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직업재활시설협회는 매년 장애인 고용 촉진 및 장애인식개선을 위해 ‘장애인직업재활시설 근로체험 수기’를 공모하고 있다.

2019년 공모에는 34건의 수기가 접수됐고 심사결과 총 27편의 입상작이 선정됐다. 이중 대상 1편, 최우수상 2편, 우수상 10편을 연재한다. 여덟 번째는 우수상 수상작 “소소한 행복”이다.

소소한 행복

천등산보호작업장 우신혜

사방이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하고 다양한 꽃들이 환하게 피어 벌들이 활기차게 날아다니는 우리 천등산보호작업장은 이른 아침부터 웃음소리로 가득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제가 20살이 되던 해에 갑자기 뇌병변으로 쓰러지셨고, 저희 어머니는 사람들과 어울려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은 간간히 있는 동네사람들 밭일을 도와주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시는 일입니다.

겨울에는 농사도 쉬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저희 가족은 더 힘들게 추운 겨울을 보냈습니다. 4살 차이나는 남동생은 어린 나이에 자폐로 장애등급을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일자리를 알아볼 수밖에 없었고 집 근처 식당에서 서빙도 하고 설거지도 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식당 사장님은 저에게 성적인 농담을 자주하셨고, 일하는 거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월급을 주셨습니다. 아직은 어린나이에 서럽기도 하고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어 남몰래 울기도 했습니다.

여러 번 일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야 했고 집에 계신 부모님 생각에 눈물을 감추며 식당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 힘든 부분들을 학창시절부터 잘 알고 지내던 편의점 점장님께 털어놓게 되었고, 점장님은 저의 고민을 듣고 나서 경북장애인여성상담소 김미정 소장님을 소개시켜주셨습니다.

소장님은 저의 사정을 들으시고 지금의 일터인 천등산보호작업장 원장님을 소개시켜 주셨습니다. 처음에 보호작업장에 와서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지만 원장님과 직원 선생님들께서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함께 일하는 오빠, 언니들도 친절하게 일을 알려주면서 저는 이전에는 느끼지 못한 편안한 분위기속에서 즐겁게 일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이곳에 온지도 4년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식당에서 일하며 받았던 온갖 상처와 낮아진 자존감은 이곳에서 일하면서 서서히 회복되어갔고 그만큼 저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여기 천등산보호작업장에 와서는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칭찬과 격려를 많이 듣습니다. 항상 일 못한다고 혼났던 것들이 당연했는데 원장님과 선생님들, 오빠, 언니들은 예쁘고 일도 잘한다는 말들을 해주었고 그런 격려 속에 신이 나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침마다 이곳에 출근하는 것이 참 기쁘고 감사합니다.

언니, 오빠들과 함께 일하면서 삶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날들 속에 삶의 의미를 찾게 되고 하루하루 희망을 노래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받게 되는 월급으로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도 사드리고 동생에게 용돈도 줄 수 있는 것이 참 감사하고 기쁩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나란 존재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 우울하게 생각하며 살다가 내 존재만으로도 도움이 되고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이곳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이전에 나에게는 여행이라는 것은 감히 생각해 볼 수도 없는 일이었는데 천등산보호작업장에 와서 언니, 오빠들이랑 기차여행도 가고 캠프도 가면서 처음으로 ‘이런게 행복이구나’를 느꼈습니다. 맑은 공기, 맑은 햇살을 느끼며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로운 곳들을 체험하면서 순간순간이 너무즐거웠고 함께함이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일하는 천등산보호작업장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사계절의 아름다움이 언제나 가득합니다. 봄마다 여기저기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들과 싱그러운 나무들, 산새소리, 졸졸졸 흘러가는 물소리, 개굴개굴 우는 개구리 소리, 가을이면 울긋불긋 물드는 단풍나무들, 겨울이면 온통 새하얀 세상 속에 작업장 지붕 아래로 매달려 있는 고드름들은 지루할 틈이 없도록 우리를 반겨주고 있습니다.

함께 일하는 언니 오빠들은 서로가 가진 장애의 정도는 다르지만, 각자 맡은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나누며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부분들은 여러 선생님들께서 도와주시고 때로는 우리의 고민과 문제를 듣고 해결해주십니다.

작업장에서 선생님들과 어울려 작업을 하면서 우리는 삶을 나누고 따뜻한 사랑을 주고받습니다. 간간히 우리 작업장에는 자원봉사오시는 분들도 참 많습니다. 그분들에게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직접 가르쳐주면서 함께 일하고 대화를 나눕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회의 일원인 근로자로서 바라보고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에 우리는 참 감사하게 여깁니다. 세상은 우리를 안타까움의 눈길로 바라보지만 이곳에서 우리는 없어서는 안되는 근로자로서 대우받고 보호를 받으며 일합니다.

천등산보호작업장은 나에게 일터 그이상의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가정의 따스함이 그리울 때에 나에게 어머니의 포근함을 주기도 하고, 세상에 혼자 서있는 거 같이 여겨질 때 아버지처럼 큰 보호막이 되어주는 곳입니다.

비록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는 존재이지만 그 자체로 인정받고 소속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이 참 감사합니다. 그 사랑으로 저는 이전의 아픔과 상처를 덮을 수 있었고, 이제는 당당하게 세상에 나갑니다.

한창 좋은 때라고 언니 오빠들은 저의 젊음을 두고 얘기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막내이기도 하고 20대 여성으로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들을 삶속에 누릴 만큼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멋진 꿈을 조심스럽게 꿉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고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행복을 나눌 수 있는 나의 반쪽, 반려자를 만나기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누군가의 아내로, 이쁜 아이들의 엄마로 알콩달콩 살 수 있는 날이 언젠가 나에게도 오기를 꿈꾸며 오늘도 열심히 일하면서 즐겁게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제는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남들과 다른 힘든 시간도 있었고 고난도 있었지만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고 매일 매일의 삶에 감사가 더 큰 거 같습니다. 여전히 몸이 불편하시고 정상적인 삶은 어렵지만 그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제 곁에 함께해준 우리 부모님 너무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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