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에 관한 닷페이스 영상을 보고 기자단에 지원했다.ⓒ 닷페이스 유튜브

한국장애인재단은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약 4개월 동안 ‘대학생 기자단 1기’를 운영했다. 장애인 공익사업 현장을 취재한 기사형 콘텐츠와 재단 홍보 영상 콘텐츠를 제작해 재단과 장애인 공익사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한 기자단의 수기를 소개한다. 첫 번째는 최우수활동자 박도원 단원의 수기다.

길 가다 누구 한 명이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이다. 따로 약속이 없으면 방에 가만히 있는 게 살길이라고 생각했다. 시원한 물 한 잔을 책상에 올린 채, 의자에 거의 누운 상태로 유튜브(YouTube) 영상을 봤다.

유튜브에서 이것저것을 시청하다 어떤 영상의 제목에 꽂혀 손가락이 화면에 빨려 들어가듯이 영상을 클릭했다. 뉴미디어 ‘닷페이스’가 기획한 장애인의 ‘탈시설’에 관한 영상이었다.

영상은 날씨가 덥든, 춥든, 전국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졌든 간에 상관없이 평생을 시설에서 살아야만 하는 중증 장애인의 이야기였다. 영상을 시청한 후,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이 물밀듯이 올라왔다. 더운 여름, 과연 방에 가만히 있는 게 살길인지 다시 한번 생각했다.

알았지만, 몰랐던 불편한 진실

사회에서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에 관해서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왜 어려움을 겪고, 어떻게 어려움을 겪고,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장애인이니까 당연히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그 이상으로 궁금해하지 않았다.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고 지인 중에서도 장애가 있는 사람이 없어서 장애에 관해 깊게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닷페이스가 제작한 탈시설 영상은 나를 생각의 늪에 빠트렸고 나는 한동안 영상을 처음 봤을 때 느낀 불편함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했다. 초록색 비상등이 켜져 있는 방에 누워 매일 벽을 보면서 내일에 대한 기대 없이 하루를 살아간다는 시설 속 중증 장애인의 말이 계속 마음에 맴돌았다.

누군가에게 보람찬 시간이 될 수 있는 하루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저항 없이 흘려보내는 무의미한 하루라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또한 누군가에게 미래의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는 사회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절대 부술 수 없는 단단한 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무엇보다 다 같은 사회 구성원이지만 양극단에 놓여있는 존재들이 결코 조화롭게 섞여지지 않는 사회를 살아가는 나 자신에게 불편함을 느꼈다. 불편함에서 시작된 감정은 무기력과 분노의 영역을 왔다 갔다 했다. 영상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이상, 내가 몰랐던 세계를 알아야 할 거만 같았다.

이러한 다짐에서 시작한 기자단 활동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순례길을 걷는 사람처럼 매 순간 깨달음을 얻었다.

장애는 불편한 것? 아니 멋진 것!

한국장애인재단 대학생 기자단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는 것은 없었다. 기자단이 되자마자 장애에 관해 생각의 폭이 넓어지거나 나만의 관점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장애학(學) 이론 지식을 갖춘 사람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현재 장애는 나에게 당사자성이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나의 무지와 섬세하지 못한 사고가 행여 실수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기자단 활동이 다 끝난 지금 시점에서 다시 생각했을 때, 장애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조심스러웠던 이유는 내가 장애인을 대상화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이 완전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본인의 삶을 살기 바랐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장애인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생각했었다. 장애에 관한 나의 딱딱한 사고가 계속 유지되었다면, 장애에 관한 글을 쓰면서 모순적으로 장애인을 더욱 대상화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기자단 첫 번째 전체 회의 때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김형수 대표가 연사로 참여했다.

목발을 사용하는 김형수 대표는 학창 시절 자신의 불편한 다리 때문에 힘들었던 점으로 본인의 장애가 아닌, 자신의 급식판을 들어줬던 교장 선생님과 매일 밥을 먹어야 했다는 점을 말했다. 장애 당사자이기 때문에 장애에 관해 유쾌하게 말을 할 수 있었겠지만, 그의 이야기는 장애에 관한 내 생각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었다.

