군은 선천적으로 앞을 전혀 보지 못해 낯선 길을 갈 때 누군가의 도움이 한 번은 필요하지만 한 번 학습한 길은 절대 잊지 않는다.

“머리로 기억하죠. 점자블록이 없는 경우에는 몇 걸음인지 아니면 바닥 블록의 개수를 외워둬요. 혼자 길을 걸어가다 보면 절 도와주시려는 분들이 있어요. 마음은 감사하지만 제가 모르는 길로 안내해주다보니 그 분들이 알려주신 곳에서 헤맬 때가 많아요.”

올해 단국대학교 특수교육과에 진학하는 채 군은 평소 공부하는 것을 즐겼다. 비록 공부하는데 힘든 점도 많았고 지칠 때도 있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점자로 읽고 소리로 들으며 학습해야 했기 때문에 많은 양을 공부하기가 힘들었던 터라 그는 항상 아쉬워했다.

“한두 달 전에 미리 주문하면 원하는 책을 점자로 읽을 수 있었어요. 시각장애인복지관 학습지원팀의 도움으로 제가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어요.”

채 군은 학습 지원의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시각장애인들의 학습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출판사에서 알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학원가에서도 장애인이 동등하게 교육 받을 권리가 지켜져야 하며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도 시급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지난 11월 수능을 본 채 군은 “비장애인보다 시험기간이 1.7배 긴 장애인의 경우 체력관리가 관건”이라며 “후배들도 체력관리는 필수라고 생각하며 수능을 준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로 비장애인과 달리 저녁 9시 30분에야 시험이 끝나는 시각장애인의 경우는 체력의 중요성을 실감케 해준다. 채 군의 경우도 체력이 약한 탓에 평소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깍쟁이 같은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채 군은 얼마 남지 않은 졸업을 앞두고 그동안 학업은 물론 기초생활과 계발활동에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조건 없이 끊임없는 사랑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루하루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가겠어요. 꼭 성공해서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장애인생활신문 황혜선, 박지연 기자 / 에이블뉴스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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