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자기 삶’을 살고, 이용 장애인 개개인의 삶이 묻어나는 사람살이를 나누고자 ‘2019년 장애인거주시설 삶이 있는 이야기 공모전’을 진행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이번 공모전은 장애인거주시설 이용 장애인 일상 속의 여가, 취미, 학교, 직장, 자립생활 등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시설 직원이 총 70편의 사연을 공모했으며, 그중 11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수상작을 연재한다. 다섯 번째는 장려상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정읍천사마을 직원 이신희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이야기

먼저 시작부터

소소하지만 따뜻한 온기와 정이 넘치며, 사람 사는 냄새 물씬 풍기는 이야기를 지금부터 해보려고 한다. 한 지붕에 30여 명의 사람들이 주어진 공간에서 생활하다보면 왁자지껄하게 소란스러운 일들도 많고, 아무런 일도 아닌데 서로 붙잡고 내가 잘났어, 너가 잘났어! 하는 일들이 많을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떨까? 대충 이런 일들이 다반사일 것이다.

여자 생활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영희씨가 갑자기 순희씨의 머리채를 잡고 놓지 않는다. 순희씨는 “놔아, 놔아”하며 손을 뿌리치려고 하지만 영희씨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좀처럼 머리채를 잡은 손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영문도 모르고 황급히 선생님이 와서 영희씨를 말리지만 순희씨가 “놔아, 놔아”하며 소리만 지를 뿐이다.

아침에 철수씨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식사 배식 시간에 늦게 나왔다. 그러더니 계란 후라이가 먹고 싶다며 투정을 부린다. 급기야 식판을 바닥에 던져버린다. 당직 선생님이 “아침에는 그냥 먹어요. 나중에 계란 후라이를 해주라고 조리사 선생님께 말해 줄게요.” 하지만 철수씨는 “지금, 지금”만을 요구할 뿐이다.

며칠 전부터 민수씨가 밥을 먹지 않고 있다. 이유는 서울에 있는 연예인이 보고 싶다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걱정이 되어 밥을 먹으라고 권유하지만 민수씨는 완강히 거부를 한다.

“연예인이 보고 싶어요.”라는 말만을 반복할 뿐이다. 그러더니 홀연히 짐을 싸서 나가버렸다. 핸드폰을 해도 꺼져 있다. 어떤 선생님은 몇 년 전에도 이렇게 나가서 며칠 있다가 돌아왔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민수씨를 찾기 위해 근처에 있는 버스터미널, 근처 지구대에 연락을 했다.

CCTV를 확인한 결과 서울행 고속버스를 타는 것이 목격되었다. 그래서 기다려 보기로 했는데, 며칠 후에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핼쓱한 얼굴로 복귀를 했다.

이처럼 우리네 사는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개별적인 욕구가 있는데 표현이 부족해서, 단어를 알지 못해서, 시설이라는 한정된 곳이라서, 단체생활이라서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보통 사람들처럼 입주자분들도 느끼고, 공감하고, 소통하고, 평범하게 지역사회에 나가서 생활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을 모아서 개별 서비스 공간 및 개별 활동 지원을 마련해 보기로 했다.

말이라서 쉽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왜 반대하는 사람이 없으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랴! 예전에 다~아 해봤다. 장애인들은 안되더라 부터 시작해서 시끌벅적 시장 장터가 따로 없을 정도로 선생님들의 의견도 다양했다. 사공이 너무 많아, 어려움이 많았다. 시작이라는 단어가 있듯이 입주자분들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 보통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도대체 X맨은 누구일까?’

먼저 제공된 주거공간에서 자립 생활을 할 수 있는 인원을 선정하는 게 관건이었다. 그래서 ABS-RC2 사정을 통해 1차 선정 후 다시 선정된 인원을 생활실 선생님들의 일상생활을 통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인원으로 2차 선정을 하였다. 그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예전에 자립 생활을 했던 분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선정되었는데, 실패로 끝난 사례였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예전에 실패했던 사례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운동량이 적어서 살이 10kg 이상이 쪘다는 것이고, 두 번째가 선생님들의 입주자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다는 것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해!’라는 편견이 주범이었다. 시설 안에서도 못했는데, 혼자서 자립 생활을 어떻게 해! 고정관념과 불안감이 들기 시작하면서 선생님들의 훈계와 잔소리가 늘어 가는게 문제였다.

“이것도 안돼요, 저것도 안돼요. 이건 하지 마세요, 왜? 하는거예요, 시키는 것만 하세요.” 등 입주자 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컸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하면 입주자는 변함이 없는데 지원하는 선생님들의 의욕이 너무 앞서서 자칭 X맨 역할을 톡톡히 하지 않았나 싶다.

