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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작 소개-⑧

우수상 ‘너무도 어려운 돈 잘 쓰는 법’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1-10-28 09:00:26
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7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486편 접수됐다. 이중 김효진씨의 ‘성준이가 왜 그럴까?’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9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9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여덟 번째는 우수상 수상작인 김영선씨의 ‘(누군가에겐 쉽지만)너무나 어려운 돈 잘 쓰는 법’이다.



(누군가에겐 쉽지만)
너무도 어려운 돈 잘 쓰는 법
김영선


벨 소리가 울린다. 모르는 전화번호가 떴다. 순간 스치는 이 불안감은 무엇일까?
언제나 이런 예감은 왜 이리도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지 모른다. 파출소라고 하면서 우리 딸아이가 절도죄로 신고돼서 잡혀와 있으니 보호자가 빨리 와야 한다고 했다. 갑자기 아득해지며 캄캄한 절벽과도 같은 어두움이 엄습했다.

정신없이 파출소로 달려가니 아이는 어떤 잘못을 했는지도 인식 못 하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경찰관은 서점에서 돈을 안 내고 책을 가져가서 서점에서 절도로 신고가 됐다고 설명해 주었다. 왜 그랬나 따져 물으니 책이 필요해서 가져왔다며 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아이를 부여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내가 용돈을 부족하게 주어서 나쁜 짓을 한 것 같아 얼마나 자책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경찰관은 서점에 책값을 물어주면 된다고 나를 안심 시켰다. 그러나 서점 측은 손해배상 운운하며 무리한 액수를 요구했다. 이럴 때 장애인 자식을 둔 부모는 가슴에 시퍼런 멍이 들고 가슴속에 알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난다. 사회의 약자란 약점을 이용해 지난 일 년 동안 분실한 모든 책값을 배상하라며 억지를 쓰는 서점 측 관계자에게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모른다.

우리 딸아이는 중증의 발달 장애인이다.
어렸을 때는 장애가 무척 심해서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동안의 노력 덕분인지 그래도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고 싶은 곳을 가기도 한다. 한 가지 부족한 것은 돈을 내고 물건을 사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돈을 주고 사야 하는데 그런 경제 개념이 없어 무작정 가져오니까 그야말로 절도범이 되는 것이다.
전에는 이런 일이 생기면 죄인처럼 무조건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변상을 했지만 엄마들도 이제는 강해야 내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것 같았다. 아이가 가져온 책 대금만 변상하겠다고 맞섰다. 다행히 경찰관이 내 말에 호응을 해주어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였다.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 정도에 무너지면 안 된다며 나를 다독였다. 지난번 일을 겪고 나서 나는 많이 강해져 있었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하얗게 된다. 그날도 어김없이 모르는 전화가 왔다. 경찰관이 우리 아이가 임산부를 밀어서 다쳤으니 빨리 오라는 전화였다. 그 장소까지 어떻게 갔는지 기억도 안 난다. 구급차를 불러서 임산부를 병원으로 옮기고 나니 임산부 남편이 아이가 잘못되면 책임을 지라며 나를 윽박질렀다. 나는 너무도 무섭고 두려워 무릎까지 끓으며 빌었다. 아이가 잘못될까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다행히도 진료를 하신 의사 선생님이 임산부와 아이가 이상이 없다고 하셔서 한시름 놓았는데 언제 준비했는지 임산부 남편이 합의서를 내밀었다.

나는 그래도 우리가 잘못을 했으니 돈을 준비해 내일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까는 임산부가 어찌 될까 걱정되어 우리 아이는 살피지 못했는데 자세히 보니 아이가 많이 다쳐 있었다. 깜짝 놀라서 아이를 바라봤다 어떤 일인가 궁금해 물어보니 임산부 남편이 때렸다는 것이다.