김형수 대표는 장애는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할 필요가 없는 것임을 강조하며 장애의 긍정적인 면을 언급했다. 장애인이 엄청난 능력을 갖춘 예로 그는 영화 ‘어벤져스(The Avengers)’에 등장하는 영웅 캐릭터를 언급했다. 장애의 새로운 면에 관해 알게 된 순간, 장애도 멋진 요소가 될 수 있음을 느꼈다.

사람마다 고유한 개성과 타인과 구별되는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데, 그동안 장애를 불편한 것, 어려운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장애에 관해 차별 없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었다.

영화 어벤져스 영웅 캐릭터는 자신의 장애를 능력으로 발휘한다. ⓒ Marvel 홈페이지

전체 회의 때 얻은 새로운 관점을 바탕으로 같이 기자단 활동을 한 팀원들과 장애의 다양한 면을 담은 영화를 소개하는 영상을 제작했다.

소개한 영화로는 닥터 스트레인지(2016), 월플라워(2012), 포레스트 검프(1994), 등이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은 모두 장애가 있지만 본인의 장애를 능력으로 만들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달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 주인공이 본인의 장애를 능력으로 발휘하는 모습을 보며, 장애의 긍정적 측면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어거스트’ 팀에서 장애의 다양한 면을 담은 영화를 소개하는 영상을 제작했다. ⓒ 한국장애인재단 유튜브

장애가 사회에 주는 긍정적 에너지

8월 31일 복합문화공간 <서울책보고>에서 이뤄진 나의 첫 번째 취재도 장애의 긍정적인 면을 알려줬다.

첫 번째 취재는 한국장애인재단이 번역출간사업에서 진행한 기획총서 중 10번째 도서 『우리에 관하여: 장애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출간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한 북콘서트이다.

북콘서트에 참여한 패널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장애 당사자들이었다. 패널들은 책을 읽은 소감을 공유하며, 장애에 관한 본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공유했다.

북콘서트에서 패널들이 모두 장애의 긍정적인 면을 조명한 점이 인상 깊었다. 장애에 관해 패널들은 ‘현재의 나를 성장하게 만든 요소 중 하나’, ‘서로 도우면 해결할 수 있는 부분’, ‘나를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장애는 불편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그냥 있는 것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장애의 힘을 세상에 알리는 이들의 모습은 당당했으며 자신감으로 넘쳤다. 취재를 하러 간 북콘서트였지만, 나 또한 패널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청자로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었다.

북콘서트에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한국장애인재단

북콘서트 패널로 참여한 이규환 교수를 인터뷰했을 때 장애의 힘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규환 교수는 세계 최초 중증 장애인 치과의사이다. 대학생 때 전신마비가 된 그는 의사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고 피나는 노력으로 의사가 됐다.

이규환 교수는 장애가 있어 다른 의대 동기들보다는 어려움이 훨씬 더 많았지만, 본인에게 주어진 기회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기회를 꼭 잡고 무조건 버티라고 강조했다.

인터뷰하면서 그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다. 장애인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장애가 가장 먼저 보이기 마련인데, 이규환 교수한테는 치열하게 노력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이규환 교수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패널에게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회에서 각자의 일을 수행하고 있는 장애인은 그 자체로 모두 긍정적 에너지를 내뿜고 있다. 취재를 통해 장애 당사자와 장애인이 사회에서 겪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장애의 힘을 여러 차례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장애의 힘이 특별한 것이 아닌 보편적인 것이 되는 그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

한국장애인재단 대학생 기자단 경험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주었다.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내가 배우고 느낀 모든 가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자양분이 될 거로 생각한다.

어떤 직업을 가질지, 어떤 일을 하면서 돈을 벌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는 확실히 알 거 같다. 내게 주어진 세계에 가만히 있지 않고 불편한 지점을 하나하나 해소해가는 사람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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