회의를 통해 결정된 사항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좀 더 입주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선생님들이 너무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입주자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행동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며, 최대한 자유롭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지원을 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최종적으로 선정된 인원은 소망씨와 희망씨였다.

두 분은 지적장애 2급(남)으로 지역사회에 나가서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은 부족하지만 그나마 사회성 및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분이었다.

‘새 보금자리’

우여곡절 끝에 두 분은 짐을 싸서 시설 담장을 넘어 새 보금자리인 드림 하우스로 가게 되었다. 드림 하우스에서는 스스로 일어나고, 밥하고, 설거지, 빨래 등 일상생활을 하며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자유롭게 먹을 수 있으며,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본인이 알아서 할 수 있고, 무엇보다 다른 입주자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자신만의 방이 있다.

지금까지 가져 보지 못한 침대, 책상, TV, 컴퓨터 등이 있다. 어느 가정집과 비슷하다. 초대하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언제든지 집으로 초대할 수 있다. 최소한의 지원을 통해 입주자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나가서 생활할 수 있겠어요?”라는 물음에 소망씨, 희망씨 두 분 다 간섭받지 않는 게 너무 좋다고 하였다. 이사를 하고 난 다음 날에는 같은 동에 살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이사 떡을 돌리며 “드림 하우스로 이사를 온 사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희망씨와 소망씨는 큰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늦은 오후 희망씨는 조용한 방에서 미니어처 자동차를 조립하는데 여념이 없다. 희망씨의 취미는 그림 그리기와 미니어처 자동차 조립이 취미이다. 소망씨는 컴퓨터로 음악 듣기와 영화 감상이 취미이다.

항상 소망씨는 음악을 듣기 목에 헤드폰을 걸치고 다닌다. 두 분은 장애인 특별전형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희망씨는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했고, 소망씨는 사회복지과를 졸업했다. 희망씨는 그림을 잘 그려 광고회사에 취직을 했지만, 강박증이 심해 중도에 포기한 경험이 있다.

직장 내 다른 분들과 사회성이 조금만 좋았으면 지금도 회사를 다니고 있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요리를 해보고 싶어요’

TV를 보고 있던 소망씨가 갑자기 지갑을 챙긴다. 다급히 슬리퍼를 신고 가까운 마트에 가서 계란과 밀가루를 산다. TV 속에 김치부침개를 맛있게 먹는 장면이 나오니까, 김치부침개가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오늘은 직접 김치부침개를 해보기로 했다. 스마트폰으로 ‘김치부침개’를 검색하니까, 다양하게 김치부침개를 만드는 요리법이 나온다.

밀가루를 뜯어서 그릇에 붓는데 하얀 가루들이 여기저기 날린다. 물을 그릇에 붓고 숟가락으로 휘젓는데 밀가루가 살아서 밖으로 튕겨 나온다. 스마트폰으로 보는거랑, 직접해보는 랑 다른지“뭐지, 뭐지?”를 반복한다.

이번에는 숟가락이 밀가루에 박혀 잘 휘저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싱크대에 있는 수돗물을 틀어 그릇에 물을 받는데 물을 얼마만큼 넣어야 될지 몰라, 우선 한 그릇 가득 물을 받는다. 난생처음 밀가루 반죽이라는 걸 해보는 게, 쉽지만은 않은지 땀이 대롱대롱 눈썹에 맺힌다.

눈동자가 흔들리면서 “포기할까?, 계속할까?”를 고민하더니, 냉장고에 있는 김치통을 꺼내서 배추김치를 통째로 넣는다. 만족한 듯이 가스를 켜고 후라이팬에 콩기름을 붓고, 물 반죽이 된 배추김치를 숟가락으로 넣는다.

“톡톡” 후라이팬에서 기름이 불꽃놀이처럼 튀기 시작하면서 소망씨가 겁을 먹었다.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희망씨가 가스 불을 끄면서 “안돼, 안돼” 소망씨에게 소리를 지른다.

겁을 먹은 소망씨를 보면서 희망씨는 “가스 불은 위험해. 조심해”를 반복한다. 그러면서 소망씨가 만들고 있는 김치부침개를 곁에서 거들기 시작한다. 물이 너무 많아 김치부침개 반죽이 줄지 않아, 소망씨와 희망씨는 그 날 오후 늦게 까지 만들었다. 완성된 김치부침개는 커다란 김치 한 조각만 있을 뿐이지만, 혼자서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자신감이 생겼는지 환하게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 이후로도 소망씨와 희망씨는 우리가 예상했던 거와 달리 마트를 자주 이용하면서 먹을 것을 샀다. 때론 시설에 들려서 채소, 쌀 등 반요리가 된 것을 가지고 가서 전자렌지에 데워서 먹기도 했다.