그제야 사건의 진위를 파악 못하고 그 사람들 말만 믿고 무조건 아이가 잘못했다고 판단한 내 잘못을 깨달았다. 그 길로 사건이 난 현장으로 달려갔다. 다행히도 CCTV가 있었다. 경찰관을 불러서 확인을 요청했다. 내용을 보고 너무도 파렴치한 그들에게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아이는 임산부 몸에 손도 대지 않았다.
다만 임산부가 들고 있는 음료수를 보려고 봉투를 잡아당긴 것이 죄라면 죄였다. 그런데 아이가 장애인인 걸 알고 돈을 뜯어내기 위해 임산부를 밀었다고 허위 신고를 하고 아이를 때리고 합의금을 요구한 걸 알고 나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나는 딸아이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나서 그들에게 장애인 폭행죄 협박죄로 고소하겠다고 강하게 나갔다. 세상에 돈이 아무리 필요해도 뱃속의 아이가 보고 있는데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비난하기보다 너무 무서웠다. 우리 아이를 때려서 상처를 입히고 뻔뻔하게 돈을 요구한 그들에게 화가 나며 크게 다친 아이의 몸을 보면 분노가 일었지만 마음의 상처는 그보다도 더 컸다. 하지만 약속을 했기에 그들과 합의하기로 한날 나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주위 사람들은 합의금을 주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었기에 그걸 주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었다. 그 선택이 잘못이라도 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 먼저 병원비를 결제하고 그들과 마주 앉았다. 합의금을 가져가려면 내 말을 다 듣고 가져가라고 하였다 그러지 않으면 돈을 못 주겠다고 하자 그들은 마지못해 응했다.

"선생님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들으세요. 돈이 아무리 좋아도 세상에는 돈보다 소중한 것이 많이 있답니다."

"당신들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그러지 않아도 힘든 장애인 부모의 가슴에 상처 주지 마세요. 뱃속에 아이가 보고 있어요. 이건 우리 아이가 잘못을 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나쁜 짓 하지 말라고 주는 겁니다."

나는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차분하게 말했다. 그 외 기억조차 없는 무수한 말들을 하였다. 그들이 잘못을 깨달을 수 있도록 감정에 호소를 하였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은 얼굴조차 들지 않고 내 말을 들었다. 아니 듣는 척했는지도 모른다.

내 말이 끝나자 돈 봉투를 들고 뒤도 안돌아 보고 황급히 가버렸다. 그들이 사라지고 난 후 허탈감에 한동안 주저앉아 있었다. 두 번의 큰 사건을 겪고 나니 세상이 무서워서 밖에 나올 수가 없었다. 한동안 은둔 생활을 하며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어떠한 상황에도 강하게 살아남아야 한다고 깨닫기 시작했다. 다시 힘을 내어 세상 속으로 나와야 한다고 누군가 속삭인다.

그래서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아이가 스스로 필요한 물건을 사는 법을 가르치기로 하였다. 처음엔 현금을 주었더니 돈을 분실하고 한꺼번에 다 써버리는 문제가 발생했다. 두 번째 방법은 카드 사용법을 알려주며 일정액이 들어있는 카드를 주었다. 이번엔 카드를 많이 써서 문제가 생겼다. 야단을 치고 카드를 압수했다 다시 주었다를 반복하는 사이 시간은 흘러갔다. 어려울 듯싶었던 카드 사용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자연스럽게 아이의 나쁜 습관을 잡아주었다. 이후부터는 남의 물건을 가져오지도 않았고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평온한 시간이 흘러가면 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마음을 떨어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세상에 공짜란 없다. 내가 노력한 만큼 결실은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피아노를 잘 치는 아이가 피아노 명곡집만 보면 탐을 냈는데 갖고 싶은 책이 있으면 카드로 사 오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이제는 부족하나마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에 너무도 뿌듯하였다.

주말이면 나가서 햄버거도 사 먹고 커피도 시켜 마시며 그 나이 또래의 여유로운 문화생활을 즐긴다. 시련은 있었지만 시련 뒤에 얻은 것도 크다는 걸 깨달으며 나 자신도 인생의 깊은 의미를 배웠다.

지금은 그때 임산부 소식도 궁금하며 아이가 잘 크고 있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빌어 줄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까지 긴 시간도 흐르고 이제는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 만큼 우리 아이도 많이 성숙해 있었다. 아이와 같이 나도 많은 걸 배우며 깊고 넓은 지혜와 아량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다. 지난날 이기적이었던 내 생각과 행동이 부끄럽고 더불어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삶을 살겠다고 다짐해 본다.

오늘따라 바라본 하늘은 유난히 높고 새파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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