‘꿈꾸는 청년 희망씨’

최소한의 지원을 통해 드림 하우스에 살고있는 희망씨와 소망씨는 빨래, 청소, 일상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스스로 알아서 잘 해나가고 있었다. 자립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으며 스스로 계획하며 결정을 했다.

하지만 자립생활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드림 하우스에서 살고있는 희망씨와 소망씨는 일상생활을 하는 것에만 만족하지 못하였다. 드림 하우스에 살려면 관리비, 가스비, 전기, 수도요금이 필요로 하다는 걸 점차 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청년들처럼 일자리를 구해서 돈을 벌고 싶어했다. 지원하는 입장에서는 너무나 큰 결실이었지만, 어려운 숙제이기도 하였다. 요즘 같이 경기가 좋지 않은 시점에서 어디에서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 혼자서 해결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여러 선생님들과 의견을 나누었다.

먼저 장애인고용공단에서 일자리 알선을 통해 어떻게 구직을 할 수 있으며, 현재 지역적인 여건에 대한 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장애인복지관에서 실시하는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 신청서를 냈다. 1차 서류전형 통과 후에 2차 면접을 받았다.

면접을 보기 전날 희망씨가 스마트폰에서 정장을 입은 사진을 보여주며 “저도 이런 옷 사고 싶어요. 텔레비전에서 정장을 입고 면접 보는 걸 봤어요.”라며 옷을 사고 싶다고 해서 옷을 구입하기 위해 시내에 나갔다.

희망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시설 차량을 타고 나가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희망씨에게 교통카드 충전하는 방법이나, 편의점에서 사 먹는 커피 맛을 알려주고 싶었다.

장애인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보통청년들처럼 면접 보기 위한 준비를 하였다. 구두가게에 가서 희망씨가 사고 싶어하는 구두를 고르고, 정장가게에 가서 입고 싶어하는 정장을 샀다. “이건 얼마예요?”,“좀 깎아 주세요.”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창문 넘어 면접관이 질문하는 말에 “네”, “잘 할 수 있습니다”라는 떨리는 희망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면접을 보고 나오는 희망씨에게 “면접은 어땠어요?”라고 묻는 말에 희망씨는 “첫술에 배부르겠어요! 떨어지면 다른 데에 또 보죠.”라며 털털하게 웃었다. 웃는 희망씨에게 취업이라는 희망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며칠 후 “선생님, 저 합격했어요. 합격이래요.”라며 희망씨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합격을 축하하기 위해 몇몇 선생님들이 드림하우스에 초대를 받았다. 거실에는 짜장면, 탕수육 등이 놓여 있었다.

축하 파티를 하기 위해 희망씨와 소망씨가 직접 중국집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마트에서 음료수와 맥주를 샀다. 캔맥주를 마시면서, 희망씨는 이번에는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포부를 말했다. “잘 할 수 있을거야. 화이팅”하며 힘을 북돋아 주었다.

희망씨는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 합격을 해서 매일 양복을 입고 실내체육관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 소망씨도 얼마 후 근처에 있는 장애인보호작업장에 나가게 되었다.

‘세상 속으로’

벌써 희망씨와 소망씨가 드림하우스에서 생활한 지가 2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처음에는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들이 우리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면서 서서히 부정적인 생각들이 긍정적인 생각들로 바뀌게 되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2년이라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희망씨와 소망씨가 지역공동체에 나가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혼자서 모든 걸 해결했다기보다는 여러 선생님들의 수고와 협력을 통해 입주자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개별 서비스 공간을 제공하기 위하여 노력한 끝에 공동생활 유닛 기능보강 사업을 지원받아 현재 대부분의 입주자들이 개별 서비스 공간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최대한 단체생활에서 벗어나 개별 프로그램 지원 및 여가, 문화생활을 하고 있다.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카페에 가서 자기가 좋아하는 커피도 마시고, 빵을 만드는 곳에 가서 직접 빵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희망씨가 친구랑 통화를 하면서 “어디야? 오늘 만날까?” 분주하게 외출 준비를 한다. “엉, 231번 버스 타고 갈거야. 역 앞에서 보자”라며 전화를 끊는다. 친구 사귀는 방법을 몰라 처음에는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친구 사귀는 방법을 알고, 핸드폰으로 게임하며, 음악을 듣기도 한다. 도움이 필요하면 상대방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해 상대방에 알려주기도 한다.

처음에는 낯선 사람들이 이사를 왔다고만 생각한 아파트 주민들도 차츰 마음의 문을 시작했다. 일요일에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과 함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예배가 끝나면 같이 점심 식사를 하기도 한다. 희망씨는 오늘도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어떤 일들이 생길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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